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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운 Mar 05. 2019

지네와 나

독과 약

어느 날 지네가 나를 물었다. 지네는 바닥에 던져둔 반팔 티셔츠에 있었는데 끔찍하게도 나는 지네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입어버렸다. 지네와 나는 그렇게 제법 길게 적어도 10분은 넘게 같이 살을 맞대고 있었는데 나는 그저 왜 이리 겨드랑이가 가렵지 하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생각만으로 끝났더라면 이 기묘한 동거가 계속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지네는 어둡고 습한곳을 좋아하고 나를 먹이로는 보지 않으니 서로 적대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지네는 실제로 나를 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지네가 산채로 들어있는 옷을 입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수는 없었다. 지네는 계속 움직였고 나는 겨드랑이를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고 지네는 당황한 나머지 내 겨드랑이를 물어버렸다. 번쩍하는 느낌에 잠깐 멍해진 사이, 지네가 옷을 빠져나와 땅을 기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곤충을 잡는데에 능숙한 편이고 마주했을때에는 무서움보다는 귀찮음을 느끼는 편이지만 이때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것이다. 세상에 하느님, ‘부츠안의 뱀’도 아니고 ‘셔츠안의 지네’라니요?

나는 그때 밑에 얇은 이불을 깔아두고 컴퓨터를 쓰고있었는데 지네는 그 이불에 들어갔고 나는 지네가 들어간 장소를 한 손으로 잡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후에 휴지를 찾았다. 한 손으로 이불을 들추고 다른 손으로 지네의 목 언저리(만약 그런게 있다고 하면)를 잡은순간, 지네는 고개를 돌려 번개같이 내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그건 정말로 아팠는데 너무 아파서 지네를 잡은 손을 놓아버렸고 지네는 다시 이불로 숨었으며 그제야 나는 내 겨드랑이에도 똑같은 짓을 지네가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이 다족류 곤충에게 더 이상 같은 행성 출신으로서의 어떠한 동정심이나 소속감따위를 느끼지 못하게 화가 난 상태가 되었다. 나는 더욱 휴지장갑을 보강한 후 잽싸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열어젖힌 후 완전히 휴지로 녀석을 덮어서 잡아냈다.

지네는 맹렬히 저항했고 그 꿈틀거리는 다리하나하나가 내게 느껴졌다. 나는 이대로 눌러죽일경우의 그 처참한 결말이 예상됐고 어쨌든 기운을 좀 빼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압박을 가했다. 30초정도 지속된 압력에 지네의 동작이 조금 느슨해졌다고 느낀 나는 지네를 떼어내려고 시도했는데, 지네는 그 많은 다리로 지지직 소리가 들릴만큼 이불을 붙잡아서 혹시 이불을 뜯어내버리는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성공적으로 지네를 분리하는데 성공해냈다. 나는 적당한 도구를 찾다가 빗자루의 끝으로 지네를 찧어서 처리했다.

그날 나는 지네에 대해 특히 독에 대한 부분을 유심히 검색했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특별히 병원에 갈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보다보니 다큐멘터리는 재미있었고 그래서 독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편 더 봤는데 독은 사실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적이며 공통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복잡하게 가공하여 만든 것이라는 내용을 보았다. 그 만큼 독은 그것을 사용하는 생물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무기였던 것이다. 생명의 정수를 잘 조합하면 죽음을 이루게 한다니? 독을 잘 쓰면 약이고 약을 잘 쓰면 독이라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였던 것이다.

우리 모두 독샘은 없지만 우리는 독기를 품을 수 있다. 독기를 품은 우리는 뭔가에 집중하고 마침내 뭔가를 이뤄낸다. 이 집중력은 인류의 오랜 자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것이 되돌릴 수 있는 것이면 문제없지만 때로는 탈진직전의 전갈처럼 독을 만들어내느라 더 근본적인 것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독을 품는다는 것은 때때로 얼마나 근시안적인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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