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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바라 Jan 10. 2021

<해리봉의 영혼탈출> #15. ♬지난 날~ ♬

   최악의 2020년을 보내려니 지난 2019년이 그리워진다. 작년 여름에는 엄마, 아빠가 휴가를 내서 일주일 동안 발리에 다녀왔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도 열었다. 아, 그리고 엄마랑 각시탈로 또 영혼이 바뀌는 바람에 두 번째로 엄마 방송국에 출근도 했었지.


   지난 어느 가을날의 일요일 오후, 열심히 청소하던 엄마는 태리가 잃어버린 각시탈을 우연히 세탁기 옆에서 발견했다.


“해리야~~ 네가 찾던 각시탈 여기 있네~ 어머 먼지가 너무 묻었다” 하고는 엄마가 각시탈 안쪽을 후~ 하면서 불고 있었는데,


“어? 거기 있었어? 태리가 거기에 숨겼구나~” 


   나는 오랜만에 본 각시탈이 반가워서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는 “어? 해리야 오지마~ 이러다가 또....” 손을 휘휘 내저었는데 그만 내가 기우뚱 하는 바람에 엄마와 손이 닿아버렸다. 파바박!!!!



   아... 또 내려다보니 엄마 손이 보인다. 내 몸을 내려다보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그렇거든. 두 번째로 또 바뀐 것도 당황스러운데 엄마 몸으로 또 방송국에 출근해야 하다니...이번엔 엄마가 아침 프로그램을 맡아서 새벽에 나가야하는데 오 마이 갓! 눈 앞이 캄캄하다.


“휴... 가까이 오지 말라니깐... 또 바뀌어버렸네. 처음은 아니니까 당황스럽진 않지만… 어쨌든 해리야 하루만 잘 버텨보자”

“응… 근데 엄마... 나 몇 시에 일어나야해?”

“새벽 4시 30분에는 일어나서 머리 감고 준비해서 나가야지. 내일은 엄마랑 같이 방송국에 가자. 설명해야할 게 너무 많아”

“새벽 4시 30분??? 으악 차라리 밤 샐래”

“밤 새면 더 힘들지. 오늘은 제발 일찍 자라~~”


   지난번에 방송국에 엄마 몸으로 출근 한번 해봤다고 조금 배짱이 생기긴 했는데 일단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 것 같다.


“해리야 지난번에는 엄마가 표준FM 라디오 프로그램이라서 스튜디오 밖에 기술 감독님이 계셨거든. 근데 이번에는 FM 스튜디오라 여기는 PD가 직접 콘솔을 잡아야해”


“엄마... 콘솔이 뭐야? 플레이스테이션 콘솔은 아는데 그건 아니지?”

“아니지~~ 음... 됐다. 콘솔은 조연출한테 맡겨야지 뭐. 일단 일찍 자!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해”


   아..나는 정말 일찍 자는 게 싫다. 고요한 밤이 되면 내 안에 독서 본능과 상상 본능이 눈을 뜬다.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 때문에 늘 뒤척인다. 포도송이 해초 키우는 생각도 했다가 내일 아침에 뭘 먹을까 하는 생각까지. 통모짜렐라 핫도그가 냉동실에 있던데 통모짜 핫도그는 통... 못 자서 통모짜일까.


   왜 밤만 되면 배가 고플까? 배가 고프면 더 잠이 안 온다. 이럴 땐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오늘 밤에는 페퍼로니 피자 한 판 다 먹는 꿈을 꾸고 싶다. 페퍼로니 하나, 페퍼로니 둘, 페퍼로니 셋... 페퍼로 오니이...네에에에...


(알람 소리) “디리리리리링~~ 디리리리리리링~~” 

“헤이 카카오 알람 꺼”

(헤이 카카오) “10분 타이머를 맞췄습니다”

“아니 카카오 알람 끄라니까 무슨 타이머야?? 엄마!! 헤이 카카오가 사춘기인가봐. 엄마 말을 잘 안 듣네”

“에러인가? 헤이 카카오가 사춘기라니 웃기다. 그럼 해리도 사춘기라서 엄마 말 잘 안 듣는거야? 얼른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자”

“아니 난 아직 사춘기는 아니지~” 

“사춘기가 뭔데?”

“음.. 친구들이 그러는데 사춘기는 엄마가 싫어지는거래. 난 엄마가 엄~청 좋으니까 사춘기가 아닌거지”

“사춘기가 아니라니 너무 다행인데 사춘기가 그런거라면 너무 슬퍼진다. 해리는 사춘기가 와도 엄마 싫어하면 안돼... 알았지? 지금 해리가 엄마고, 엄마가 해리였던 거 잊어버리면 안돼~~알겠지??”

“응응 걱정하지마”


   으.. 엄마랑 얘기하면서 잠이 깨긴 했는데 아직 눈꺼풀이 무겁다. 겨우 눈을 살짝 떠보니 아직 깜깜하다. 밤인지 새벽인지 분간이 안 간다. 엄마, 아니 해리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보통은 엄마가 운전해서 출근하는데 오늘은 같이 택시를 탔다.


   새벽 5시 거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운동하러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내가 쿨쿨 잠자는 사이,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랍다.


   상암동 MBC에 도착했다. 이번엔 엄마(겉은 해리지만)랑 같이 오니까 든든하다. 로비로 들어가려고 보니 여러 중계차들 사이로 알라딘 버스가 보인다.

   얼마 전 엄마는 시청 앞에 알라딘 버스를 주차해놓고 아침 생방송을 진행했었다. 라디오 방송이 방송국이 아닌 길거리에서도 가능하다니 정말 신기했다. 예전에 시청 앞 서울광장 잔디밭에 놀러가서 뛰어놀기도 하고 바로 맞은 편 덕수궁에서 수문장 교대식도 본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어떻게 라디오 방송을 하는 걸까?


   엄마는 이동식 라디오 스튜디오인 ‘알라딘’ 버스가 있어서 어디서든 라디오 방송이 가능하다고 얘기해주셨다. 라디오 청취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부릉부릉 알라딘이 달려갈 수 있다고. 이 버스가 알라딘이면 여기에서 나오는 라디오 진행자들이 지니인가? 청취자들이 알라딘 버스를 문지르면 지니가 튀어나와서 청취자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소원을 들어주는 이벤트 하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엄마는 알라딘이 전국 청취자들의 소원대로 ‘별밤로드’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주도와 춘천, 대전, 광주, 부산, 대구 등등 대한민국 곳곳을 다녀본 베테랑 여행자라고 하셨다. 나보다 구석 구석 많이 다녔네. 형이라고 해야겠다. 지금은 코로나로 공개방송를 못해서 차고에 주차 되어있는 알라딘. 너도 나처럼 답답하겠다.


   엄마의 사원증을 목에 매고 엄마는 1층 로비에서 방문증을 발급 받아서 텅 빈 9층 라디오 사무실로 올라갔다. 새벽 5시 30분 사무실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누군가 있다! 새벽 6시 프로그램 제작진과 청소해주시는 미화원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라디오는 새벽부터 밤까지 생방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일하는 시간이 이렇게나 다양하구나.


   내 몸 해리는 서둘러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를 확인하고 큐시트를 적는다. 작가 이모들이 일하는 작가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다.


“다했다! 해리야 자 이제 스튜디오로 가자”

“엄마, 진짜 괜찮겠어?”

“조연출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거야”

   그 때 작가실에서 예슬 이모와 은지 이모가 나왔다. 

“어머~~ 해리야 반가워!! 많이 컸네~~”

“엄마 방송국 견학 온 거야? 환영해~ 재미있게 봐~~”

“네...아 네네”

   작가 이모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방송이 시작됐다. 아침 7시에 라디오 듣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깜짝 놀랐다. 


   <굿모닝FM>은 청취자 전화연결로 시작하는 ‘단독취재 아침의 현장’부터 시작해서 ‘뉴스 찬찬찬’, 퀴즈를 풀면 마트 상품권이나 마음의 상처 중 하나를 가져간다는 ‘마상 퀴즈’, 목소리 변조가 웃긴 ‘장티쳐의 족집게 해답’, ‘톡톡 오늘의 이슈’, ‘어쨌든 굿모닝’, 그리고 사이 사이 날씨와 교통 정보까지. 정말 숨가쁘게 돌아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이제 겨우 엄마의 일터에서 탈출 할 수 있다. 엄마로 있으면서 내내 미소 짓고 있느라 힘들었다. 엄마는 집에서는 그렇게 화 내고 잔소리 대마왕이면서, 어떻게 일할 때는 늘 웃는 걸까? 작가 이모들의 증언이 아니었으면 절대 못 믿었을 거다.


   가끔 집에서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화를 낼 때는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얼마 전 투명 인간이 될 뻔했지. 게임에 폭 빠져있던 어느날, 유료 아이템을 너무 사고 싶었다. 갑옷이랑 방패랑 아이템을 장착하고 싶은데 엄마한테 얘기하면 안된다고 할 게 뻔해서... 그만 거짓말을 해버렸다.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 5만원을 편의점에 가서 문화상품권으로 바꾼 다음 몽땅 5만원 어치 아이템을 사버렸다. 내 생애 최초의 현질이다. 그런데 결국 엄마의 촉으로 걸리고 말았지 뭐. 엄마는 개코에다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초능력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때 엄마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걸 봤다.


“현질 했다는 사실보다 거짓말 한 게 더 나빠!!”


   붉은 노을의 엄마는 내 노트북을 들더니 양손으로 노트북을 잡더니 무릎을 세워 반으로 쪼개서 화면 따로 키보드 따로 두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힘도 쎈 우리 엄마. 그날 밤, 반으로 쪼개 진 노트북을 어떻게든 붙여보려다가 연기가 나는 바람에 한번 더 혼났다. TV 광고에 반대로 접을 수 있는 그런 노트북이 있던데.. 그거였으면 고장 안 났을텐데…라고 중얼거리다가 또 한 소리 들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무사히 돌아와서 엄마와 손을 잡고 각시탈을 다시 집어들었다. 빨리 내 몸으로 돌아가야지. 지난 번과 달리 돌아가는 방법을 아니까 하루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각시탈을 집어올린 순간, 갑자기 손에서 미끄러지더니 주방 바닥 회색 포세린 타일에 부딪쳐 와장창... 깨져버렸다. 엄마가 내 노트북을 두 동강 내버린 것처럼 각시탈이 두 동강 나버린 것이다.


“해리야!!!!!!!!”


   눈 앞이 하얘졌다. 이걸 다시 붙일 수 있을까? 다시 붙이면 노트북처럼 연기가 날까? 설마 이제 다시는 내 몸으로 못 돌아가는 걸까? 엄마의 얼굴을 봤다. 눈은 멍하고 얼굴은 불타오르고 있다.


“해리야! 옷 입어. 당장 인사동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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