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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Jul 30. 2018

‘답정너’ 대화는 그만 하자

둘 중 한 사람만 신나게 떠든다면 좋은 대화가 아닐 가능성 99.9%. 영화 <멋진 하루>.


어떤 이와 만나면 최근의 경험, 생각,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게 된다. 종종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밀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과 만나면 가급적 말수를 줄인다. 주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의견이 크게 갈릴 일 없는 날씨나 연예 뉴스에 관해 떠든다.     


문득 전혀 다른 대화를 만드는 이들의 차이점이 궁금했다. 친밀도라고 하면, 반쪽짜리 대답 같았다. 가까워서 진솔하게 대화하기도 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화의 목적과 태도가 달랐다. 좋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꾸밈없이 표현하고, 솔직한 반응을 기대한다. 상대방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더라도 귀 기울이고,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놓친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또, 상대에게 애정 어린 호기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 한다. 이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운 태도는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까지 꺼내게 만든다.     


불편한 대화를 만드는 이들은 상대방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준말)의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만 한다.     


상대방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기대하는 이야기가 아닐 때에는 제대로 듣지 않는다. 적당히 반응하다가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다. 종종 질문하기도 하지만, 대답이 궁금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답정너’ 대화는 몇 시간을 지속해도 남는 바가 거의 없다. 깨달음이나 영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순한 즐거움조차 느끼기 어렵고,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변하려 애쓰지 않는 한, 변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같은 대화 태도로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불가능하다면, 가급적 대화가 길어지지 않도록 요령껏 대처해야 한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답정너’ 대화에 대한 고찰이 유효한 이유는 따로 있다. 타산지석 삼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쾌하지 않은 대화를 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자연스레 자문했다. 나는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배설하듯 쏟아내기 위해 대화하지 않는지, 원하는 반응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일 의향이 있는지,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만큼 그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됐는지 말이다.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말수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말을 위한 말로, 타인에게 상처나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답정너’의 태도로 말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빈도를 줄여가고 싶다.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대화 상대가 되고 싶다. 단조로운 일상에 영감과 기쁨을 주고, 성찰하게 만드는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의 대화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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