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퇴근길에 배달 어플로 치킨 한 마리를 시킨다. 양손 가득 떡볶이, 튀김을 사가는 날도 있다.
유독 짜증이 나는 날은 글을 쓰러 카페에 가서도 연예 기사만 읽는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나 올린다. 커다란 노트북 가방을 멘 채로 혼자 영화관에 간다. 열에 아홉 번은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울면서 쓰려고 했던 글 따윈 까맣게 잊고 극장 문을 나선다.
힘든 날이 금요일이면 운이 좋은 편이다. 병곤과 만나 평소보다 조금 더 비싼 음식을 먹고, 조금 더 독한 술을 마신다.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면, 제대로 산 날이 너무 적다. 계획은 대부분 형편없이 어그러지고, 내 인생의 운전대는 누가 잡고 있는지 멋대로 굴러간다. 다시 울적해지고 어김없이 질문하게 된다.
‘나는 왜 힘든 상황이 닥치면 번번이 도피하는가. 도피하지 않을 수는 없나?’
여러 번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도피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매일이 성실할 수 없는 사람, 스스로를 일정 수준으로 옥죄거나 채찍질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목표를 이루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시 질문했다.
‘도피가 나쁜 걸까?’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도피했기에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더디게라도 나아가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피는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정신이나 마음은 몸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다들 비슷할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람들의 정신을 몸으로 형상화한다면, 생김새만큼이나 제각각일 거다. 많이 지치던 어느 날엔 내 마음의 몸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내 마음의 몸은 발가락 하나가 부러졌거나 평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들만큼 빠르게 달리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천천히 쉬어간들 게으름을 피운들 무슨 상관일까. 그저 목적지까지 남들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것뿐일 텐데. 조금은 위로가 됐다.
앞으로도 계속 도피하고, 계획은 지지부진할 거다. 주기적으로 힘이 빠지고 자책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마다 내 마음의 몸을 떠올리려고 한다. 불편한 몸을 기억하면서 지금까지 잘했다고, 포기하지만 말자고 다독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