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 대변인과 히말라야 블랙야크의 만남
옛날 청춘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청춘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어른들을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춘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수한 어른인 대변인을 바르게 선택, 활용하여 맑고 고운 심성을 가꾸도록 우리 모두의 바른 길잡이가 되어야겠습니다. 한 명의 어른,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2010년 내가 조선일보에 입사하던 그즈음 대한민국은 아픔을 호소하는 청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춘병 전문의를 자처하며 불현듯 나타난 서울대 김모 교수가 이 병의 권위자로 떠올랐다.
그는 청춘은 원래 아픈 거라며 앞으로도 천 번은 더 여진이 있을 거라는 진단을 내렸다. 김 교수의 진단과 처방은 학계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사람들은 그를 명의로 받들었다.
이후 4년이 흐른 2014년 하반기가 되어서야 유병재 선생이 '아프면 청춘 아니고 환자'라며 병의 정체를 밝혀냈으나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뒤였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이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2013년 청춘병을 앓고 있던 나는 김 교수의 처방을 잘 따르는 비행 청춘이었다. 그 결과 잘 다니던 회사에 쿨하게 사표를 던지고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하지만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르헨티나에 도착해서야 뒤늦게 깨닫고 2개월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남미에 와서 아직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도, 페루 마추픽추도 보지 못했지만 돌아오면서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왠지 언젠가 남미에 다시 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후 한국에서의 삶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신파와 삽질의 연속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 나를 보며 다시 한번 근무의욕을 불사르곤 했다.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 기업들에게 직원들의 근속연수를 늘리는 순기능을 달성한 셈이다. 씁쓸하지만 그렇게 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아이콘이 되었다
2016년 현재 이렇게 씁쓸한 삶을 살아가는 타산지석은 얼마 전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광고를 보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였다.
세상은 문 밖에 있다!
광고 문구를 보니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진다.
그래, 세상은 문 밖에 있다. 다만 그 세상이 잣 같아서 문제지...
한국에 돌아와 삽질을 하며 방황했던 그간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런 달콤한 말에 꾀여 이불 밖을 나서면 인생 망친다는 사실을 이미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깨우쳤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블랙야크 관계자들에게 '남의 일이라고 말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것 아니다!'라고 말해주려 이벤트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문 밖에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 말해줄 실증적 연구 자료 '닭쳐라 남미'도 이미 브런치에 집필을 완료한 시점이었다.
<관련자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인류의 기록유산 '닭쳐라 남미'>
https://brunch.co.kr/magazine/argentina
어쩌면 주최 측 입장에서 나는 이벤트의 반항아였다. 시쳇말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드는 꼴이었다.
하지만 당첨자를 선발하는 블랙야크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선택은 나의 존재를 가볍게 무시하거나 존중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
그렇게 내심 기대를 했지만 당첨자 발표일이 다가와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역시나 나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산(巨山)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생업에 매진하려는 순간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직감적으로 블랙야크라는 느낌이 왔다!
꼭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모 아니면 도! 심정으로 던져봤는데 모가 걸렸다. 나 같은 거산도 포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2015년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매출 1위 다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총 11일간의 페루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동안 이벤트라곤 커피 기프트콘이나 적립금 200원 정도 당첨되는 게 고작이었는데 페루 여행이라니! 안정된 삶을 벗어나 셀프 자갈길 트레킹 하던 그간의 삶이 드디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될 것 같은 기분에 로또도 샀다. 한장은 내 꺼, 다른 한장은 아내 꺼.
그러나 역시 로또는 곧 조또로 변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여하튼 2016년 9월 25일 '블랙야크 글로벌 야크 크루'라는 이름을 달고 나는 페루로 향했다. 하지만 출발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내가 미국 국토 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의 주요 관찰 대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