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라 가즈히로 <프로세스 이코노미>
"'욕망하지 않는 세대'는 소비할 때도 단순히 1차원적인 욕구를 충족하거나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물건을 사기보다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물건, 기업의 비전과 생산자의 삶의 방식에 공감하고 그에 맞게 생산된 물건을 사고 싶어 한다. 즉, 단순히 '아웃풋'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1장에 나온 인용문이다. 내 얘기인가 싶을 정도로 공감되었던 구절. 물론 '아웃풋'만 보고 사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10만 원 이상으로 지불하는 고관여 상품/서비스의 경우 기업의 비전, 생산자의 삶의 방식을 꼼꼼히 따지는 편이라는 것을 나도 이 기회에 알게 되었다. 참 피곤한 소비자일세. 저자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욕망하지 않는 세대'는 어떻게 보면 이전 세대보다 훨씬 사치스러워졌다고 볼 수 있다."며,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라이브 커머스(그립)를 보면서도 나도 이를 비슷하게 느꼈다. 얼마나 이 제품이 타사 대비 좋은 퀄리티를 갖고 있는지, 얼마나 이 제품이 저렴한지, 얼마나 이 제품이 정가 대비 할인을 해줬는지, 얼마나 이 제품이 배송이 빠른지. 대부분의 커머스 문법이 이렇다. 하지만 라이브 커머스의 문법은 이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유저가 셀러에게 안부를 묻고, 셀러를 대신해서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최저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던 것. 셀러의 특별한 스토리, 제품을 준비하는 과정들은 라이브 커머스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를 통해 유저는 셀러와의 유대감, 친밀감을 쌓으면서- 후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관계까지 발전하게 된다. 커머스가 커뮤니티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프로세스를 공유하면 처음에 느꼈던 '공감'이라는 감정이 더욱 강해져 '열광'이라는 단계로 나아간다. 브랜드를 향한 '애착'은 이 브랜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또 팬들의 수동적인 '신뢰'는 능동적인 '응원'으로 발전한다. 결국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속했다는 것은 그만큼 헌신할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헌신은 좀 더 넓은 의미다. 라이브, 결국 유저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커머스, 돈이 들어간다. 유저의 시간과 돈을 가져가는 것인데, 이를 "기꺼이" 쓰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정말 에너지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다. 단기적인 베네핏을 좇는다면 할인받고, 구매하고 그냥 나갈 법도 하지만 굳이 셀러의 안부를 묻고, 셀러를 대신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옹호하고, 셀러를 위해 이곳저곳 입소문 낸다. 셀러의 부단한 노력과 진정성이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프로세스에 이끌리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와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왜 프로세스에 이끌릴까. 이는 그 사람만이 가진 '왜'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왜'와 '가치관'에 반하고, 자신도 이를 닮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참가자가 되어주고, 나아가 세컨드 크리에이터가 되어 응원해주는 것이다."
셀러가 이 제품을 기획하게 된 배경, 가져오게 된 배경, 농산물을 키우거나 가져오는 과정 등 이 모든 것들이 그 사람만이 가진 '왜'다. 가격경쟁과 길고 긴 상세페이지에 가려져 나오지 못했던 그 스토리가 화면을 통해 나오는 순간 유저들의 마음은 움직인다. 이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다. 나에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사는 셀러의 상품이 있거든.
이 책은 과정을 전달하는 수단의 중요성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진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셀러는 언제나 셀러만의 스토리를 준비하고, 고객에게 전달했는데 말이야. 왜 전달되지 못했을까.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의 한계도 한몫했을 것이다. 번쩍번쩍한 제품 사진과 길고 긴 설명에 가려진 진짜 진심은 생생한 라이브를 통해 셀러의 몸짓으로 목소리로 전달된다. 그보다 더 강력한 어필이 있을까.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그건 유대감이다. 고객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순간 고객 1에서 소중한 고객으로 탈바꿈된다. '공감'의 시작점이다.
라이브 커머스에 동참하는 셀러들에게 이는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민낯을 보이고, 목소리를 내고, 손 내밀어 고객에게 다가가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매 순간, 매 방송마다 찍히는 숫자는 셀러들을 더 조급하게 만들고 주눅 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보이기보다는 솔직함과 진정성을 택한 셀러들의 용기 덕분에 셀러에게 팬이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부족하다고, 빈틈이라고, 엉망이라고 생각하는 그 틈이 팬이 비집고 들어가게 된 셀러만의 브랜드만의 매력은 아닌지 - 여러 팬들을 대신하여 이야기해본다. 과정 속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