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박찬욱 <헤어질 결심 각본>
(스포 주의)
극장에서 <헤어질 결심>을 세 번 봤다. 첫 번째 관람은 미장센을 따라 상징적 의미를 찾느라 정신없었고, 두 번째 관람에서는 서래와 함께 허우적거렸고, 세 번째 관람에서는 마침내 내가 어떤 면에서는 서래일 수도 또 다른 면에서는 해준일 수도 있겠다는 수용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트레바리 멤버들과 영화 토크도 하면서 헤어질 결심을 맘껏 좋아했다. 각본집은 당연히 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 인생 첫 각본집 구매인데, 매우 만족스럽다) 영화의 구성과는 살짝 다른 게 더더욱 마음에 든다. 수완 역할을 맡은 배우 고경표가 얼마나 값진 연기를 보여줬는지 또 알게 되고. 러닝 타임 중 마음을 뒤흔든 대사들을 한 번 더 눈으로 확인하며, 입으로 내뱉는 과정을 거치니 나 진짜 속수무책으로 헤어질 결심에 빠진 상태구나.
관람을 마칠 때마다 왜 이리 바다에 가고 싶은지, 작년 가을에 가족과 갔던 경주 봉길리 앞바다가 떠올랐다. 문무대왕릉을 보기 위해서였다. 해변가를 걷다가 들린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찍었다. 여행이 끝나고, 인스타그램에 엄마 사진을 보며, 이런 내가 이런 캡션을 남겼다. 바다와 엄마는 참 닮았다고, 바다는 엄마가 아닐까 하면서.
"바다 해(海)에는 어미 모(母)가 들어있지. 프랑스어 mère(어머니)에는 mer(바다)가 들어있고- 사람들이 바다를 엄마 품 같다고 하는 게 정말 맞는구나. 끝도 없고, 모두를 감싸는 바다, 한없이 넓은 아량과 깊은 사랑, 그건 엄마 품.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날 어제의 추억."
<헤어질 결심>에서는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서래는 바다사람이고, 해준은 (산사람으로 여겨지고, 이에 맞게 자란 사람이지만) 바다가 필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사건(문제) 해결, 원칙, 꼿꼿함, 바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그를 살게 하는 것은 바다다. 있는 그대로의 해준을 포용해주고, 해파리가 되어 잠을 자게 만드는 것. 바다가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산이 나쁜 의미인가. 그건 아니다. 산 하면 정상과 목표인데. 해준의 품위, 자부심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서래 역시 산과 같은 듬직함과 품위를 좋아하니까. 듬직한 산도 필요하고, 유연한 바다도 필요하다.
해준과 서래를 번갈아 보며,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 나는 해준과 닮은 사람일까, 서래와 닮은 사람일까. 해준처럼 꼿꼿함을 좋아하지만, 서래와 같은 유연함을 동경한다. 아, 나아가 나만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과 바다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나. 그렇지만 해준처럼 모를 수도. 스스로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해준이 서래를 만나 붕괴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동시에 그게 해준을 생기 있게, 살게 만들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작품 속 바다인 듯 산인듯한 벽지처럼, 서래의 초록이며 파란색인 드레스처럼 한 사람을 어떤 사람이다 쉽사리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나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해놓지 않으련다. 난 바다도 좋고, 산도 좋아.
덧. 해준이 좋아한 서래의 꼿꼿함은 해준이 보고 싶은 서래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