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새의 선물, 은희경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p12).
처음 내가 이 문구를 마주했을 땐 도대체 이 작가가 무슨 의중으로, 무슨 의미를 담아 이 문장을 작품에 포함시켰을지 솔직히 말해 알 수 없었다. 책을 접한 당시의 나는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만 19세였고, 삶의 경험은 지금에 비해 풍부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지난 거진 12년간 한국 제도권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어른들의 "절대적인 가르침"을 낱낱이 받아 적고 암기하기에 바빴던 학생이었다. 비판적인, 과학적인, 동시에 창의적인 사고와 글쓰기를 막 대학에서 요구할 때 나는 길을 잃은 사람과 같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기에 앞서 너무나 골몰했었고 마치 정답이 있는 것 마냥 그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그렇게 다를진 사실 모르겠다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이 구절의 의미를 마침내 나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정도가 그 차이점이 될 것만 같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저 문장 속의 "삶에 대한 기대"는 삶 속의 있을 절대 공식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 인생의 절대 공식은 정답을 도출 해내 줄 것이다. 안전하고 안정감 있으며 완벽하고 완전한 삶이라는 정답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12살 진희는 일상에서의 경험을 통해 발견한 절대적 공식을 목록화한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 어떠한 사건에 의해 그 목록을 자기 손으로 찢어버린다.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 삶에 있어 절대성이나 완벽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 당장은 불청객 같아 보이는 예외나 얼룩들을 인정하고 감내하는 태도를 가진 자야 말로 성실히 생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말은 정말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우리의 삶은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으며 빈틈 투성이다. 움푹 들어간 틈과 돌출된 모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신경 쓰며 오랜 기간 머무르는 태도는 성실과 거리가 멀다. 즉, 나에게 부여된 생을 실천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현재 내가 발견한 나의 모자란 점은 언뜻 보면 참 유감이겠지만, 분명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자란 점에 부여된 의미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나의 틈과 모는 어찌어찌 내가 살아왔던 면과 조화될 것이고, 나름의 자국과 지문이 되어 나만의 개성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삶에서 발생하는 예외들과 억울한 사건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 혹은 응당하게 꼭 일어나리란 법, 그러한 절대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아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수준의 것이고, 아마 다사다난한 인생의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것이다. 성숙하고 초연한 태도를 갖기란 아직은 도무지 어렵지만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나 또한 보통의 사람처럼 모와 흠이 있으며, 삶의 희로애락이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