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충실히 공유하기는 곧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언제부턴가 구구절절하면 “설명충”이란 딱지가 붙었다. 말을 길게 하면, “본론이 뭐야?” “결론부터 말해줘” “음... 세 줄 요약 좀.”이라고 핀잔 듣기 일쑤였다. 인터넷에서 빠르게 유행되는 쇼츠형 콘텐츠 때문일까, 모든 이가 점점 성급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맥락을 충실히 공유해 주는 사람이 좋다.
예를 들면 이거다.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맞은 후 이렇게 말하는 의사가 있다.
오늘 주사 맞으셨으니,
샤워는 하루만 참아주세요.
나는 그럼 궁금하다.
‘샤워를 왜 하면 안 되는 걸까? 주사 맞은 부위에 물이 묻으면 안 되어서? 그럼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거 아닌가? 근데 왜 물이 묻으면 안 되는 걸까? 아, 혹시 샤워하는 동안 몸이 뜨거워질 수 있어서 샤워를 하지 말라는 걸까? 혈관이 확장될 우려가 있어서 그런가? 혈관이 확장되면, 주사 맞은 부위가 터질 수 있는 건가? 그럼 마찬가지로 찜질방 같은 곳도 가면 안 되는 건가? 운동은 괜찮은 건가? 어떤 의사는 주사 맞은 날 운동도 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이 사람은 그런 소리를 안 하지? 주사 약물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나로서는 정답을 모른다. 맥락 없이 받은 행동지침에, 병원을 나선 나의 나머지 하루는 굉장히 단순하고 경직된다.
그러니까, 나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좋다.
오늘 주사 맞으셨으니,
샤워는 하루만 참아주세요.
왜냐하면, 보통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주사 침투 부위가
온전히 회복하는 데에 최소 하루가 걸려요.
이때 만약 피부에 물이 닿으면,
그 속에 미세하게나마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주사 침투 부위를 통로로
몸속에 침입할 수 있어요.
우리가 통상 쓰는 샤워기, 샤워물이
굉장히 깨끗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각종 미네랄이며
미세한 세균,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마지막으로는요,
샤워를 하게 되면 전후로
체온이 급격히 변할 수 있어요.
이러한 자극은 환부 주위에
근육통을 유발할 수 있어요.
따라서 오늘 하루는
샤워를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원리를 알았으니 그럼 나는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아마 오래도록 까먹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물으면 설명도 똑같이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 매번 환자에게 이렇게 설명하기엔 고달플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진료비를 생각해 본다면?) 그럼에도 이렇게 맥락을 충실히 설명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이전과 달리 보이게 된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온전히 지키는 사람 같기도 하다.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이 빠짐없이 전달되고 이해받았는지 계속 불안해하며 설명을 덧붙이는 강박적인 사람이, 신속하게 결론만을 전달하는 무심하고 간편한 사람보다 훨씬 좋다. 그 책임감과 성실함이란 태도 측면에서.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가 온다면, 최대한 충실하고자 한다. 설명충이라 일축되어 온 행동일지라도, 충분히 덧붙여서 설명하는 편이 오히려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팁! - 예의 바른 설명충 되기
1. 두괄식으로 먼저 결론을 이야기하되, 첨언식으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
특히 서면으로 내용을 전달할 때에는, 결론을 강조하고 설명은 붙임처럼 처리하는 것이 좋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다. (남의 시간을 빼앗는 행위는 그 사람을 천천히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2. 설명 가짓수가 많다면, 번호를 붙여 목록화하는 것이 좋다.
왠지 장황할 것 같은 이 이야기가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지 상대방은 궁금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안심을 선사하는 것 또한 이 시대에 있어 중요한 예의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