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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Jan 25. 2024

10_축하는 어렵다.

   ㅣ생일을 축하해 주세요.ㅣ


   케빈(Kevin)이라고 미국인이 있었다. 조지 부쉬(George W.Bush)가 미국 대통령이 되자 꼴 보기 싫어서 집을 떠나 한국에 와 있었다. 집안 대대로 민주당이라는 케빈은, 그 꼴 보기 싫은 아들 부쉬가 연임을 하게 되었을 무렵 아이하우스 한국어 수업에 나타났다.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한국어는 이미 유창했다. 한동안 그 어학 카페에서 자유롭게 원숭이(우리는 조지 부쉬를 그렇게 불렀다.) 뒷담화하며 재미있게 지내다가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케빈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었다. 미국 사람에게서 Merry Christmas라고 쓰여있는 카드를 받으니 기분이 또 묘했다. 오리지널(?)로 크리스마스 문화 전통을 가진 사람에게서 한국 성탄 카드를 받다니!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감동! 게다가 그의 이름은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집'에 남은 케빈 아닌가! 전형적인 성탄 카드에 자유롭게 쓴 손글씨_ 마지막에 '새해 복 많이 받아세요'라고 써서 내가 하하 웃었다. 글자가 틀려서 웃은 것이 아니라, 감동이 폭발해서 웃은 것이다. 그런데 케빈이 '아 No NoNo' 하는 표정으로, 나한테 (당신은) 콩글리쉬 쓰면서?라고 반격했다. 어머나, 콩글리쉬가 말이 된다 (make sense)면서도 역시 영어는 아니었군요...


   그 연말에 멀더는 석사과정을 밟을 학교를 결정했다.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불광동 언덕배기 도서관으로 톰과 함께 공부하러 다니면서, 지원 원서를 이 대륙(미국)과 저 대륙(유럽) 동시에 여러 군데 보냈다. 한 번은 유럽 어느 대학으로 보낸 원서가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당시는 국제우편으로 보낸 서류가 무사히 도착했는지를 이메일로 일일이 확인해야 했는데, 한국에 있으니 확인이 될때까지 이메일을 보내 놓고도 적게는 8시간에서 많게는 14시간 정도의 시간 차이를 견뎌야 했다. 연락이 오지 않자 며칠에 걸쳐 조마조마하다가 결국은 유럽 대학에 보낸 원서는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멀더에게 한국과 유럽 우체국 각각 사과와 함께 손해상금(?)을 지불했다. 그 보상금(?)으로 우리는 같이 술을 마셨다. 그런데 한 참 후에, 두세 달은 지난 듯싶다. 우편 사고가 났던 유럽 대학에서 원서접수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심지어 그 대학에 합격통보도 받았다. 아 진짜 이런 코미디가 있나? (먹은 술을 토해 내야...???) 푸하하하! 멀더는 차마 보상금을 받은 대학에는 못 가겠는지 그냥 미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결정했다. 


   2007년 초, 서울에 머물 시간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멀더에게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한 가지는 우리가 만난 아이하우스_어학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인들의 영어 프리토킹 자원봉사를 해달라는 것, 나머지 한 가지는 우리의 한국어 수업은 일대일 말고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하자는 것. 멀더는 나와 일대일로 편안한(?) 수업을 더 선호했다. 나도 일대일 공부가 정말 재밌기는 했으나, 이제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되니까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경험치를 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점을 멀더도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그 카페에 드나들던 국적이 다른 외국인 3명에게 한국어 회화반을 제안했고, 그렇게 4명으로 한국어 회화반을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판단은 옳았다. 목소리와 표현이 다른 다양한 한국인들과 대화했으며, 다른 나라 외국인들과는 한국어 배우기, 서울 생활에서 황당함 들을 공감하고 공유했다. 일대일로 만나다가 여러 사람들 틈에 있으니 또 멀더의 다른 면이 보였다. 그것은 나하고만 한국어 공부를 했던 멀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월의 어느 토요일 내 생일날이었다. 멀더가 한국에 2년 이상 체류하다 보니 서로의 생일도 알게 되었다. 그날 수업 중에 케이크가 어디선가 등장하고 (물론 멀더가 주문한 케이크이다) 나는 축하 카드를 받았다. 그날 한국어 중급 회화반에 참석한 외국인 5명이 축하의 말을 적어 준 생일 카드였다. 그런데 (럴수 이럴 수가... 요즘말로 입틀막) 단 한 사람도 정확하게 축하로 쓴 사람이 없었다. 먼저 첫 사람이 '생일 축합니다'로 시작했다. 제이슨은 ‘합니다또 누군가는 '합니다'. 엽서만 한 카드에 적당히 땅을 나누어 썼는데, 절대 서로의 글을 컨닝은 안 했나 보다. (본인이 쓴 축하가 맞다고 확신했던 것일까.) 축하에 확신이 없었는지 두 사람은 자기 나라 말로 적었다.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다만 나는 그 현상의 본질을 파악해야 했을 뿐이다. (는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수다.) 하기사 케빈의 말처럼, Birthday나 Christmas 같은 단어의 철자 하나는 빠뜨리기 일쑤다. 


후에 멀더에게 제발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알아듣고 하하하 웃었다. 나도 하하하.




     멀더의 생일은 한국의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이다. 한국어 회화반에 제일교포 마자씨가 왔는데 그녀의 생일이 멀더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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