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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뷰 Nov 10. 2016

청년들의 삶에는 저녁이 없다

"청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도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 제대로 들어준다거나,
우리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들어보려합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들의 목소리,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사를 준비하면서 문득 시간과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과연 우리는 행복할만한 여유와 시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족하고 있을까. 청년들의 여러 가지 결핍들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한 번쯤 이런 진지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강남역 지하상가, 그리고 우리 또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대학교 캠퍼스 등에서 인터뷰를 하며 여러 청년들의 도움을 얻었다. 그리고 청년들의 하루 시간표를 통해서 우리 삶의 단면들을 담아 보았다. 



여유로운 나, 이래도 되는 걸까?



“저는 사실 이 인터뷰랑은 안 맞는 사람 같아요. 정말 충분히 쉬면서 살고 있거든요. 자신만을 위해 쓰는 시간도 다른 사람에 비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와의 관계도 잘 맺고 있고 저에 대한 신뢰가 무척이나 크죠. 그래서 제가 하는 선택이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 편이에요. 뭐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약간 이기적일 수도 있겠죠.”   

  

한 대학교의 휴게실에서 만난 그녀. 쉬는 시간이 생기면 혼자서 보내는 일이 많다고 얘기한 그녀는 정말로 여유로운 모습으로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재밌게 살았던 고3때부터, 지금과 같이 자기애가 높아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신경을 신경 쓰는 것이 결국에는 본인을 피로하게 만든다고 얘기하며, 스스로 본인의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그녀는 어딘가 특별해 보였다.     


“지금 자취를 하고 있는데, 룸메이트는 예대에요. 과제전이다 복수전공이다 해서 매우 바쁘죠. 그렇게 바쁜 룸메이트를 보면 ‘나는 덜 바쁘게 사나? 나는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인터뷰하는 지금도 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언니도 학교 다니고 대외활동하면서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나는 덜 바쁜가?’ 하는 생각이요.”     


본인의 선택이나 행동을 후회하지 않고 자기애가 높은 그녀조차, 남들과 달리 바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때는 박탈감이 온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경쟁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일하는 25일과 쉬는 6일



비가 내려 궂은 날씨 속에서 설레임으로 가득 찬 표정의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져 누구를 기다리고 있느냐 물으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옆 매장 언니를 기다리는 중 이라고 대답했다.  


"제가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일 할 땐 쉬는 시간이 긴 편이 아니기에 내내 서있느라 다리가 아파요. 휴일도 연달아 주어지지 않고 보통 하루만 쉴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기란 저한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쉬는 시간을 잘 보내고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을 했다. 쉬는 날이면 친한 친구들 4명, 그리고 지금 기다리는 옆 매장의 언니, 집에 있는 고양이와 함께 한다. 그녀의 쉬는 날은 토요일, 일요일이 아니다. 주 5일 일하고 주말을 쉬는 패턴이 아니라, 한 달에 6번 쉬는 날을 정하는 것이다.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의 스케줄이 일정치 않다 보니, 그녀는 하루 쉬는 휴무일에 평소에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몰아 하려고 한다. 친구도 만나고, 쇼핑도 하고, 놓쳤던 TV프로그램도 몰아서 보고, 외로웠을 고양이와 부모님과 시간도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엄청 바쁘게 지내는 건 아니에요."


대형마트이지만 손님이 꽤 적은 지점이라 하루에 오래 일을 하고, 휴무가 많지 않다 해도 손님에 치이지는 않아 여유 있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저는 친구관계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관계보다는 제 시간이 지금보다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다고 생각 한 적이 없어요. 오늘을 계기로 생각해 보려구요."  



쉬는 것과 여유 있는 것은 다르다



허브플라자 휴게소는 시끌벅적한 강남역 지하상가 안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조용한 쉼터다. 편하게 누워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과, 누구를 기다리는 듯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26살 H씨를 만났다.     


“쉬는 것과 여유라는 것은 느낌은 비슷하지만 저에게 와 닿는 이미지는 달라요. 저 같은 경우에 쉰다는 건, 그냥 말 그대로 잠깐 틈이 있을 때 쉬는 거구요. 여유는 심적으로 걱정 없이 완전히 여유로운 상태죠.”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잘 쉬는 것은 기분이 좋아질 때 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주로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는 것을 선호해서 혼자 쉬면서 독서를 하거나, 집에서 빈둥대며 미드를 보는 것. 이날같이 집 바깥으로 나와서 친구를 만나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니까 드문 일이다. 미대생인 그녀는 최근 졸업작품 준비로 인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으로 보낸다. 많은 작업량과 평가에 대한 부담 때문에 최근 힘들었다는 그녀는 오늘과 같은 날이 여유로운 날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날들이 많아지기를 바랐다.     


“하루 종일 작업만 하는 날은 가끔 멍해지고 허탈감이 들어요. 그리고 또 저도 바쁠 때가 있고 친구들도 바쁠 때가 있잖아요? 근데 가끔은 제가 여유로울 때 주변 친구들이 바쁘다고 하면 드는 생각이 ‘나만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닐까?’, ‘뒤처지는 거 아닐까?’ 이런 느낌이 들어요.”     


그녀는 경쟁사회로부터 오는 불안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펙, 학점, 인턴 등등이 필요한 대학생 입장에서는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기에, 여기서 뒤처질까 하는 불안감이다. 그래서 잘 쉴 수 있으면서, 동시에 이루고 싶은 것도 잘 해내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친구를 마중 나가는 그녀의 미소가 행복해 보였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말했던 ‘심적으로 걱정 없이 완전히 여유로운 상태’가 느껴졌다.     



고시생의 대화상대는 오직 편의점 직원뿐



"점심 먹고 잠깐 쉬고 있어요."


비가 내려 축축한, 목요일 오후 도서관 휴게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트레이닝복 차림에 음료수 캔을 들고 있었다. 공부하다가 쉬러 왔냐는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시 공부 중이라고 했다. 무슨 시험이냐고 물으니 그건 얘기하기 싫다기에 알겠다고 했다.


"공부 안하면 다 쉬는 거죠."


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가 한 답이다. 고시생다운 답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고시공부에 올인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동안 사적으로 만난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면 딱 한 명밖에 없다고 했다. 애인이나 친구가 아닌, 편의점 직원이었다. 가족과 편의점 점원 외에는 대화할 상대가 따로 없는 것이다. 좀 외롭겠다 싶었다.


"멍 때리면서 숨 쉬는 것도 중독 되더라고요."


그녀는 공부와 공부 사이 쉬는 시간 외에 자신만을 위해 쓰는 시간이 없다. 예전에는 그런 시간이 있으면 게임을 하며 지냈는데 공부를 시작하니 중독될 수 있는 것은 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한다.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가서 1+1 상품을 고르는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쉬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샛노란 병아리를 닮은 색지에 단출한 시간표를 그려주었다. 공부, 잠, 식사 외에는 별 다른 일이 없는 단순한 일과였다.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고 싶어요."


자기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보이는 그녀에게 만약 여유 시간이 생기면 누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녀는 별 고민 없이 가장 친한 친구라고 답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는데 요즘 들어 서로 바빠져 3개월 정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와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시험이 끝나면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 인터뷰 연재
: 글/사진. 박수현, 박진오, 엄채린, 정유라, 한다현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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