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도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 제대로 들어준다거나,
우리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들어보려합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들의 목소리,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나 혼자 산다(?)
우리는 기획단계에서 독립이 무엇인지 규정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독립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행복이고 슬픔이면서, 현실이고 꿈인 그 단어를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독립은 했는지, 얼마나 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정의하지 못한 독립을 다른 청년들은 어떻게 얘기해줄까. 각종 수험생들의 메카라 알려진 노량진. 저마다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 모인만큼 사연도 많으리라. 스스로를 거친 소용돌이에 내던진 그들이 독립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노량진을 찾았다.
저녁시간에 학원 입구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갔지만, “제가 밥을 먹어야 해서요.”, “바빠요.”라는 대답과 함께 연이어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후다닥 답변을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 혼자 산다(?)’라는 팻말을 들고 다니니까 흘긋 거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MBC에서 나온 방송 프로그램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던데 방송국에서 나온 척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노량진 길거리 음식 가게에는 놀러 온 사람들 몇몇이 줄을 서 있을 뿐, 정작 고시생들은 먹을 시간도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들이 누군가에겐 놀러 와서 먹는 관광음식이었다. 독립에 대해 묻기 위해 온 노량진에서 더 많이 마주치는 사람은 노량진 외부인이라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 속에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독립을 얼마만큼 했다고 생각하는지 독립지수를 적어달라고 했고 그 이유를 물었다.
독립 = 경제적 독립!
청년들에게 자신의 독립 지수를 물어보면서, 우리는 청년들이 사회 속 여러 종속으로부터 얼마나 홀로 서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답에는 “부모”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청년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부모에게 지원받고 있는지에 따라 자신의 독립지수를 측정했다. 독립지수를 매겨달라는 요청에 한 청년은 “아직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있고, 신세지고 있어서” 4점을, 다른 청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서” 10점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점수의 편차와 상관없이, 즉 독립의 정도와 관계없이 부모에 대한 언급이 먼저 나왔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청년이라는 시기가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야 하는 이행기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독립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독립하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 학비, 식비, 월세 절대 못 벌어요. 대학생이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건 진짜 불가능해요.”
대학교 2학년인 A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있다. 부모님이 학비를 대주시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어쨌든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A씨는 자신이 정신적으로는 많이 독립을 한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5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할 일은 알아서 잘 하는 편이지만, 아직 굵직한 경제적 부담들은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고 있어서.. 엄마 미안해요.”
27살 대학원생 J씨는 취업 실패 이후 대학원으로 진학해 일단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밖에 나와 따로 살고 있는 그는 아프거나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 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느끼지만, 집에 가면 독립하거나 취업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더 아플 수 있다는 생각을 곱씹으면서 혼자 사는 삶을 견디곤 한다.
1년 전 자취 생활을 시작한 대학생 C씨는 주거 면에서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립지수를 1점으로 체크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나와 살면서도 부모님 집에 들어가 밥을 먹고 나온 적도 있다.
“몸만 독립해 1점을 줄게요. 경제적 독립까지 이뤄져야 완벽한 독립이라고 생각해요.”
독립하기 위한 고군분투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결국 경제적인 독립이 많은 청년들에게 ‘독립의 절대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청년들이 자신의 독립지수를 매기는 기준은 점수가 높든 낮든 부모님으로부터 얼마나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였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독립지수를 높이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은 ‘웃픈’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알 수 없는.
자취를 하고 있는 24살 대학생 S씨는 금융업계 취업을 위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는 자신의 독립지수에 대해 10점 만점에 7점이라는 꽤 높은 독립지수를 매겼다. 우리가 만난 청년 44명 중 독립지수에 7점 이상을 준 사람은 5명뿐이었다. 경제적으로 부모님 신세를 덜 지려고 노력하다보니 ‘궁상맞은’ 생활이 자연스럽게 따라 왔다. 컵라면을 사서 반으로 나눠 두 끼 먹어 보거나, 한겨울에 난방 대신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잠에 들었다.
“등록금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대신 개인 용돈은 스스로 어느 정도는 충당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그 정도면 꽤 독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원인 29살 D씨는 학생 때는 자취를 했고 취직 후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더 이상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 그는 독립 이후 경제적 문제로 인해, 이것저것 참고 포기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 후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사는 드라마 속 이야기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말해도 되려나? 술집에서 밑반찬을 챙긴 적도 있고 친구들 집 번갈아가면서 방문해 밥을 얻어먹었던 적도 있었어요.”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많은 청년들은 부모의 결정권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발언권과 결정권을 가지는 사회적 독립도 어렵다고 말한다. 작게는 통금시간에서부터 크게는 휴학을 선택하는 문제까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결정권을 부모와 공유하고 있었다. 많은 청년들이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원하지만, 삶을 살아낼 수록 경제적 의존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독립을 꿈 꿀 수 있게 하는 사회
혹자는 의존하고 의지하는 삶은 존엄하고 주체적인 삶이 되지 못한다고 하며 청년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하는 일은 독립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존엄하게 살고 싶다. 인간답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적인 자립이 당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으로는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벅찬 현실이지만, 그마저도 전체 청년 근로자 6명 중 1명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 나온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모 본부장의 말처럼 생활은 어려우면서 적당한 최저임금의 시대에 사는 청년들에게 어쩌면 독립은 너무 먼 얘기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도 생존하기 힘든 사회, 적당하지 않은 최저임금 혹은 열정페이, 대학가 주변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주거비, 모호한 기준 속에서 책정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 문제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그것이 청년의 독립을 가로막는 하나의 벽이라면, 우리는 그 장벽을 조금씩 낮추기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하고 사회는 이에 응답해야 한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사회밖청년들] 인터뷰 연재
: 글/사진. 강효상, 박지원, 유태웅, 이은기, 홍단비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