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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적 Jun 12. 2019

애정

# 애정
애정은, 상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폭력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저는 여태껏 그런 종류의 사랑을 목격해 본 적이 없으므로 제가 알고 있는 보통의 철없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사랑을 할 때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내기를, 같은 이불을 덮기를, 그와 제가 함께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기를 바랍니다. 그가 저를 위해 변하기를 바랍니다. 그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조금 성급한 단순화일지도 모르겠으나, 그와 저를 묶어 하나로 만들고자 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인을 부르는 말 중에 ‘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라 부르는 것은 상대를 자기 자신처럼 여긴다는 것이지요. 상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 범위를 확장 공사하는 것입니다. 옆 집과 내 집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어 하나의 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나의 당신, 혹은 당신의 나,라고 여깁니다.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는 관계인 것이지요. 애정만 아니더라도 인간의 관계라는 것은 서로를 소유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부모님, 나의 친구, 나의 연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동시에 부모님의 나, 친구의 나, 연인의 내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물, 공간, 시간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나의 고향, 나의 앞마당, 나의 바다.
사랑이라는 관계는 있는 당신 그대로를 두고 애정 하기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당신으로 만들고자 하는 몸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왕자의 장미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에게 물을 주고 정성스레 벌레도 잡아줍니다. 그 장미가 지구의 여느 장미들과 다른 이유는 어린 왕자가 시간을 들여 돌봄으로써 어린 왕자의 장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미에게도 어린 왕자는 그저 여느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왕자였겠지요.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나눠가짐으로써 특별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미묘하고 애틋한 것이지요.

우리는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할 때 지독하게 무력합니다. 짝사랑이 그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짝사랑을 하는 이는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 자신이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는 짝사랑을 해본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요. 짝사랑을 하는 이는 그 사람에게 시간을 같이 보내달라고 할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에게는 선택지가 몇 개 없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자신의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니면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 매력 있는 사람이 되려 애쓰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그저 기다리는 것입니다. 상대가 언젠가는 자신을 보아줄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는 것이지요. 사무치게 외롭고 괴로운 길입니다.

폭력은 어떤가요. 가장 격렬한 형태의 폭력이라면 역시 살인입니다. 총으로 상대를 쏘는 것은 가장 강렬한 이기심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납탄이 날아가 상대방의 몸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지요. 나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쏘아내는 것입니다. 상대의 의사가 어떻든 그저 나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위는 애정의 상냥함과는 조금도 닮은 면이 없지만, 나의 의지대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은 시간을 나누는 것, 나만을 바라보길 요구하는 것, 나에게 웃어주는 것. 사랑을 쏘아 상대를 변화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욕망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듯 강요하게 된다면 그것은 굉장히 힘든 연애사업이 될 것입니다. 서로의 불행만을 낳겠지요.

시시껄렁한 마무리지만, 별다른 결론은 없습니다. 그저 생각나는 것들을 줄줄이 읊어보았습니다.


2019. 5. 27. 오후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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