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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우 Oct 12. 2017

언어를 선물하는 책방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인터뷰 with 혜림이와 은교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영상 ©프란

 페이스북의 스크롤을 내리다 우연찮게 '페미니즘 책방'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평소 책이나 책방 같은 곳들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꾸려가는 책방의 모습은 왠지 궁금증을 자극했다.

책방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그랬는지,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았고 바로 그 주 금요일로 인터뷰를 잡았다.




 인터뷰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기로 했다. 서울대입구로 향하는 길, 번잡한 번화가 옆 조금 낡은 동네를 지나 달리 봄 책방을 발견했다. 7시 반에 책방에서 영화 <줄리에타>의 상영회를 앞두고 있던 터라 조금 바쁘셨을 텐데도 기꺼이 인터뷰를 수락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30분 정도 책방을 둘러보았다. 유리로 된 문, 직접 칠하셨다는 페인트 등 책방의 곳곳에는 주인 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보였다. 정신없이 책방을 둘러보는 동안 서비스로 오미자 에이드를 타주셨다. 점점 어두워질 것만 같은 하늘 옆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책을 통해, 편견과 관념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Q0.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승리 : 안녕하세요 저는 주승리입니다.

소연 : 안녕하세요 저는 류소연이에요


왼쪽부터, 류소연 씨와 주승리 씨. 그렇고 그런 사이시다.



Q1. 달리 봄 책방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보시다시피 저희는 책방이고요,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는 페미니즘 책방이라고 얘기하죠 ㅎㅎ 페미니즘 책뿐만 아니라 젠더 이론서, 대중서도 있어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폭넓게 이어서 설명하는 책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읽었던 책들 중에서 추천을 받아서 소개하는 것과 더불어 페미니즘 책은 아니지만 실존주의 철학 책, 그리고 사진집도 두고 있어요. 기왕이면 다양한 주제로 책을 선정하려고 해요.


Q2.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됐나요?

 저희가 원래 하고 있던 일은 '허스토리(herstory)'라는 팀이에요. 작은 소규모 출판사인데, 주로 자녀분들의 의뢰를 받아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들어드렸어요. 남성 중심적인 것들을 담아온 기존의 역사를 넘어 그곳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자, 그 사람들의 발언 권력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었죠. 처음에는 엄마의 작은 자서전이라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여성들에게 붙여지는 가장 흔하고 당연한 이름이 '어머니', 혹은 '어머님' 등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수익사업이다 보니 주제가 흐려지는 것 같았어요. 보다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분명하기 위해서 시작한 게 바로 이 책방이에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들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소개하고 싶어요. 요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어떤 분들은 그것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더 알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분들, 이론은 알지만 실제 삶과 연결하지 못하는 분들이 저희 책방에서 책을 추천받고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페미니즘 서점을 하게 된 건, 저희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기존의 편견이나 관념의 변화의 시작으로 '책'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덧붙이자면, 처음 저희는 사람들의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서간집 혹은 구술사 속에서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페미니즘'을 정면으로 내세우는 게 저희의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언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선물하는 페미니즘


Q4. 페미니즘과 관련되서는 어떤 책들을 취급하시나요?

 정말 다양한 것 같아요. 오시는 분들도 놀라시고 그러죠. 저희도 책을 고르면서 재밌어요.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 오셔서 이 주제에 대해 깊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 이런 책도 만나고 이런 이야기도 만나며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는 것... 어떤 책에 주력하기보다는 다양하게 다루고 싶어요. 이론서, 사진집, 장르소설 등 더 많은 책을 다루려고요.

아 참고로, SF 등 판타지 소설이 페미니즘을 다루기 쉽대요. 아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잖아요. 실제로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이라는 책의 저자 중 한 분은 실제 SF 작가세요. 그 분이 추천하셨던 책 중에,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가 성별에 상관없이 월경(비슷한 걸) 한다는 설정의 소설이 있었어요. 월경을 할 때마다 자신의 성별을 선택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거죠. '이갈리아의 딸들'도 넓은 맥락에서는 마찬가지고요.


답변하는 류소연 씨


Q5. 두 분에게 페미니즘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소연 :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성별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설 수 있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승리 : 어제도 질문을 받았는데, 주위에서 물어볼 때마다 대부분 '남혐', '여혐'의 이분법적인 구도로만 생각하더라고요. 페미니즘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필요한데, 지금 너무나 '성별 이분법'에 갇혀서 남혐 vs 여혐 구도로만 보고 있잖아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앞장서는 게 페미니즘이라는 오해가 생기는 거죠.

소연 : 명절이잖아요. 가서 제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하니까 친척들이 "왜? 더 이상 남녀가 평등해질 게 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ㅎㅎ;; 책방을 통해 일상 속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직접 제기할 수 있었고, 동시에 책을 줄 수 있게 됐어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을 얻은 것 같아요. 페미니즘 책방을 한다는 건 제 주위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 번 관심 가질 기회를 주는 거잖아요. 주위의 남성 분들께도 마찬가지고요.

(Q. 남성으로서 운영하는 건 안 힘드세요?)

승리 : 지인들이 많이 물어보는 부분이에요. 지인들이 물어보는 종류는 두 가지죠. 호기심이거나, 공격적이거나. 어떻게 답해야 할지 항상 고민해요. 가부장적으로 굴러가는 사회의 관념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데 (대부분의 남성들이) 표면적으로만 접근하다 보니까 되게 힘들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책 선물해요. 그렇지만 가까운 지인들에게부터 이런 문제를 소개하는 과정 자체가 다소 힘든 것 같아요.


Q6. 요즘 잘 되세요?

 저희가 아직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밖에 안돼서 책이 잘 팔린다 안 팔린다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초반에 비해서는 손님들이 많이 느신 것 같아요. 이 공간을 운영할 만큼은 팔려요. 눈여겨보시는 분들도 꽤 있으신 것 같고, 페미니즘 관련 신간의 경우는 일부러 찾으러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Q7. 책방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같아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오픈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이라는 책의 북 토크를 진행했었어요. 작가분들이 직접 오셔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었죠. 아, 저희 주최는 아니었지만 관악구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단체가 있는데 이 지역 녹색당 분들과 함께 저희 공간을 빌려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연휴가 끝나고 나서는 어제오늘에 걸쳐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후로도 더 다양한 활동들을 하려 해요. 독서모임도 좋고, 다른 특이한 활동들도 기획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아까 말씀드린 자서전 출판이랑 병행하다 보니까 일이 많아서 아직은 큰 행사까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재밌는 거 기획해서 많이 하려고요.


이건, 가격으로 셀 수 없는 사업이에요


Q8. 책방을 운영하시며 특별히 좋거나 힘든 점이 있으세요?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예전에 일하던 사무실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저희 주제나 작업에 대해 공감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아요. 물론 일이 너무 많아졌어요. 책방이랑 자서전 사업을 둘 다 병행하다 보니까 그 부담이 너무 몰리는 것 같아요. 항상 새벽까지 컴퓨터만 보고 있어요... 직원이 필요한데 인건비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래도 이번에 예비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아서 인건비 지원을 받게 됐어요. 드디어, 일의 무게에서 해방당할 것 같아요!

 경제적인 부분은 여전히 벅차요. 서점에서 수익을 더 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아,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이 가끔 와요. 난동 부리시는 분들이 초반에 좀 계셨는데, 그때는 주변 가게 사장님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하셨어요.


질문하는 은교


Q9.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진행하셨는지 궁금해요.

 공간도 내야겠고 책방도 내야겠는데 자금이 부족했어요. 공간은 어떻게 할 수 있었는데. 책을 총판해(책 도매상을 거쳐)서 들여와야 하거든요. 7~80%의 가격으로 책을 구매해서 입고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좀 부담이 된 거죠. 처음에는 지인들을 통해서 펀딩을 시작하려 했어요. 근데 하루도 안 되어서 모르는 분이 펀딩을 하신 거예요. 그때 완전 감동이었죠! 이거는 이 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업이라면서 말이에요! 결국 130~140% 정도 달성했어요. 또, 저희가 각자의 사연을 받아서 책을 골라드리는 게 메인 리워딩(rewarding)이었어요. 관찰일기, 책갈피를 만들어서 함께 드렸는데, 자신의 사연에 딱 맞는 책을 추천해줘서 너무 좋다고 많이 홍보해주시기도 했어요. 책방의 장점이기는 한데, 이런 후원자분들이 실제로 오셔서 인사할 수도 있었고요.


Q10. 수입은 어떻게 내고 계세요?

책이랑 커피 판매, 상품 판매 등 수입원은 다양해요. 그래도 책 판매가 제일 크죠.


Q11. 앞으로 달리 봄의 행보를 알려주세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할 것 같아요. 나중에는 관련 영화감독님도 모여서 함께 토크도 하고 싶고 집담회도 열 거예요. 중년 여성들과 젊은 여성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고 싶어요. 아, 무엇보다 이 책방이 지역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동네가 좋아요. 마을 동네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만드는 등 더 재미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Q12. 하고 싶은 말?

승리 : 섣불리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하하... 그래도 뭔가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수능을 너무 열심히(만) 공부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머리가 좋은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공부만 하려니까요. 그때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 시험들에 대한 공포가 생긴 것 같아요. 좀 더 즐기면서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공부가 아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부러워요.

소연 : 여러분들이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다른 친구들이 더 많은 생각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갇혀있는 삶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잖아요. 대학을 목적으로 사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자기 반항의 시간을 한 가지씩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요. 숨통이 트일 시간이 하나씩은 있어야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사유의 시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저는 라디오 많이 들었거든요. 물론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거예요. 그렇지만 런 딴짓의 시간들이 소중했던 것 같아요. 반항의 시간을 가지세요..!!!




 평소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게 가장 와 닿은 한마디 말이 있었다. 페미니즘을 통해 나의 삶을 찾아가고, 페미니즘을 통해 나의 언어를 찾아간다는 말이 그랬다.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이성애자로서, 그리고 성 소수자로서 스스로의 행동과 언어를 속박당하는 시대 속 달리 봄의 선택은 '책'이었다. 출판에서 시작해 책방을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류소연 씨와 주승리 씨를 계속 응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짧은 게 인생이라고들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좋아하는 일의 가치에 앞서 '공포'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일의 가치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 일에 대한 대가와 고생이 과정에서의 행복과 즐거움보다 앞서는 사회. 낙관을 강요하자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그 두려움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먹고살만해요"라며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분의 표정이 계속해서 기억난다.


 '일'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 누군가에게 일이란 자신을 설명함에 있어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과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일을 해나가는 것이 어쩌면 혜림이와 은교, 그리고 내 공통점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벽을 깨야 할 것이다.

대책 없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다, 눈앞만 본다, 머리가 비었다 등등...

하지만 우리의 머리는 너무나 많은 고민들로 꽉꽉 채워져 있어서, 지금의 일과 인생이 행복한 사람들에게 묻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빈 것(공空)처럼 보이는, 자신만의 삶을 말이다.


당신의 공(空)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승리 : 저의 공은 ‘설득’이에요.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득해야겠죠.
소연 : 저의 공은 '고민의 연속'이에요. 내가 만든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게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할 거예요.


꼭 가세요. 두 번, 아니 세 번 가세요.




2017년 10월 6일, 내려앉은 어둠 속

        오늘 나는 언어를 선물하는 책방, 달리 봄을 만났다.


사서함

boosw1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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