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일상적 글쓰기' 제작팀 텐비 인터뷰 with 헤림이와 은교
매일 아침, 눈을 떠보면 내 핸드폰 상단 위에는 '씀'이라는 이름의 알림이 떠있다. 정확히는 '씀-일상적 글쓰기'라는 이름의 이 앱은 오전 오후 7시마다 앱의 사용자들에게 글감과 그와 관련된 문장을 보내준다. 유난히 우리 학교에 이 앱의 팬들이 많았고 나도 매번 글감을 통해 정신을 힐링(?)하고 있었기에 다음 인터뷰이를 찾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M4102 버스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엄청 컸다. 길을 잘못 들어 IBK기업은행 1층에서 헤맬 뻔했지만, 웬일로 혜림이와 은교가 길을 찾아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팀 텐비는 인큐베이팅 기업의 투자를 받고 있었다. 1층의 검색대를 앞에 두고 어떡해야 하나 매우 고심하고 있었는데 텐비 분들께서 직접 1층까지 우리를 마중 나와주셨다. 수많은 회의실 중 한 곳에 들어갔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건물 안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업을 위한 앱? 크리에이터의 앱!
Q0.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윤재 : 저는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이윤재고요,
지형 : 저는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는 이지형입니다.
Q1. '씀-일상적 글쓰기'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허무하지 않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나온 게 '글'이었죠. 글 쓰는 사람들이 단순히 흥미를 얻는 것을 넘어 자기의 글을 기록하고 다른 글을 담거나 구독하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말이에요. 그런 게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전히 그런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고, 글 쓰는 사람과 글쓰기를 위한 공간으로서 계속해서 노력할 것 같아요.
현재 저희 앱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을 대충 추산해보면 20대 초반 여성분들이 가장 많으세요. 그다음이 10대, 30대 순인 것 같아요. 전체를 놓고 보자면, 남성 분들보다는 여성 분들께서 많이 이용하시죠.
Q2. '씀-일상적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우선 저희는 학교 선후배 사이였어요. 2013년부터 룸메이트 생활을 해 오다가 2015년 2학기에 처음으로 이 앱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하게 됐죠. 그 해에 '텐비'라는 이름을 붙이고 12월에 씀을 만들었어요. 이듬해 3월에는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선정돼서 투자를 받게 되었어요. 덕분에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죠.
처음에 저희가 바라 왔던 건 어떤 '회사'라기보다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저희의 생각이나 색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매출을 엄청나게 내는 것보다는 저희가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제작하고, 여러 가지 앱을 만들어보면 나중에 저희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저희의 앱을 쓰면서 '아, 이건 텐비꺼다'할 수 있도록 말이죠. 사업적 접근이 아니라, 앱을 마치 앨범처럼 찍어내는 크리에이터의 느낌이랄까요? 그 처음이 '씀'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어~무 좋았던 거예요. 그치만 씀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런 목표는 계속 가지고 갈 것 같아요. 저희만의 의 색을 녹여서 계속 활동해나가고 싶어요.
Q3. 공대를 나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글'을 가지고 사업을 하려 하셨나요?
인터뷰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질문이에요. ㅎㅎ 저희는 이 '글쓰기'야 말로 가장 대중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만약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비공대생이었다면 이걸 앱으로 출시하지도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은 저희가 출판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는 보다 더 디자인적인 요소들을 집어놓고, 기술적인 요소를 통해 이를 훨씬 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거죠.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이 있잖아요. 자신이 경험한 경험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저희에겐 바로 '앱'이라는 포장이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 뭐 있어요?
Q4. 씀을 보면 종이라든가 만년필이라든가 '아날로그'의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이런 디자인을 고집하게된 이유가 있나요?
'철학'이라든가 뭐 그런 대단한 언어를 붙이기보다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디자인한 것 같아요. 토스 앱을 보면 그 숫자만 있는 게 가장 깔끔하고 좋잖아요. 저희가 제공하려는 경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이런게 아닐까 싶어요. '종이'라는 컨셉을 선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에요.
모바일에서도 글쓰기를 하지만, 글쓰기 자체는 그 전에도 있었던 거잖아요. 종이, 그리고 책도 그렇고요. 모바일에서 종이책이나 E 북 형태가 아닌 다른 방식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 완전히 찾지 못한 거겠죠. 그 해답을 저희는 '익숙함'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것 같아요.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유는요?)
처음에는 더 화려하게 했었죠. 요소도 화려하게 넣고 원래는 인터페이스 자체가 원고지 느낌이 강했어요. 그리고 그걸 다 뺐죠.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건 몇 개 안되요. '글'을 잘 읽을 수 있는 앱, 이거 하나만 살리면 되더라고요. 중심은 글이고 디자인은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Q5. 글감은 어디서 얻나요? 선정 기준이 있다면?
주로 책에 있는 문장을 수집하고 그 문장 중에서 중심이 되는 단어나 뽑아낼 수 있는 것들을 뽑아서 주제로 배치해요. 도서관을 갈 때도 있고 주로 인터넷을 많이 사용해요.
선정 기준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몇 백개의 글감을 쌓다 보니까 '아, 이런 글감이 좋겠구나'라고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요. 어느 정도 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너무 편협한 단어는 선택하지 않으려 해요. 특정 직업군만 알 수 있는 단어라든가 한쪽으로 생각이 치우칠 수밖에 없는 단어도 마찬가지고요. 시기에 따라 글감을 넣기도 했어요. (촛불이라든가...) 저희가 제시한 단어들을 보며 몇 천명이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Q6. 글감을 하루 두 번 7시에 제공하는 특별한 의미는?
처음에는 두 번 줘야 할지 몇 번줘야할지 고민 많았어요. 결국 두 번으로 정하긴 했지만...ㅎㅎ 아침 7시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녁 7시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고요. 그래서 7시로 택했어요.
Q7. '글쓰기'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취미처럼 그냥 있는 게 글쓰기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건 학생 때부터 저희 삶에 항상 따라붙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씀을 기획한 것도 글쓰기 어플을 만들자고 해서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을 녹이다 보니 글쓰기가 됐을 뿐이에요. 처음에는 저희가 뭔가를 만든다 해도 이것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근데 일단 누군가에게 (결과물이) 다가가면 그것에 점점 의미가 생기더라고요. 마찬가지였어요.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뭔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점점 저희 자신에게도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문을 여는 순간을 기억하세요.
Q8. 2016 구글 올해의 앱이 되었잖아요. 그 동력은 뭘까요?
그 동력이 대체 뭘까요? ㅎㅎ 처음 선정됐을 때 당연히 기뻤죠. 국내 앱스토어에서도 선정됐는데 알고 보니까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 양쪽에서 선정된 유일한 앱이었어요. 음... 저희는 비즈니스를 전달하는 게 아닌, '경험'을 전달하고자 해요. 마치 "우리가 이런 '경험'을 설계해봤어!" 식으로요. 일부 엄청 잘 나가고 잘 만들어진 앱이 비즈니스를 위해 소모되는 것을 꽤 보아왔어요. 저희의 다른 점은 그곳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
Q9. 수익은 어떻게 내고 계세요?
‘종이 책’ 기능을 통해 단기적으로 수입을 내기는 해요. 기본 백권 이백권 단위에서밖에 제본을 못하는데, 그냥 자기가 쓴 글들을 매듭지어 보관하고픈 일반인들께는 힘들잖아요. 그런 개인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글 쓰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거죠.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가 앱 제작자들을 강하게 도와주는 만큼 저희가 설계하고 개발한 것 안에서 사람들이 글 쓴 것을 퍼트려주고 싶어요. 장기적인 프로젝트죠.
Q10. 특별히 좋은 점, 혹은 힘든 점이 있으시다면??
좋은 점은 물론 자아실현이죠. 자연스럽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무난하게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그랬으면 제 인생에 자연스럽게 사는 게 아니겠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그런 삶이 좋아요.
나쁜 점은, 불안정성이죠. 대학교 무난하게 졸업하고 무난하게 취직하면 후에 불안하지는 않잖아요. 저희가 직접 앞으로 뚫어야 하고... 대체로 일이 좀 많아서 힘들어요. 둘이서 하다 보니까.
고등학교 때는 기업에 입사하려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대학 때 창업팀을 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깨달은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요. 처음에는 되게 미숙해 보이더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자기가 될 때, 내가 더 나답게 될 때를 경험하면, 절대 그때 이전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다시 시스템 속에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Q11.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저는 스무 살이라는 글감을 되게 좋아해요. 20대의 전후에 있었던 시간들이 아쉽더라고요. 중고등학생 때는 사실 공부만 했어요. 수학을 조금 잘 하니까 이공계를 갔고, 물리를 잘하니까 기계공학과를 갔고... 그러다 조금 변화한 게 창업과 공모전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요. 조금 더 그 시점이 빨리 왔었어야 하지 않아 싶기도 해요.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문을 여는 순간, 이미 할 일은 다가오고 있거나 혹은 와있을 거예요. 다만, 그 문을 여는 순간에 집중하길 바라요.
인터뷰 중 조심스럽게 꺼내신 이야기가 있었다. 씀 앱을 개발하기까지의 도전들, 즉 자신의 실패들이었다.
"실패의 시기가 길었어요. 다른 팀도 여러 번 겪었고요. 네다섯 번 정도 망했어요. 그럴 때 드러나더라고요.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흉내 내는 사람과 원래 그런 사람의 차이가요... 과정을 쫓던 사람들은 (결과에) 상관이 없겠죠. 원래 그렇게 살려고 했으니까. 물론 실패하면 힘들어요. 엑스포에서는 심지어 비웃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온 힘이 빠져나갔죠. 근데 관심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가슴은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 소처럼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가 기억났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텐비의 분들이 말을 엄청 유창하게 하시는 분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담담한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다르게 산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답게 산다는 것, 나의 '나다움'은 무엇인지... 고민할 게 또 하나 늘어나버렸다.
오늘 아침에도 씀의 알림이 떠 있었다. 그냥 좋아서 훑고 지나갔던 그 글들을 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어졌다. 씀이 보내준 글감은 '힘든 일'이었다. 힘든 일 속에서, 가장 힘들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텐비의 모습이 새삼 멋있다.
'일'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 누군가에게 일이란 자신을 설명함에 있어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과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일을 해나가는 것, 그런 삶을 원하는 게 어쩌면 혜림이와 은교, 그리고 내 공통점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벽을 깨야 할 것이다.
대책 없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다, 눈앞만 본다, 머리가 비었다 등등...
하지만 우리의 머리는 너무나 많은 고민들로 꽉꽉 채워져 있어서, 지금의 일과 인생이 행복한 사람들에게 묻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빈 것(공空)처럼 보이는, 자신만의 삶을 말이다.
당신의 공(空)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윤재 : 저의 공은 '숙명'이에요. 저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으니까, 이렇게 살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2017년 10월 11일, 길 막히는 퇴근길
오늘 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주인공, 텐비를 만났다.
사서함
boosw1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