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게_ 앱 '씀' 개발자, 팀 텐비(10B)
이름에게_ 앱 ‘씀’ 개발자, 팀 10B(텐비)
이름에게
1
올여름이었나,
글을 쓰는 게 너무 무서울 때가 있었어.
특히나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것이, 무섭더라고.
나는 무언가를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내가 가장 쓰고 싶고,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오직 나에 대한, 내가 보고 느끼고 겪은
감정과 사람과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그게 무섭더라.
2
나를 드러내야 쓸 수 있는 글이어서 무서웠어.
내가 너무나도 보이는, 글이어서 무서웠어.
그래서 한동안 sns를 거의 하지 않았어.
글로 쓰고 있던 나름의 프로젝트들도 한동안 덮어두었지.
사실 이 편지는
사람들을 만난 후,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한 장 한 장, 나를 드러내는 종이이기도 해.
다시금 용기를 가지는 거야.
3
어느 날에 친구가 어떤 어플을 하나 추천해줬어.
완전 네 취향일 것 같다며.
이름이 ‘씀’ 이더라고.
‘일상적 글쓰기’라는 한 줄과 ‘씀’이라는 한 단어로
어플의 첫 장은 채워져.
가장 설렜던 건 간결한 디자인과
아침, 그리고 저녁 7시마다 띠링-하고 울리며 도착하는
‘글감’이야.
4
글 쓰는 게 무서웠던 나에게
다시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어플이더라.
누구든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더라.
그래서 마음이 갔어, 참 많이.
5
윤재 씨(이윤재)를 만났어. 그리고 지형 씨(이지형)도 만났지.
두 사람은 '씀'이라는 어플을 개발한 이십 대 후반의 청년들이야.
날이 되게 좋았던 걸로 기억해.
사무실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의 첫인상을
나는 조금 차갑다고 느꼈는데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더 더 마음 열고 싶은 분들이었어.
'씀'은 하루에 두 번 글감을 제공하고, 언제든지 어떤 글이든 쓸 수 있는
어플이야. 공개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윤재 씨 그리고 지형 씨는 처음에
스마트폰을 허무하지 않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대.
그 결과가 바로 '글'이었고, 글 쓰는 사람들이 단순히 흥미를 얻는 것을 넘어 자기의 글을 기록하고 다른 글을 담거나 구독하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어.
6
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난 두 사람은
2013년부터 룸메이트 생활을 해 오다가 2015년에
10B(텐비)라는 이름을 만들고(프로젝트 팀 이름) 12월에 '씀'이라는 앱을 만든 거야.
나중에는 누구든 '아, 이건 텐비꺼다!' 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들을 하고 싶으시대.
7
'씀'을 써 보면 알겠지만
이 독특한 아날로그함이 나는 참 몽글몽글해.
마음이 따듯해지는 디자인이야.
윤재 씨는 이런 '아날로그'한 느낌, 간결한 구성에
특별한 철학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했어.
그저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거야.
종이라는 컨셉을 생각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지.
"처음에는 디자인을 더 화려하게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다 뺐어요.
글'을 잘 읽을 수 있는 앱, 이거 하나만 살리면 되더라고요.
중심은 글이고 디자인은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윤재 씨
8
'씀'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글감, 이라 생각해.
가끔씩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속 깊은 곳이 간질거리기도 하는-
이 '글감'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윤재 씨는 보통 '책'속에서 문장을 찾는다고 했어.
구체적인 선정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윤재 씨, 지형 씨 마음에 들면
대부분 반응이 좋다더라고!
9
대화가 마지막으로 다다를 때쯤,
윤재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
이 일의 좋은 점은 자아실현이라고.
이게 내 인생의 가장 자연스러운 방향인 것 같다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나는 언제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르게'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나 봐.
사회의 기준, 정해진 틀에 얽매여서 살지 않는 것,
그렇게 살지 않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나에게는 '다르게' 사는 거였고
윤재 씨한테는,
'자연스러운'거였던 거야.
마음이 쿵-했어.
가장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 결국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겠구나, 싶었어.
10
"고등학교 때는 기업에 입사하려 생각했어요.
그치만 대학 때 창업팀을 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깨달은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요.
처음에는 되게 미숙해 보이더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자기가 될 때,
내가 더 나답게 될 때를 경험하면, 절대 그때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다시 정해진 시스템 속에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윤재 씨
11
윤재 씨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더니
'씀' 앱에서 글감 하나를 건네주었어.
스무 살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김연수 <스무 살>
'스무 살'이라는 글감을 좋아한대.
이십 대 전후에 있었던 시간들이, 아쉽기도 하다고 했어.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만 했대. 수학을 잘 하니까 이공계를 갔고, 물리를 잘하니까 기계공학과를 갔고.
그러다 조금 변화한 게 대학에 들어와서
창업과 공모전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거지.
윤재 씨는 조금 더 그 시점이 빨리 왔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이야기도 했어.
그리고 말했지.
내 삶의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문을 여는 순간, 이미 할 일은 다가오고 있거나 혹은 와있을 것이라고.
다만 그 '문을 여는 순간'에 집중하길 바란다며.
12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으로 물었어.
당신의 공(空)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실패의 시기가 길었어요. 네다섯 번 망했어요.
그럴 때 드러나더라고요. 흉내 내는 거랑 원래 그런 사람은 거기서 드러나요.
자연스럽다는 게,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나를 딱 관측해보니까 나는 이렇게 살게 돼있는 거예요.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숙명'인 것 같아요. 이걸 안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윤재 씨
13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야.
윤재 씨는.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지, 지형 씨는.
자연스러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것 같아.
나답게 산다는 것,
그것이 결국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일 테니.
멋졌어.
이들의 이야기가, 꿈이.
나도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넌 어때,
자연스럽게 살고 있니?
14
그제 밤은 별이 참 많았는데
오늘은 조금 흐린 것 같아.
별이 수두룩한 밤에
아니 그냥
글을 쓰고 싶은 어느 날 밤에
다시 편지할게.
안녕.
타인이 아닌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로 삶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공(空)의 반란, 계-속
공(空)의 반란 프로젝트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전달합니다.
모든 글은 '이름에게' 전하는 편지입니다.
여기서 이름은 불특정 다수를 칭합니다.
결국 나는, 나에게. 너에게.
'이야기'를 가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내가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꾸-욱 눌러써 보냅니다.
사서함
pt007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