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디자인 기업 000간 인터뷰 with 혜림이와 은교, 그리고 오경
이렇게까지 늦어버릴 줄은 몰랐다. 버스 안 시계의 숫자는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비싼 돈 주고 택시까지 탔지만 시간은 이미 늦어버렸다. 게다가 은교가 길을 잃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산 능선을 뛰어다니며 은교를 찾아다녔다. 은교와의 기적적인 재회 이후 000간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완전 지각을 해버린 후였다.
창신동의 언덕은 험했다. 혜화역과 동대문역 사이 오르막길의 골목을 따라 작은 가게들이 붙어있었다. '000간'은 생각보다 작았다. 가게에 있는 개 한 마리가 땀에 절어있는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무려 40분이라는 시간을 지각한 만큼, 죄송한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럼에도 에어컨을 틀어주시면서 "어차피 5시에 퇴근할 거예요ㅎㅎ"라며 정신없던 우리를 배려해주시는 홍성재 대표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많이 급했고 부족했지만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말씀하시며 타이트하게 진행해보자는 대표님의 말씀을 따라, tight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성장 시대 자원의 낭비를 줄이며
환경과 삶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Q0.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000간의 공동대표, 홍성재라고 합니다. 별명은 키다리 랍니다. ㅎㅎ
Q1. 000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크리에이터들의 작업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디자인을 전공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 거죠. 다만 저희는 보다 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고자 해요. 이런 과정 속에서 정착한 곳이 동대문에서 옷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이 곳, 창신동이에요.
저희 000간은 크게 제품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눠져 있어요. 제품 제작과 디자인 컨설팅이 바로 그것이고, 지금은 총 여덟 명이 함께 일하고 있죠. 실질적 업무는 홍보 마케팅, 회게, 제품 배송, 관리, 기획, 진행 등 다양하게 세분화되어있고 한 번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현재는 여덟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요. 여러 사람들이 겹쳐서 함께 일하는 구조예요.
Q2.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인가요?
저희가 내린 결론은, '저성장 시대에 자원의 낭비를 줄이며 환경과 삶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었어요. 이것을 위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 되겠다고 결심했고요. 자연스럽게 공공기관과 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시, 환경부, 자활센터, 사회적 기업, 그리고 타 사회적 운동단체들을 파트너 삼아 함께 일을 진행하기도 해요. 자연이나 마을 공동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많이 접하기도 하죠.
예술가가 그림만 그리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Q3. 사회적 경제가 일반적인 시장 경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이런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자유시장과 사회적 가치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유시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겸할 수 있다는 거죠. 원래 사회적 경제는 사회주의 경제가 아니라 자유시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사회적 기업만 사회적 가치가 있는 게 아니고, 모든 기업이 사회적 가치가 있어요. 그렇지만 일반적인 기업이 0에서 100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사회적 기업은 마이너스에서 0으로 가는 거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도 사회적 경제 안에서 가능해요.
'예술가'라는 사회의 인식이 너무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 속에 빠져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 이러한 편견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예술가들이 그 틀 안에서만 활동해왔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그림만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잖아요? '확장된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 단기적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즈니스가 됐어요. 더 나아가 이 비즈니스에 사회적 가치를 띄고자 노력했던 거고요.
Q4. 000간은 어떻게 변화해왔나요?
저희가 전시를 해서 관람객과 만났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쓱 지나가더라고요. 관객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결론은 '교육'이었어요. 방과 후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을 했던 게 시작이었죠. 한화그룹과 함께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했었는데, 지금보다도 훨씬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ㅎㅎ 근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누구지? 예술 교육자? 방과 후 선생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저희가 처음부터 진행했던 것도 아니었고 언제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 있는 구조(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조직화된 예술공간을 만들게 된 초석이었던 것 같아요.
확장된 예술가를 꿈꾸며 전시보다는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되었고, 저희 개개인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이것을 브랜드로 확장시키고 있고요. 여전히 현재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Q5. 0 디자인, 0 캠프, 0 마켓이라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좀 이전에 정리한 개념이에요. 지금의 000간에는 제로 디자인이라는 브랜드와 000간 자체의 프로젝트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저성장 시대에 낭비를 줄이는 디자인을 하자는 취지에서 제로 웨이스트 패턴의 옷, 업사이클 등을 하고 있고 이것들에 제로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저희의 제품에 붙이는 게 '제로 디자인'이고, 프로젝트는 그냥 '000간'으로 하는 거죠. 두 개의 브랜드가 공존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0 캠프에서 교육도 하고 0 마켓을 열기도 하지만, 이것들 자체를 000간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서 규정했어요.
Q6. 대표님께 '디자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문제를 구조로서 바라보고, 그 구조를 자기 삶에 맞게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상외로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사소할 때가 많아요. 사람마다 문제에 대해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를 예시로 들어볼게요.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잘못하면 몰아주기가 되고 잉여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희는 아침에 다 같이 청소하기로 했어요. 이런 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재배치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청소를 하게 되면, 다 같이 청소를 하게 되고, 지각에 대해 예민해질 필요가 없더라고요.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상태에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지각했지만 화내지 않잖아요?^^ 저희는 어차피 5시에 갈 거거든요~
뭔가 만들고 창작하고 싶은 크리에이터들이 만나서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계속 실험하고 있고, 그 공간이 바로 이 000 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디자인이란, 문제를 구조로서 바라보고 재배치하는 것
Q7. 000간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제 생각에는 모든 프로젝트에 잘한 점과 못한 점이 굉장히 골고루 있는 것 같아요. 완벽한 성공도 없고, 처절한 실패도 없더라고요. 한 번은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사실 잘 안됐어요. 근데 그걸 계기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프로젝트를 했을 때 뭔가 잘됐고 못했고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한테는 한 작품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000간이라는 프로젝트 하나를요.
Q8. 창신동 근처에서 000간과 함께 협업하는 기업은 없나요?
마을 공동체가 있어요. 마을 라디오하시는 분도 있고, 연극을 진행하는 아트 브릿지라는 사회적 기업도 잇고 마케팅/워크숍을 진행하는 한다리중계소라는 곳도 있어요. 봉제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회의도 하죠. 힘든 점도 있지만, 친목을 쌓으면서 심리적 거리가 좁아지는 것 같아요. '해적단'이라는 동네 모임도 있어요.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건데, 그런 모임은 힘들지 않죠. 매달 리더를 바꾸는 모임이기 때문에 대표 코스프레를 좀 덜 해도 되고요. ㅎㅎ
Q9. 일을 하며 특별히 좋은 점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확장된 예술가'로서의 마음을 먹게 된 게 저에겐 굉장히 중요했어요. 기존의 예술가의 틀을 탈피할 수 있었죠. 그리고 함께 일하는 것의 가치를 깨달은 게 정말 크더라고요.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게으른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놀고 싶고 쉬고 싶죠. 리더로서의 부담과 책임이 커지면서 더 힘들었어요. 그걸 이겨내면서 강해진 것 같아요. 제가 학교를 다니며 프로젝트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몸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견디면서 강해진 것 같아요.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용량이 커졌는데, 그러기 위해 굉장한 고통이 필요했어요. 과정이 사람을 만드는 거죠.
힘든 건, 일이 막 퍼져나가고 고민도 많아졌다는 거죠. 그래서 퇴근을 정시에 하기로 했어요. 8시부터 5시까지 힘들게 하고 뒤에는 다른 삶을 사는 거죠. 그래야 행복하더라고요. 일을 위해 저를 희생하는 건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행복하게 산다는 것
Q10. 000간의 향후 계획 혹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매출을 늘리고 싶다는 목표도 당연히 있어요. 하지만, 매출을 10배로 늘리자는 건 우리가 10배로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 좋은 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신에 가득 찬 답을 하고 싶어요. 저와, 저희 구성원들의 공통적인 목표예요.
직원들과 함께 회사에 있을 때 잘 성장하고, 더 좋은 기회가 있으면 다른 공간에서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제까지나 같이하는 건, 대표의 환상이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책도 쓰고 싶어요. 청소년들이나 대학 초년생들이 멘토링을 많이 의뢰하는데, 그런 것들을 좀 더 잘 전달해주고 싶더라고요. 삶의 중후반쯤에 도전해보려고요.
Q11.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질문했으면 좋겠어요. '왜 사냐?'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어요. 태어나니까 사는 거죠 뭐. 일단은 선택을 받았다면 끈질기게 살아가야 할 텐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게 돼요.'행복'은 거기서 나오는 추상적인 답변 중 하나예요. 제가 지금까지 정리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배움과 성장, 마음의 평화 이 세 가지더라고요.
내가 어제보다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배움의 공간도 필요하겠고요. 마음의 평화는 그런 상황에서의 침착함을 의미해요. 좋은 것이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쁜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 담담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기준을 '나'로 잡고, 흔들리지 않기를 응원할게요.
앞으로는 무조건 인터뷰를 넉넉하게 잡아야겠다. 창신동 내리막길을 걸으며 계속해서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남기고 온 기분, 아직 끝나지 않은 기분... 급하게 진행한 인터뷰였기에 뭔가를 두고 왔다는 느낌이 강했다.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 나에겐 다소 생소했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홍성재 대표님의 삶이 어떻게 000간이라는 기업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000간의 빈칸을 스스로가 어떻게 채워가는지를 들을 수 있었던 진솔한 시간이기도 했다. '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이미 자신만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셔서인지, 홍성재 대표님께서는 삶의 빈칸을 물어보는 우리의 질문에 빠르게 답해주셨다.
누군가의 삶의 맥락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의 이 인터뷰가 내게 있어 그런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직업을 넘어 사람을 묻고, 나의 길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인터뷰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인 것 같다.
홍성재 대표님이 말씀하신 디자인의 의미가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사회학'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그 현상을 넘어 이면의 원리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대표님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디자인해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000간'. 슬슬 나의 빈칸을 채워가야 할 스무 살이 다가온다. 나의 공간에는, 나의 삶에는 어떤 것들이 그 자리를 잡아갈지 잘 모르겠다.
난 뭐 먹고살아야 하지? 쳇
당신의 공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성재 : 저의 공은 '소셜 디자인'이에요. 사회적 가치가 있는 디자이너로서, 제 삶을 디자인할 거예요.
2017년 10월 20일, 해질녘
오늘 나는 빈칸의 디자이너, 000간을 만났다.
사서함
boosw1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