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우 Aug 16. 2018

반년, 글을 쓸 수 없었던 시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안부글

 스무 살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디퍼에서 한 달 반 정도 인턴을 하며 '기자'라는 직업을 미약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었고, 지망하던 사회학과에 들어가 제 자신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기사는 단 하나도 쓰지 못했지만요.) 대학에 가서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있습니다. 소학회, 과대표, 학생회 등등... 귀찮아서 들어가지 않은 동아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걸 다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저는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페이스북에 글을 쓸 수 없다는 투정을 한 껏 내뱉은 글 외에 제가 한 학기 동안 쓴 건 과제와 리포트뿐입니다.

 왜 글을 쓸 수 없었느냐는 질문에 항상 답을 피해왔습니다. 비록 딱 한 가지 이유를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스무 살이 된 저는 유독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우학교, 제가 졸업한 대안학교는 제가 가장 제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 바친 건 저뿐만이 아녔습니다. 자신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내비치는 친구들이 78명이었으니, 진심 대 진심으로 맞부딪혔던 그 관계에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타자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훈훈함만이 존재했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귀에는 제가 누군가에게 눈치 없이 행했던 행동들에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이 두려운 사람도 되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강했던 만큼 누군가에게 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몇 개월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보일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경계하기 시작했고 글을 쓰기가 두려웠습니다.


 2주간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홀로 있었던 시간 동안 많이도 외로웠습니다. 제가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느꼈지만 사람에게 가려졌던 지난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제가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거라곤 친구들과 찍은 사진 몇 장과 드문드문 올렸던 인스타그램뿐이었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열심히는 살았지만 그 어느 것도 남은 게 없다는 생각에 뒤늦게 후회를 거듭했습니다. 스무 살에 적응하느라 다소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생각보다 좋은 사람도 많지만 거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고요. 그럼에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잘 쓰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여유 속에서 그 시간들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어디서 주워듣고 온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이야기도 아닌 제 이야기를 가득 채운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셨을 제 글(아무 말)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만나요 우리,

작가의 이전글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