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성 Jan 06. 2020

길 아래 길

길 위의 달이 길 아래 나를 보고 있었네

잠수교를 지나는데, 달이 그래곧 하늘이래.     

넌 빛나렴.

찬란한 네 빛을 따라 언더 로드를 달려갈 테니.


며칠 전, 유난히 빛나던 달이 있었다.

달리던 길이 잠수교라 하늘을 보지 못하다가 길이 끝날 무렵 비로소 발견했다. 앞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가다 서다만 반복하던 나는, 무심코 창밖 다리 너머로 보이는 달에 눈이 닿았고 계속 달을 보며 정체 구간을 빠져나오다가 앞차가 멈춘 틈을 타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아쉬운 한 장을 찍자마자 이내 길이 뚫리자 아쉬운 기분이었다. 조금 아까까지만 해도 시원하게 길이 뚫리기를 원하던 내가 손톱만 한 달을 찍겠다고 길이 더 막히기를 바라는 변덕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더럽게 막히는 길’이 ‘낭만의 달빛 드라이브’로 바뀐 것은 매일 떠 있는 ‘달’ 때문이었다.

‘길’에서 ‘달’로 시선을 옮긴 순간, 잠수교에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지난주 제주도 출장이 떠올랐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관공서의 정책과 현황을 조사해야 할 건조한 일정이었다.

출장의 마지막 오후였던 토요일, 지인들과의 마지막 회의 중에 문득 ‘이기풍 선교기념관’을 보고 오라던 신임 관장님의 권유가 떠올랐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만한 가벼운 당부였는데 이날 이상하리만치 마음속에서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이 너무 강력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양해를 구한 뒤 혼자 자리에서 빠져나온 나는 콜택시를 불렀다. 마침 근처에서 콜을 받은 기사님의 차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미 해병대 폭파 요원 출신의 택시 기사님은 귀국 후 연달아 사기를 당해 몇 년째 예배를 놓치고 있던 ‘잃어버린 양’이었다.

“형제님, 실은 제가 예수님의 제자거든요.” 불쑥 튀어나온 이 말에 그 형제님은 KO 되고 말았다.    


 

마침 제주 지역의 교회를 추천받아뒀던 나는, 다음날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약속했고, 목사님께 미리 부탁을 드려 예배 30분 전에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아카페 교회’ 앞 공터에는 예수님께서 타셨을 듯한 어린 나귀 한 마리가 있었다.

마치 “남루한 등을 내어드려!”라고 말하는 듯….     



수도권 대형 교회의 원로목사님이셨던 이 목사님은 신임 목사님과 성도들께 부담이 될까 봐 은퇴 후 캄보디아로 선교를 7년간 다녀오시고 귀국하셔서 바로 제주로 내려오신 분이셨다. 고난을 위로하시는 목사님의 음성은 겸손하고 잔잔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내게도 이번 출장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이 형제님일 수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생각하는 길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길이 다르다면서.

목사님도 예전에 담임목사님을 청빙 하려는 어떤 교회에 가신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추천하려던 분이 있었는데, “밖에서 보석을 찾아오려고 하지 말고, 교회 안의 원석을 찾아 보석으로 만드십시오.”라는 말씀이 튀어나오더라는 것. 그래서 자기가 추천하려던 목사님은 안되고 원래 그 교회의 부목사님이시던 분이 담임목사님이 되셨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때 세워진 목사님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실 거라는 그 교회는 놀랍게도 신반포교회. 우리 홍문수 담임목사님이 세워지던 때의 히든 시크릿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에 나귀의 입처럼 쓰임을 받았더라며 회상하시던 목사님은 마찬가지로 그 형제님을 향한 계획에 나도 나귀처럼 쓰임을 받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더구나 내가 신반포교회 성도라는 걸 아시고는 더더욱 기뻐하시며 홍 목사님이 밥 한 번은 꼭 사셔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함께 한바탕 웃기도 했다.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아카페 교회(권혁선 목사님)


이번 출장은 그랬다.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 쓰임 받은 입술. 몇십 년 후 제주도에서 다시 만난 그 입술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 그 속에서 다시 찾은 잃어버린 양. 그저 누추한 등을 내어드린 어린 나귀의 황홀한 경험.

하나님의 계획이 빛처럼 비추자, 그저 고단한 출장이라 여겼던 출장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 속 동행이었다.     



보이는 길이 다가 아니다.     


길 아래에 내게 보이지는 않아도 그분의 통치대로 숱한 천사들과 섭리가 달리고 흐르고 있다.

달빛 하나로도 개념이 송두리째 바뀌는 잠수교처럼, 어둡고 숨 막히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아도, 선하신 그분을 발견한다면 암흑은 오히려 감미롭고 안전한 날개 품일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그분의 섭리를 발견하는 길. 그분이 비추시는 길을 우리는 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길 아래 길을 살펴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이제 펼쳐질 2020년에도.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렘 6:16]

작가의 이전글 주인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