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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Dec 20. 2017

天池, 그 먼 기슭

2017 : 먼 길 돌아 말고, 걸어서 오라.

해 돋아 밝히기 전 아침을 몰고 나섰다.

오래전 헤어진 우리 할미 할배들의 고단한 꿈이 한창인 이국의 기슭, 새벽 마을을 스쳐,

하늘 향해 한껏 뻗은 미인송 솔 길 지나 달려가면

바벨탑의 천형으로 다른 언어를 쓰는 대륙의 드라이버가 우리를 재촉하고

이내 종종거리며 하늘의 아들들과 함께 갈망하던 비탈을 오른다.


누구는 백두라 누구는 장백이라 부르는 그 산.

무어라 불리어도 무심한 그 천정에는 마치 양손을 모아 하늘의 눈물 담은 듯한 오랜 연못이 여전하고, 먼 타국 땅까지 날아 돌아온 통탄의 후손들에게 스스로 덮고 있던 안개를 걷어 미소로 맞이할 뿐이다.


스러져간 시인의 슬픔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유황온천에 삶은 달걀 두 알을 그저 지폐 한 장과 바꾸고 있고, 그것으로 쌀도 사고, 아이 신발도 사며 일상을 윤택하게 보낼 땅의 꿈만 꾸고 있었다.

내 땅에서 난 가마솥에 뜨거워진 내 하늘 물 한 바가지 부어 휘저은 내 나라 라면 신라면, 내 나라 커피 맥심, 내 암탉이 낳은 달걀을 먹으며 왜 타국인 언어를 쓰는 이 살뜰한 처녀에게 낯선 돈을 쥐여줘야 하는 걸까.


산비탈 아스팔트는 계절마다 두터워져 가고, 굽이굽이 안전하라는 철벽마저 조밀해져 가고,

바뀌는 건 보초 선 청년의 나라요, 바뀌는 건 세상의 변덕스러운 가치이나

그 바람, 그 햇살, 하늘에서만 공급받은 물의 깊이는 그 자리에서 여전하기만 하다.



2017 天池, 그 먼 기슭


하늘이 연못을 맞았는가, 연못이 하늘을 맞았는가.

 

볼 때마다 똑같이 놀라고,

볼 때마다 똑같이 감탄하고,

그리고 돌아서서는 똑같이 금세 잊을,

천지.

이 딱딱해져 버린 내 심장들.


그래도 돌아와 뜬 해처럼 한결같은 감격을 주는 녹청의 수심봉이여.

반만년을 나지막이 오래 부를 하늘 눈물의 아리랑이여.

겨울의 미움 차마 녹이지 못해 간직한 여름 천지의 얼어붙은 눈물이여.


내 원통을, 내 소리를, 내 소원을 들으라.

너희가 오라.


먼 길 돌아 말고, 걸어서 오라.

사랑하는 내 아들들이여.


철망 걷고 피 흘리지 말고, 웃으며 오라.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


영원한 왕을 만나러, 길 열고 오라.

사랑하는 내 여러 나라, 그러나 한 나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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