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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Dec 11. 2019

선택적 함구증

단순히 조용한 성격이 아닌, 사회불안장애

나는 어릴적부터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일종의 불안장애를 앓아왔다. 

선택적 함구증이란, 언어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나는 어릴적 집에서는 엄청난 수다쟁이였지만 유치원, 학교, 학원 등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생활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것은 주로 어릴때 나타나는 사회불안장애이며, 적절한 시기에 치료가 필요한데, 부모가 성격상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아이라 치부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선택적 함구증을 겪었던 어린시절은 90년대여서 지금과 달리 정신질환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던 때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채 시기를 지나쳐 성인이 되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선택적 함구증을 방치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 것인지 오픈된 정보가 많지 않아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한다. 일단, 구체적으로 내가 유아기부터 학창시절 동안 겪은 증상은 다음과 같다.



- 밖에서 꼭 필요한 말 조차도 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대신 한다. 그로인해 사람들이 나를 언어장애, 벙어리로 오해하거나 꼭 해야하는 말을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일 등이 자주 발생한다.


- 웃긴상황에도 절대 웃지않으며, 웃음을 참으려 노력한다. (생각보다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목소리 한번 안내던 조용하던 애가 웃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이상한 강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미소를 띄면 '어? 쟤웃는다.' 하는 소리도 신경이 쓰였다.


- 아픔, 통증이 느껴지는 상황, 신체가 다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아야!"라는 말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소리를 스스로 통제하고 참으려한다.


- 인사공포증이 있어서 복도에서 선생님이 보이면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숨어버렸다. 인사를 안해서 선생님들께 혼이 많이 났는데,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6학년을 담당했던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자신들이 나의 성향을 잘 모르고 야박하게 굴어 미안했다며 잘못을 뉘우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선생님을 마주할 때마다 못하는것을 꼭 해야하는 불안함, 못했을 시 돌아오는 체벌으로 인한 공포가 커서인지 당시에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 생활기록부나 가정통신문에 적히는 나의 성격에 관한 글에는 10년이 넘도록 똑같은 말이 적혔다.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차분하나 말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


- 발표가 너무 두려웠으며 8살 무렵 발표중에 친구들 시선이 너무 무서워서 울어버렸던 경험이 있다.

(발표중에 울어버리자 선생님께서 화를 내며 내 책을 뺏아 집어던져서 1차 충격, 그와 동시에 어떤 공부잘하는 친구가 "말 못하는 사람은 바보랬는데"라고 대놓고 못을박는 바람에 2차 충격...)


-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학교에서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가 있어도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주로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내가 자신들이랑 놀기 싫어하는줄 알고 나를 점점 떠나고 나는 그로인해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런일은 어릴 때 뿐만 아니라 거의 평생 반복된다..



전반적으로 타인에게 내 목소리로서 존재를 드러내는일을 극히 꺼려하는 경향이 짙었고, 그 이유는 내 존재를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서였다. 사람들이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웃기게도 이 모든 증상은 바깥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며 가족이나 정말 가깝고 친한 사람만 모여있는 곳에서는 저런 증상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통지서에 적히는 나에 대한 평가와 달리 집에서 나는 전혀 차분한성격이 아니었고 바깥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고 덤벙대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학교만 가면 저렇게 180도 변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증상이 있단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더욱 쉽지않다.) 어느날 학교선생님이 밖에서 우연히 지나가며 나를 봤는데 엄청 활발해보여서 내가 아닌줄알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다중인격같은 상황 때문에 자아를 찾아가는 청소년기에는 정체성혼란이 오기도 했다.


나는 이 사회불안을 겪으며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음편히 지낸날이 거의 없다. 사회생활에서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것은 정말 치명적인 불편함을 야기한다. 친구관계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해보이기 때문에 딱히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고 성격이 너무 조용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아이라고 치부되어서 외톨이가 되기 쉽다. 외톨이로 지내는 동안에는 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 알바를 하거나 직장을 가졌을 때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생계적으로 문제가 되는것이다.


일단 알바를 할 때 부터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는데, 인사를 개미만한 목소리로 하다보니 인사를 안했다는 오해를 사서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고 그게 반복되어서 알바에서 잘린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턴을 들어간 회사에서도 시선공포증으로 인사를 잘 못하고, 실수한 일을 상사에게 알리지 못해서 문제가 되어 따로 불려가기도 하고.. 그 밖에 회사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못해서 대표님, 사장님등 윗사람들에게 사회성 좋지 못한 사람이란 인식을 주게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을 잘 못하다보니 자존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일을 모두 끝냈다고 상사한테 알리는 것 조차 불안감이 너무 커져서 말을 머뭇거릴 때 마다 나는 왜 이딴 별거아닌일도 제대로 못하는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문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재잘거리는 사람들 틈속에 끼어서 나만 홀로 덩그러니 있을 때,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모르는 그 뻘쭘함, 그 비참함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뎌내기가, 버텨내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일이 있을 때 마다 정말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집에 돌아와서 숨죽여 우는일이 반복된다. 이런 일들이 20년이 넘도록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쯤되면 죽는 것과 사는 것 중 뭐가 더 나은 일인지 햇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이러한 불안을 이겨내보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때 나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짐작하고 상담센터와 정신과를 갔었는데 거기에서 상담사, 의사는 나의 증상에 대해 부모님과 이야기하였을 뿐, 나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내가 정신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자체를 너무 슬퍼했고 부정했으며, 내가 나아질 수 있도록 응원해주지 않았고 관련 주제로 대화를 나눈적도 없었다.) 나는 상담을 할 때도 말을 하지않아서 상담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았고, 학교에서 겪는 일들이 너무 비참해서 (예를 들면, 밥을 혼자먹는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빵이나 삼각김밥을 화장실 변기에 앉아 숨어서 먹었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비참했다.) 눈물만 한바가지 쏟고 나올 뿐이었다. 상담사도 답답해했다. 여러 상담들이 반복되었지만 상담사들은 내가 어떤 사회불안을 겪고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고, 나도 내 증상이 그저 내향적인 성격인줄로만 알았다. 무려 이십대 후반까지 말이다. 

내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사회불안을 가졌다는것을 안 것은 2년전 새롭게 상담을 받으면서였다. 내가 어릴때 이상하게 여겼던 증상들이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말하는 사회불안의 증상이랑 딱 맞아 떨어지는것을 본 순간.. 그것만으로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나는 그 어디에서도 나처럼 말없는 인간을 본 적이 없어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이것이 어디서부터 꼬인것인지 몰라 한참을 헤맸는데, 딱 병명으로 나와주니 너무 속이 시원했다. 병명도 모른채 해결방법도 모른채 아픔을 견디는 시간들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 

나의 병명을 알려준 상담선생님과의 상담으로 나는 많은 생각들을 바꾸어 나갔고, 조금씩 미래를 긍정적인 색으로 칠해나가기 시작했다. 사교적인 이야기는 너무 못하지만 내가 알고있는 지식을 말하는 것에는 비교적 두려움이 적었던 나는 고통스러운 집단생활이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자신감을 찾고 싶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온지 1년만에 나는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학원에서의 여러가지 나에 대한 평가들,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이 또 나의 자신감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병명을 알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상담 후에 정말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치유와 회복뒤에 다시 찾아온 우울감... 그로인해 이런 일들이 앞으로 반복될거란 확신이 나를 괴롭힌다.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어떤 성향을 가지느냐도 중요하지만, 고유 성향이 잘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잘 파악하고 내가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가야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전하고 싶다.

어릴 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주라고 말이다.. 좋은 선생님, 따스한 마음을 가진 어른과 주변 친구들이 속한 집단속에서 아이 스스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 환영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말을 머뭇거리는 성인에게 세상 사람들이 건네는 시선은 굉장히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 차가움을 견디며 사는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성인이 되어서는 따스한 마음을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세상은 온실이 아닌, 야생과 같으니까.


선택적 함구증 치료에 관한 글

https://brunch.co.kr/@dadaworld/51




이 상황에서 내가 앞으로 행복하기위해 해야할일과 하지말아야할일들을 정리해본다.

내가 가장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은 집단의 대부분 사람들이 서로 친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 혼자 무슨말,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몰라 뻘쭘하게 있을 때다. 나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느낌.. 외톨이가된 느낌.. 그런 경험을 하고나면 항상 힘이빠지고 급우울해지곤 한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거나 하면 좋겠지만 야생에서 그런 호의가 일어날 확률은, 더군다나 평소 차가워보이는 인상의 사람에게 그런 호의가 베풀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 절대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다.

- 내가 주인이 될 수 없는 집단은 최대한 소속되는 것을 피한다.

- 집단에 소속되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기위해 특출난 능력, 전문지식을 쌓는다. 

- 사람들이 나를 환대해줄거란 기대를 갖지않는다. 기대 하면 항상 실망한다.

- 너무 조용하다, 말좀해라, 웃어라, 등등 나를 평가하고 조정하려는 말들로 나 스스로를 규정짓지 말자. 나는 그냥 나일 뿐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떠한 나'가 아니다. 사람들은 지가 좋으면 좋다하고 지가 싫으면 싫다한다. 그 말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신과의 문제며, 그 사람의 사유다. 타인의 생각에 노예가 되지 말자.

- 대인관계 경험이 적다보니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후회하곤 한다. 이를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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