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Oct 08. 2020

정신과 상담일기2. 약물치료를 시작하다.

선택적 함구증과 사회불안장애 그 사이 어딘가.

이 글은 정신과 병원 방문기다. 올 초 글을 적어보려했던 상담일기는 1회를 쓰고 난 뒤 장시간 보류상태였다. 심리상담에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되어 글로 남겨둘만한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상담은 20회기를 못 채운채 종료시켜버렸다. 이제 상담으로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오랫동안 이 증상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상담을 2년간 받아온 경력자로서, 마음이 어려울때 이겨낼 수 있는 온갖 긍정적인 이야기들은 다 알고있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나아. 저렇게 생각하는게 나아. 상담선생님은 내가 이미 알고있는 이야기들만 반복해서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러다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TV프로그램에서 선택적 함구증 아이가 나온 것을 본 뒤로 관련 카페에 가입하여 치료방법에 대한 여러 사례를 뒤지기 시작했다. 선택적 함구증은 소아기에 발생하는 증상이라 대부분 유치원생, 초등학생의 사례들이 많긴 했지만 성인의 경우에도 동일한 치료법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아보고싶었다. 카페에서는 약물치료로 많은 호전을 보였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는 약물치료에 대해 좀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지만, 약물치료로 성공한 생생한 후기들을 보고 나니 당장 약물치료를 시도해보고싶었다. 현재 살고있는 곳이 시골이라 병원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상담자로부터 되려 상처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선택은 신중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좀 믿을만해보이는 병원으로 골라 오늘 방문했다. 


-

시골에선 가장 번화가인 읍내에 위치한 정신과 병원. 건물외관이 전형적인 시골병원처럼 많이 낡아보여 깔끔하고 멋들어진 도시 병원에 익숙한 나로선 신뢰를 가지기란 여간 어려워보였다. 병원이 위치한 2층으로 계단을 오르는 내내 '이 병원 괜찮은걸까'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러나 문을 연 순간 도시에서 보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병원의 모습을 하고있어 그런 마음은 조금 사그라 들었다. 접수를 하는데 안내원이 내 이름을 잘 못알아 듣고 "다시 좀 크게 말씀해주세요"라고 한다. 특이한 성을 가져서 이런일이 잦다. 자모음까지 정확하게 말해주니 그제서야 알아듣는다. 하지만 내가 신경이 거슬린 부분은 내 이름을 되물은 것이 아니라 '크게'라는 단어였다. '크게 말해라.' 나는 또 자신감 없는 목소리를 내었던 것인가. 그 말이 서러웠다. 진료를 보기도 전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나는 의사선생님께 내 증상을 어떻게 설명할지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러나 걱정이 많았다. 의사선생님은 과연 이 생소해보이는 '선택적함구증'이란 병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까. 흔한 병이 아니기에 증상에 대해 잘 모르고 제대로된 치료가 이뤄질것 같지 않아 아주 많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건 '불안을 줄이는 약'을 처방받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약만 처방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조금 안심시켜주었다. 조금 기다리니 진료실로 가라는 안내가 들렸다. 문을 빼곡 열고 긴장한 상태로 들어섰다. 의사선생님은 아무런 인사가 없다. 아, 친절하지 않은 선생님일것 같다는 괜한 선입견이 머릿속에 들어선다. 난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어떻게 왔냐는 질문으로 대답했다. "저는 어릴 때 부터 선택증 함구증이 있었어요."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선생님은 잠깐 생각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마치 그런 병명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긴하지만 실제 환자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는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괜한 불안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어릴때는 단순히 내성적인 성격인 줄 알고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고 그동안 이러저러 힘든일이 많았는데, 2년 전 심리상담을 받다가 이 병명을 알게되었고 약물치료로 효과를 본 사례들을 알게되어 약물치료를 받아보고싶어 왔습니다." 그랬더니 의사선생님은 "무엇이 가장 힘드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인관계, 사람들과 만나는게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또, "최근에 어떠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나요?"라고 되묻는다. 사건이라...? 그렇게 물으니 금방 떠오르는게 없다. 사건들은 평생에 걸쳐 굉장히 일상적으로 많이 일어났으니까. 그냥 내 일상 자체가 사건이다.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라기보다는 평상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긴장해서 하고싶은 말이 잘 안나와서 대인관계가 잘 안되는 일상이 너무 스트레스 입니다." 선생님은 고민에 휩싸인 표정을 계속 지으셨다. 그러더니 "그런 두루뭉술한 이야기말고 특정 사건, 에피소드를 꼽아보세요! 예를들면 어제 어떤 일이 있어서 내가 어떤마음이 들었다던지 그런거요."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말해야될지 난감했다. 어떤 사건이 나를 힘들게 해서 병원을 찾은게 아니라 그냥 약이 필요해서 왔으니까 말이다.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이렇게 말했다. "특정한 사건같은건 없었고 평소에 말을 잘 못하다보니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힘든건데요.." 그러자 선생님은 답답하다는듯이 심리검사지 비슷한 종이를 한 장 꺼내서 내손에 쥐어주고 나가서 작성해오라고 했다. 


아.. 

선생님이 나를 답답하게 보는 그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 내가 뭘 잘못해서 내쫓기는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는 불안한 감정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눈에선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병원을 오기 전 생각한 흐름은 이게 아닌데...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한손에 종이를 들고 문을 나섰다. 50가지 정도 되는 질문을 정신없이 체크해나갔다. 병원 마감시간이 다 되어가서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겨우 다 작성하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섰다. 선생님은 내가 체크해서 제출한 검사지를 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잠깐동안 본 것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디테일한 설명없이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걸로 봐서 자기 표현이 부족한게 아닐까 싶어요. 사회적인 스킬이 부족한거죠. 이건 성격적인거라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게 아닐 것 같은데요. 오히려 자기표현을 연습하는 모임같은걸 찾아보고 나가보는게 나을것같아요." 예상밖의 답변이 나를 또 한 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선생님, 그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무리 많이와도 저는 긴장과 불안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구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몇번의 질문이 더 오갔지만 내 짧은 생각으론 선생님은 선택적함구증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어떤 언어에 함구증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이 그렇게 보였다. 선택적 함구증은 특정 언어에 대한 함구증이 아니라 자신이 불안한 상황에 놓이면 함구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가족외의 낯선사람들이 있는 학교, 학원등 사회적 상황에 있을 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냥 불안함을 줄 일 수 있는 약을 원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선생님이 내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인지 찰떡같이 못알아들으니 이것저것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에 눈물이 났다. 거의 진료마감시간이 다가왔고 선생님은 시간이 많지 않아 오늘은 많이 도와줄 수 없다며 일단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도와주겠다, 다음에 좀 더 일찍 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그 말이 왜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처음 차갑고 매몰차게 느껴졌던 선생님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끝으로 나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사건을 글로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놈의 사건! 그런것들을 글로 적다보면 한도끝도 없을것이다. 초등학생때부터 성인이 되어 회사생활할때까지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냥 내 인생 자체가 사건이고 문제다. 


진료실에서부터 흘린 눈물은 병원문을 나서고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 까지 멈추지 않았다. 정신과에 간다는 것은 참 떨리는 일이었다. 어린 사춘기 시절, 같은 문제로 엄마를 졸라 정신과를 처음 갔었는데 그 곳에서 엄마는 나에게 같이 죽자며 매몰차게 말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정신과이기에 나는 더욱이 정신과를 멀리해왔다. 그렇지만 인생한번 잘 살아보고싶은 마음, 약물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간 것이었는데, 역시나 의사선생님은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인 것인지 잘 모르는 듯 했다. 아직 내가 설명한 것이 많이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목표를 달성했다.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콩알만한 약을 처방받았다. 저녁마다 먹으라는데 이것을 먹고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좋겠다.






나의 선택적 함구증 이야기

https://brunch.co.kr/@dadaworld/44

https://brunch.co.kr/@dadaworld/51




매거진의 이전글 선택적 함구증의 치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