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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Apr 21. 2022

지노 배낭여행기 - 49일의 세계일주 43

에페수스(1)

터어키 배낭 여행지중에서 빠트릴 수 없는 곳이 기독교 성지순레지의 하나이기도 한 에페수스이다. 아래 지도에 표시된 것 처럼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서 이스라엘과 레바논등 중동지역과도 뱃길로 쉽게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결합된 헬레니즘 문화와 고대 로마 유적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에페수스는 1859-74년 최초로 영국 대영박물관 후원으로 발굴하게되었고 1차 세계대전후에는 오스트리아 고고학회의 후원으로 추가 발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중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에페수스


파묵칼레를 끝내고 터어키 마지막 여정인 에페수스(EPHESUS)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것으로 터어키에서의 여행은 끝이다.  버스로 시작해서 버스로 종치는 터어키 여행인 셈이다. DENIZLI에서 에페수스까지는 서울 부산거리인셈이니 터어키 국토가 넓기는 하다. 위에서 노란선이 파묵칼레에서 에페수스로 간 것이고 빨간선이 버스로 밤새워 달려 이스탄불로 향한 여정이었다.




     에페수스의 역사


대략 BC 1200경 이오니아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로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관계로 교역을 통하여 부유하게 성장한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가 그후 이 지역을 정복한 페르시아에 의해서 통치를 받다가 BC334년 알랙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게되어 그후 평화와 안정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BC 129년 페르가몬왕국(알랙산더대왕이 죽은 뒤 그의 부하장군이 지역을 분할하여 세운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 아탈로스가 유언으로 로마제국으로의 귀속을 희망하여 로마 속령이 되었다. 귀속 당시의 이 도시의 인구가 20만명이었다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AD 17년에는 큰 지진의 피해를 입었고 그후 복구되어 서양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항으로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에게해 주변에서는 2번째로 철학학교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AD 1세기 이후에는 기독교 사제들이 전파 목적으로 이 곳을 자주 방문하게 되고 당시에는 로마제국에 의하여 기독교가 박해를 받는 시기였던 관계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이 곳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그 중 사도 바울이 AD 65년부터 68년까지 이 지역에 머물면서 그의 설교로 많은 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전도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전에 이 지역은 아르테미스 여신등을 숭배하는 다신교 지역이었기에 바울의 설교가 100% 먹혀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금,은등으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들어 부를 축적한 세공업자들의 선동으로 사도 바울과 그의 제자들을 공격하여 에페수스 감옥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에페수스 감옥에서 보내졌다는 바울의 서한이 바로 성경의 에베소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로마 속국의 시기를 지나 그 후의 역사는 다른 로마제국의 식민지의 그것과 유사하여 그 후 비잔티 시대를 지나 터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어 지금까지 이른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다른 로마 유적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의 대부분이 고대 로마 제국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로마 제국 유적지와 대동소이하다. 교회 달력에 단골로 등장하는 셀수스 도서관, 대리석 길, 아고라, 원형 대극장등이 주요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그외 이곳 에페수스가 성지로 손꼽히는 이유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몇 편의 서한을 보냈다는 사실과 말년에 성모 마리아가 이 곳으로 이주하여 살았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과 사도 요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하여 성지 순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터에는 잡초만 무성


아르테미스 신전터

아르테미스 여신은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에서 기독교가 전파되기까지 수세기동안 숭배되었던 여신이다. 토양과 풍요, 자연의 비옥함을 상징했던 이 여신은 여러 시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그외 풍요의 대명사로서 다산의 여신, 벌(BEE)의 여신으로로 불리어 지는데 "모든 자연은 이 원초적인 여신에게 속해 있다. 대지가 과일과 꽃을 생산해 내는 것은 바로 여신의 명령에 의해서이다. 그녀는 모든 사물과 공기, 대지와 바다를 다스린다. 그녀는 동물들의 생명을 주관하며 야생동물들을 길들이며 그들의 멸종을 막는다. 그녀는 새 생명의 탄생을 돕기도 한다.”  이렇게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저술한 호머 시인도 그녀를 “야생 동물의 여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역사책에 의하면 초기 이 신전의 크기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더 큰 웅장한 건물이었고 높이가 20미터에 달하는 127개의 기둥들로 이루어져 면적이 200 X 425 미터였다고 하니 가히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최초의 신전은 BC 625년에 완성되었고 그후 침입자에 의하여 아홉번이고 파괴되고 다시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런 신전이 사진과 같이 지금은 잡초와 돌박들로 폐허뿐이니 바로 역사의 무상함이 아닐까. 그래도 에페수스가면 맨 먼저 드러는 곳이 바로 이 신전터이다.  한 때 세계 7대 불가사의한 건물중의 하나였다는 그거 하나로 아직도 방문자들의 발길을 잡는 곳이기도 하다.



잡초만 무성한 신전터


돌방구만 널브러진 신전터


겨우 남겨진 기둥 하단부


들풀 속에 놓인 추춧돌들


신전의 기둥만 외로이 서있어..




      유적지를 찾아서


신전터를 보고 나면 차로 이동해서 에페수스 고대도시의 유적을 찾아 가는데 이 곳이 관광의 백미다.


유적지 입구

유적지에 들어서면 다른 유적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의 대부분이 고대 로마 제국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로마 제국 유적지와 대동소이하다. 교회 달력에 단골로 등장하는 셀수스 도서관, 대리석 길, 아고라, 원형 대극장등이 주요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그외 이곳 에페수스가 성지로 손꼽히는 이유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몇편의 서한을 보냈다는 사실과 말년에 성모 마리아가 이 곳으로 이주하여 살았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과 사도 요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하여 성지 유람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몇개의 기둥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셀수스 도서관


반쯤 잘라진 돌기둥들


화려한 조각 양식이 남아있는 기둥 하단부


기둥 위부분의 동물상


크레테스 거리

입구에 들어서서 널리 퍼져 있는 유적을 지나치면 일명 “크레테스 거리”라는 이 길을 쭉 따라 내려 가면 멀리 보이는 셀수스 도서관 유적지를 만난다. 이 곳이 이 고대 유적지 중에서 제일 붐비는 곳이다.



대리석 위에 부조로 새겨진 행운의 여신 티케


맴미우스 기념비

BC 86년경 이 도시에 로마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미로 당시의 독재자 집정관 술라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 형태만 보존된 주거지역


주거 지역터

길따라 가다보면 오른쪽 구역이 주거지역이었다는데 지금은 집터만 남아 있다.


트라잔 분수대

2세기경 세워진 분수대로 정면에는 실물크기의 트라잔 황제의 동상이 서 있었으나 현재는 그의 몸통 일부분만 남아있다.



공중 화장실

로마 유적지에 가면 반드시 있다. 이 화장실의 건립 목적이 황제에게 진상하는 가죽제품에 필요한 양, 염소가죽 가공을 위해 무두질공장에서 필요한 요산을 오줌에서 얻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니 꿩먹고 알먹는 격이라 할 수 있겠다.



하드리안 신전

2세기경 축조된 고린도 양식의 신전으로 지금 보이는 것은 최근에 복원된 모습이다. 이 신전은 로마 건축물중에서도 뛰어난 기교를 보여 주는 건축물로 여러 황제와 아테나 여신, 아르테미스여신등 여러 흥미있는 인물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티케 여신상

두번째 입구 박공벽에 부조되어있는 여인상이 티케 여신이다. 티케여신은 그리스신화에서 행운의 여신이고 로마에서는 포르투나 여신인데 영어 FORTUNE의 어원이 된듯하다.



아름다운 메두사

입구 달걀 모양의 아치 중앙에 처자 한명의 두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무시무시한 메두사란다. 메두사 이바구는 작년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서 본 조각상 “메두사 목을 들고있는 페르세우스”에서 설명했었는데 괴물의 화신이다. 누구든지 메두사의 눈과 마주치면 돌로 변해 버린다. 이런 괴물을 어찌 이런 신성한 신전 입구 중앙에 떡 버티고 있을까?  내 생각에는 다른 잡신을 물리치는 비방으로 메두사를 중앙에 내세운 모양이다. 괴물같은 악신에게는 메두사같은 괴물로 맞선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메두사 - 아름다운 그녀


메두사 목을 들고있는 페르세우스

메두사(MEDUSA)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이 한장의 사진 속에는 슬픈 사연이 들어 있다. 원래 메두사는 아름다운 여인이고 어떤 삼푸와 린스를 애용했는지 머리결이 특히 아름다웠다. 이를 본 포세이돈이 반하여 메두사와 데이트를 하는데 포세이돈을 짝사랑하던 아테나가 이를 질투하여 메두사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뱀들로 만들어 버리고 이쁜 메두사눈을 보기만 하면 돌로 변하게 하였다.  이런 저주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테나는 페르세우스를 사주하여 메두사의 목을 치게 만든다. 바로 여기까지가 바로 위의 장면이다. 그 뒤 이바구. 이를 지켜 보던 포세이돈이 메두사의 영혼을 메두사 목에서 나오는 피와 결합하여 말에 날개를 단 페가수스(Pegasus)로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뒤 페가수스가 죽자 별자리로 올려 보내 더 이상 어떤 신이라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메두사를 괴물로 보아서는 안되고 저주받기전 아름다운 여자로 보면 참 불쌍한 운명을 타고 난  여자다. 신을 사랑한 인간의 비애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인간세계의 그것과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아테나보다 괴물같은 메두사가 더 사랑스럽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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