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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Oct 31. 2019

타운하우스 계약 후 챙겨야 할 것들

쉰다섯, 마당이 생겼습니다 #8

타운하우스 계약 후 가장 먼저 그리고 꾸준히 살펴야 하는 것이 바로 전체 단지의 분양 진척도다. 이미 많은 세대가 분양된 이후 계약한 케이스라면 위험요소가 적지만 초기에 분양을 받은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착공 일정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해당 일정까지 미분양된 세대가 많다면 시행사, 시공사 입장에선 자금 등 사업 불안정성이 커지기 때문에 착공이 늦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업이 중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분양 오픈 초기에 계약을 했고 실제로 미분양 문제로 여러 문제 및 분쟁을 겪는 타운하우스 사례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계약 당시 시행사에서 분양 진척도와 무관하게 착공은 정해진 일정에 진행한다고 안심시키려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만 기다릴 수가 없어 시간이 나면 한 번씩 사무실에 들러 얼마나 분양이 진행되었는지, 어느 세대가 분양되었는지를 체크했다.




이는 사실 전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체크할 수 있는 정보다. 그런데도 엄마가 굳이 사무실까지 찾아가며 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분양이 진행되며 실질적인 집 올리기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이 시기는 주요 설계 사항을 변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이때를 놓치면 이미 큰 집터가 다 잡히고, 관련 자재 발주 등이 진행되기 때문에 큰 설계 변경이 몹시 어려워진다.


골든타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엄마가 계약 후 제일 먼저 집 거실 탁자에 늘 설계 도면을 펼쳐 놓았다. 그러자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으면 아빠와 도면을 들여다보면서 구체적으로 집 내부 모양과 생활 동선을 상상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주택 생활을 꿈꾸며 타운하우스를 계약했음에도 아파트처럼 알아서 지어주겠지 하면서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도면을 제대로 살펴보거나, 사무실에 따로 방문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엄마가 그저 모든 것을 맡겨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집에 대해 고민하고 설계에 그런 고민들을 반영하고 싶어했던 건 주택 '생활' 보다도 주택 그 자체에 대한 기대와 로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파트 평면도 같은 것이나 가끔 봤었지 본격적인 도면은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대충 집 모양은 이해한다 쳐도. 도면 위의 각종 수치들이 당연히 와 닿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아빠였다. 건설 업계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도면에 익숙하면서도 집 짓기에 대해 같은 온도의 열정을 가진 아빠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래서 엄마는 '주방은 지금 우리 집 주방 정도 사이즈야? 집 복도는 지금 우리 베란다 정도 길이인가?' 하고 아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러면 아빠는 직접 줄자를 들고 와 엄마에게 사이즈를 보여주기도 하고, 살던 집을 함께 실측해주며 도면상 수치와 비교도 해주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다시 찬찬히 설명을 해주었다.


아빠가 그렸던 수많은 도면 그림 중 하나




두 사람은 그 종이 위 그림 속에 들어가 언젠가 실체가 될 그 집 안을 수 없이 거닐었다.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서 거실까지 이어지는 1층 복도 앞에 서보았고, 거실 가는 길에 있는 방문을 열어둬 보기도, 꼭 닫아보기도 했다. 서재 창문을 통해 뒷 산을 바라보기도 했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더 시원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갈증도 느꼈다. 그다음엔 계단을 올라 2층 방들을 둘러보았고 옷장에 옷을 걸어보거나 씻고 나와 화장대에서 로션을 발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선이 이상한 부분이 있거나, 생활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정리해두었다가 사무실에 방문해 변경이 가능할지 논의했다. 논의의 과정이 호락호락 건 절대 아니었다. 공사를 총괄하는 현장소장은 시공의 번거로움이나 이 집만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제안을 거절하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도 설득해보고, 이게 안된다고 하면 저거라도 해달라고 조르면서 최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기각 세례에 지쳐가고 조금은 부아도 치밀 즈음, 소장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큰 시공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엄마로선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었다.


다행히 새로 온 소장은 최대한 계약자들의 의견을 수용해주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짓기 힘든 집인데, 이왕 지을 때 제대로 지어야 살면서 행복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덕분에 공간 구조 변경이나, 창문 위치/크기 변경도 협의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 조명을 설치할 자리나 그에 필요한 전기 배선 공사 등 각종 인테리어 관련 사항도 많이 정리했다.


참 많은 것을 챙겼지만, 아직도 아쉬운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콘센트. 아파트에선 콘센트 자리 나 개수 같은 건 이미 정해져 있는 데다, 바꾸고 싶다 해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 주택에선 다르다. 요구하면 일부 비용은 발생할 수 있겠다만 대부분 변경 가능하다. 침대나 협탁, 또는 책상을 놓을 자리를 고려해서 이에 맞게 콘센트를 배치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별의별 것을 다 상상했는데 왜 온 집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콘센트가 그땐 생각조차 안 났을까. 


콘센트는 매일 사용할 뿐 아니라 그에 맞추어 가구 위치나 생활 동선까지 구성하게 되기에 현대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콘센트가 구색 맞추기 식으로 대충 배치된 경우 앞니나 어금니가 망가진 정도는 아니지만 양치를 하고 이쑤시개로 쑤셔도 빠지지 않는 시금치가 이에 낀 듯한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집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기 설계 도면에는 콘센트 위치가 모두 표기되기에 이런 부분도 꼼꼼히 고민해보고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콘센트 기호다. 도면에서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 이 귀여운 얼굴을 만나면 부디 지나치지 마시길. 머리 쪽이 벽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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