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마당이 생겼습니다 #7
"무조건 디테일하게!"
다시 타운하우스 분양 계약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부분을 가장 고치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그토록 찾아 헤맨 내 집을 만나 계약을 한다는 들뜬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이때만큼은 누구보다 차갑게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한다고. 집 계약이 작은 일도 아니고 누군들 그러지 않겠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타운하우스 계약은 아파트 분양계약과는 다르다. 아파트 분양 계약이 이미 정해진 모든 것에 대한 최종 확인/확정 작업에 가깝다면, 타운하우스 계약은 뭘 어디까지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를 정하는 협상의 자리에 가깝다. 시행사, 시공사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어느 정도의 설계변경이나 부가적인 시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바로 이 자리에서 진행 가능 여부와 비용 처리에 대한 딜이 이루어진다.
엄마도 이 집이다, 결심이 선 이후 계약을 하러 가기 전에 제대로 준비를 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정리해서 모두 계약서에 작성을 해두어야 뒤탈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빠와 지금까지 집을 보러 다니며 눈여겨봤던 것들을 돌이켜보았고, 전달받은 도면도 이리저리 살펴보며 변경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 결과 정리된 내용을 추려보면 큰 꼭지는 아래와 같았다.
1. 나무 조경
2. 인테리어 현관문
3. 마당 수돗가
4. 창문 어닝
5. 태양광 패널
6. 집 설계 type 변경 (시공사에서 정해둔 집 타입이 부지 형태와 다소 맞지 않아 공간 활용 효율성이 떨어졌고 다른 타입으로 변경을 요구했다)
7. 약속한 입주일자를 지키지 못할 시 계약 해지 및 계약금 전액 환불
이만하면 잘 정리했다 싶었고, 해줄까 싶은 항목도 있었지만 일단은 부딪혀보기로 했다. 반응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딜이었고, 엄마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시간이 지나 후회가 깊어질 줄도 모른 채.
가장 후회스러웠던 항목은 7번 계약 해지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타운하우스들이 약속한 완공 일자를 맞추지 못하고, 심지어 공사가 무산되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엄마가 계약한 단지는 공사가 지연되며 완공이 6개월 넘게 미뤄졌다.
그러나 타운하우스로는 드물게 단지가 전체 완판 되고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다, 길이 생긴다 등의 호재 풍문까지 돌면서 입주 취소 자리를 노리는 대기자까지 줄을 서있었다. 엄마도 이미 공이란 공은 죄다 들인 집을 계약 해지할 생각은 없었다. 계약 당시엔 계약금을 날릴 걱정만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계약해지 대신 '보상 지급'을 요구했어야 했다 싶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완공 지연에 대한 보상 지급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이를 활용해 설계 변경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를 딜 했다는 케이스도 있었다.
두 번째로 후회한 부분은 요구한 설계나 추가 시공 항목들이 모두 집 외관에만 치우쳐 있었던 점이다. 이는 엄마가 기존부터 주택 생활에 가지고 있던 로망이 모두 외적인 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열심히 시장 조사를 할 때에도 밖에서 봤을 때 아름다웠던 마당, 조경,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었지 내부의 인테리어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계약을 할 때에도 당연히 자재나, 인테리어 등 집 내부 요소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막상 공사가 진행되자 처음 구두로 안내하고 약속했던 자재나 업체를 쓰지 않아 시공사와 부딪히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고, 인테리어 쪽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애를 태운 날이 많았다. 이런 내용들을 계약서에 써두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막심했다.
사실 일반적인 타운하우스 분양 시 자세한 자재나 업체 정보 등은 대부분 말로만 간단히 설명할 뿐 정리된 자료를 공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리스트를 받아낼 수 있다면 해당 내용을 꼭 지킨다, 혹은 변경 시 기존 자재에 상응하는 수준 내에서만 변경한다 등의 항목을 계약서에 명시해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