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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Nov 18. 2019

협의 없는 타운하우스 자재 변경, 이렇게 막았다

쉰다섯, 마당이 생겼습니다 #9

타운, 하우스.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타운하우스는 '마을'이란 기반 위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마을은 여러 채의 집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갈 사람들이 이웃이란 이름으로 만날 때 완성된다. 이웃이 되는 순간 모두는 서로에게 단순한 옆집 사람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엄마가 계약한 타운하우스 시공, 시행사에선 입주민끼리 친해지거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생기는 걸 꺼려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각종 건들에 대해 정보가 한정된 개개인의 입주민과 협의, 협상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입주민들이 서로 가진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또 이를 활용해 공동 의견을 내세우며 하나의 집단으로 활동하면 모든 것이 훨씬 어려워질 게 뻔하지 않나.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순진하게 어느 정도 분양이 마무리되면 현장에서 입주민 연락처를 공유해주거나 입주민 모임까지 주선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내 이웃은 어떤 사람일지도 궁금했고, 다른 집들은 설계 변경하는 부분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현장 사무실에 다른 입주민들에 대해 은근히 묻자 반응이 냉담했다.


다른 입주민을 만나더라도 설계 변경 등의 협의 사항에 대해선 잡음이 생길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는 입단속만 당한 것. 각종 공지 메일도 각 세대에 따로 발송해서 다른 입주민 메일 주소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사무실을 방문하다 보면 입주민으로 짐작되는 사람들과 마주치긴 했다. 그렇지만 먼저 다가가는 건 조심스러웠다. 나서는 것처럼 보일까 싶기도 하고 괜히 실수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타운하우스 입주민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메일에선 앞으로 이웃이 될 사이이니 전화번호도 공유하고 연락도 하면서 지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엔 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고 있나 싶어 경계심이 앞섰지만 알고 보니 그 당시 현장 측에서 보낸 공지 메일 한 통에 실수가 있었다. 평소와 달리 메일을 모든 세대에게 한 번에 보내버린 것. 실수였다. 그리고 빠릿빠릿한 사람 하나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 메일 한통이 물꼬가 되어 순식간에 입주민 연락처가 서로 공유됐고, 전체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카톡방에서 기본적인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눴고, 서로 알고 있는 이런저런 집짓기 정보도 나누기 시작했다. 모임을 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세대가 많다 보니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첫 모임부터 빠지면 소외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인지,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가능한 날짜에 모임을 맞추고 싶어 했다.


그렇게 기약 없던 입주민 총회가 갑자기 열리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 가장 입주민 모임을 막고 싶었을 현장 덕분이었다. 분양홍보 때부터 크게 강조하던 고급 창호와 수입산 부엌 자재 브랜드를 변경하겠다는 통보를 보내온 것이다. 가만히 있다간 별다른 협상 없이 각 집에 통보를 보내는 것으로 변경 건을 마무리할 기세였다. 입주민 카톡방이 불타기 시작했다. 가능한 사람들만이라도 만나서 의견을 모은 후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입주민 총회일이 순식간에 잡혔다.




입주민 총회엔 전체 가구의 50% 정도가 참여했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단톡 방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따로 남겼다. 첫 모임이었지만 안건이 명확해서였는지 생각보다 입주민간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갔고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시공사가 통보한 자재 변경에 대한 주류 의견은, "주먹구구식으로 자재를 변경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였다. 갑자기 자재를 변경하겠다는 것도 꺼림칙한데, 기존 자재를 어떤 것으로 변경하겠다 등의 기본 정보도 주지 않고 통보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이번 일을 이대로 넘어가게 되면 앞으로 더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입주민은 현장과의 소통을 전담해줄 '대표단'을 선출했고,  바로 다음 주 대표가 현장과 담판을 지으러 나섰다. 입주민 간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것도 전혀 모르던 현장 측에선 깜짝 놀란 눈치였다. 대표가 입주민 총회에서 모인 의견을 전달했고 현장 사무실에선 그제야 부랴부랴 변경 자재 관련 자세한 스펙 및 가격을 공유해줬다. 전달받은 신규 자재들은 기존 자재와 거의 동급이었지만 처음부터 계획된 것인지 입주민들이 들고일어나니 동급으로 재조정을 해서 전달해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앞으로 함께 살아갈 이웃들의 첫 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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