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마당이 생겼습니다 #2
주택을 꿈꾼다면 선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전원주택이냐, 타운하우스냐. 전원주택은 개인이 단독으로 택지를 매입해 직접 집을 짓는 경우에 해당한다. 반대로 타운하우스는 일반적으로 시행사와 건축사가 하나의 주택 단지를 조성하여 분양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거의 모든 면에서 전원주택은 타운하우스 대비 자유도가 높다. 땅을 고르는 일부터 집의 설계 등 많은 것에 개인의 취향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반면 타운하우스는 이미 마을의 형태와 각 세대의 구성 및 설계가 정해진 상태라 개인에겐 선택권이 많지 않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다루겠지만 설계변경이 가능한 경우도 많으나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뒤탈도 적지 않은 편이다.)
수없이 많은 집을 보러 다니며 엄마는 타운하우스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집 짓기를 꿈꾸게 된 초반엔 타운하우스란 개념조차 없어 당연히 '주택 = 전원주택'이라 여겼지만 시장 조사를 거듭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전원주택의 장점인 '자유도'가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 없는 엄마에겐 알면 알 수록 큰 단점으로 다가왔다. 비슷하나 모두 다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매번 무언가를 골라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잘되면 베스트지만, 그만큼 부담도 너무 컸다.
더 큰 걱정거리는 바로 기존 마을에 스며드는 일이었다. 애초에 마을 공동체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면, 주변에 집이 없는 외딴 땅을 골라도 되긴 하지만 그 또한 영 내키지 않았다. 막말로 집에 무슨 일이 난대도 주변에서 알아채 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지 않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이미 마을이 형성된 곳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2000년대 초반 불어왔던 '귀촌' 열풍의 후폭풍인지 마을 편입의 어려움에 대한 후일담들이 괴담처럼 떠돌았다. 거짓의 농도가 얼마나 짙은지는 알 수 없으나, 기존 마을에 녹아들기 위해선 뭐가 됐든 적지 않은 시간과 마음이 소모될 것이란 게 뻔했다.
생각이 많아질 즈음 '타운하우스'라는 단어가 신문이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전원생활을 보장하면서도 집 짓기의 다양한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신규마을이나 다름없는 '단지'를 조성해 기존 관계에 편입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모두 해결해주는 주거형태라고 했다. 저거다 싶었지만 문제는 가격대였다. 당시 타운하우스는 드라마에 나올법한 초호화 컨셉이 일반적이라 호당 가격이 30-40억에 육박했다. 타운하우스라는 개념은 매력적이었으나, 혀를 내두르는 가격에 엄두도 낼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사실 엄마에겐 30억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건드리면 터질 듯이 예민했던 수험생 딸, 나였다. 중요한 시기에 터전을 옮기는 이사나 그리고 그에 이어질지도 모를 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엄마의 꿈은 흐릿한 희망사항일 뿐, 여전히 언제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수험생에 좋다는 음식이며 보약을 해먹이고, 잠이 많아 힘들어하는 날 조금이라도 더 재우려고 학교며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엄마의 시간도 흘러갔다.
2009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서울 어느 대학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엄마와 나는 조금은 울었고, 많이도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여름이면 아스팔트가 들끓는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로. 강북으로 통학을 해야 하는 날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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