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10
싱가포르까지 6시간, 다시 발리까지 3시간.
사방팔방 건장한 남정네들에게 둘러싸인 감옥 같던 기내에서 탈출한 뒤, 드디어 발리의 땅을 밟았건만 나를 맞이한 건 길게 늘어선 입국 심사 줄.
30분 안에 끝나겠지 했던 입국 심사는 1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대기상태.
J가 보내준 호텔 주소와 이름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예상 질문도 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고, 사진첩에 저장해 온 비자도 잘 저장되어 있는지 확인하기를 수차례, 드디어 세상만사 무심해 보이는 언니에게 여권을 내밀자 건조한 음성으로 여상한 질문만 던지더니 갑자기 ‘어보?’라고 묻는다.
응? 어보가 무슨 영어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던 나는 짧은 영어 실력을 한탄하며 ‘파든?’하며 되묻자 고개를 갸웃거린 그 언니, ‘여보’라고 다시 말한다.
아… 여보랑 왔냐고… ’노노.. 프렌드’하고 답하자 곧이어 ‘친구?’라고 되묻는 그 언니.
여기서 한국어 연습하기 있기예요?… 놀랐잖아요…
K-드라마 애청자로 추측되는 언니덕에 발리 사람은 한국어로 한국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는 요상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을 찾으러 왔건만 도착 1시간이 넘었는데도 수화물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인천공항에서 보았던 한국인들을 알아보며 내심 안도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내 짐과 비슷한 캐리어가 하염없이 돌고 있다. 설마… 저 주인이 착각하고 내 캐리어를 들고 간 것인가.. 캐리어 잠그지도 않았는데… 발리에서 전부 다 사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 되어서야 저 멀리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캐리어가 눈에 보인다. 사람들을 헤치며 캐리어를 낚아챈 나는 발리 도착 2시간 만에 드디어 공항을 탈출할 수 있었다.
쇼생크 탈출마냥 두 팔 벌려 발리의 공기를 만끽하고 싶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기사님들 무리에 내 픽업 기사님은 어떻게 찾나 걱정부터 앞선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내 이름이 적힌 푯말을 찾아내 2시간이나 늦게 나왔는데도 도망가지 않은 기사님과 어색한 극적 상봉을 맞이할 수 있었다.
에브리웨어 3십만 루피아를 읊으시는 기사님의 영업을 BGM 삼아 40분가량 달려 드디어 발리의 첫 숙소 도착. 이미 여행 4일 차에 접어든 J가 로비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반겨주었고 쉽지 않았던 발리 입국을 떠올리며 어쩐지 격한 마음으로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매년 다른 여행지에서 만나 함께해 왔던 J와의 여행이, 코로나로 인한 4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