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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Black Nov 12. 2023

페티텐겟 비치에서 조깅을

2023. 7.11


발리에서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아침 조깅.


사실 발리 여행 3달 전부터 자기계발 서적에 빠져있던 나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인 6시 전 일어나기, 아침 조깅, 독서, 명상, 확언, 감사 일기 등등등을 2달 반동안 실천 중이었다. 100일 동안 꾸준히 하면 습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신봉하며 100일을 채우기 위해 발리에서도 똑같이 도전해 보기로 한 참이었다.

나도 성공하고 싶다고요.


발리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

J가 깰까 살금살금 운동복을 갈아입고 부푼 기대를 안은채 호텔을 나섰다.


하지만 상상 속의 눈부신 해변 대신 나를 맞이한 건 황량한 회색 도로.

지도상 바다와 가까워 보였기에 이정표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부랴부랴 구글맵을 켜고 가까워 보이는 해변을 찍으니 도보 25분. 응?


설마. 지름길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아직까진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지만 곳곳에 부서진 보도블록의 잔해들을 넘고, 인도 대신 도로를 횡단하며 오토바이를 피하면서 좁고 허름한 골목을 지나자, 이제는 해변을 눈앞에 두고 하수구로 추정되는 곳에 낡은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남의 집 앞마당 같은 곳에 있는 다리를 지나 드디어 해변에 도착.

다들 자기계발서라도 읽으시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침 산책 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해변 모래사장을 걸으며 아무도 내게 관심 없겠지만 자의식 과잉 환자처럼 주변을 의식하다 애플 워치 달리기 모드를 켜고 어색하게 달리기를 시작해 본다.


무작정 제일 가까운 해변을 찍고 온 터라 이름도 몰랐던 이곳은 petitenget(페티텐겟?) 비치인데 회색 빛 화산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 같은 느낌이 드는 해변이었다. 하지만 이곳 모래는 발이 푹푹 꺼지는 마른 모래와 달리 자박하게 젖어 있어 달리기에는 최적이었다. 이미 여러 번 달려 본 것인지 맨발로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도 벗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축축한 양말을 상상한 뒤 바로 생각을 접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 속에 혼자서, 그것도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있으니 이내 멋쩍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러다 진짜 성공하는 거 아냐?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드넓은 모래사장과 낮게 깔린 이국적인 구름을 눈에 담고서 나름 꽤나 만족스러운 아침 달리기 시간을 보내었다.


하지만 다시 호텔로 돌아가던 길.

개와 오리와 함께 낡은 골목을 걸으며 오늘이 발리의 마지막 조깅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내일도 내가 이 난관을 헤치고 해변까지 올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결국, 다음날부터 아침 조깅대신 잠을 택했다.


역시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니들 생각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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