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혼생활 vol.13
아내가 출근하고 집에 혼자 있는 날,
가볍게 빨래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세탁기가 작동을 시작하기 무섭게 카톡이 울렸다.
"빨래 다 돌아가면, 세제 투입구 열어놔야 되는 거 알지?"
세탁기 앞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 살폈다.
"아니, CCTV 달아놨어?"
왠지 빨래할 거 같았다는 아내의 말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여자의 촉이구나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탁기가 할 일을 끝내자 곧장 다시 카톡이 울렸다.
"빨래 다 된 거 같은데, 바로 건조기에 넣어. 젖은 채로 두면 냄새나."
뭐지 싶어 그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집 구석구석을 한참이나 기웃대다 세탁기 앞에 가서 빨래가 끝난 걸 확인했다.
빨래를 꺼내 건조기로 옮기는 도중 다시 한 번 아내의 카톡이 도착했다.
"건조기 먼지 필터 청소하는 거 빼먹지 말고! 먼지 쌓이면 고장나~"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그제서야 알았다. 요즘 가전은 스마트폰과 연동이 된다는 걸.
말로만 듣던 '스마트홈'이다.
'스마트홈' 덕분에 아내는 집에 있든 없든 잔소리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빨래를 할 때 세제는 통째로 그냥 들이붓지 말고, 계량컵에 적당량 덜어 부어야 한다.
빨래가 끝나면 세제 투입구는 꼭 열어두어야 한다. 열어서 말리지 않으면 물때가 낀다.
건조기 돌리기 전에는 먼지 필터가 비어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엔 충분한 초벌 설거지가 필수고, 설거지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식기세척기 문을 활짝 열어 말려주어야 한다.
아내의 꼼꼼한 집안일 기준은 나 같은 대충주의자에겐 상당한 가욋일이다.
대충주의자로서 적정한 세제량이라든지 세제 투입구에 끼는 물때를 의식해본 적이 없었다.
먼지 필터에 먼지가 꽉 차서 문제가 생길 때까진 건조기에 필터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초벌 설거지라는 개념을 아내에게 처음 들었으며,
식기세척기에 자동 문열림 기능은 왜 달려 있는 건지 의아했다.
그런 연유로, 나의 집안일 패턴은 아내의 잔소리 버튼이었다.
같이 집안일을 할 때면 아내의 잔소리는 거의 추임새나 다름없이 이어졌다.
아내가 집에 없을 때에야 잔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아내에겐 비밀이지만, 혼자 집에서 집안일을 할 때는 나만의 패턴을 따랐다.
세제 투입구 따위는 쿨하게 잊어버리고, 건조기 필터는 다 차면 그때의 내가 비우는 걸로 미뤄뒀다.
하지만 원격 잔소리가 시작됐다.
어느날인가 아내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세탁기며,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일일이 찾아다닐 때 눈치챘어야 했다.
이젠 혼자 있을 때도 세탁기든 건조기든 식기세척기든 돌리기만 하면 카톡이 울린다.
아내의 잔소리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덕분에 그릇도 더 깨끗하고, 빨래 상태도 더 좋다.
결혼 전 혼자 살 때는 유난히 가전 제품의 잔고장이 많고 수명도 짧았는데, 지금은 아내의 꼼꼼한 관리 기준 덕인지 전부 새것 같다.
다만, 잔소리 양이 좀 많다.
어린이날인 오늘,
아내는 일이 있어 출근을 했다.
나는 집에서 빨래를 돌린다.
여지없이 카톡이 울려댄다.
"세탁기 다 돌면, 세제 투입구 열어놔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