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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26. 2018

골목의 전쟁

가게 전반을 아우르는 대세라는 것이 있었다

곱창이 난리다. 그야말로 대란이다. 6월 중순부터 한 달간 맹렬하게 진행된 곱창 열풍은 더위에 잠시 주춤해 보이고 빠른 트렌드 변화에 한 풀 꺾인 듯해 보이지만 물량이 없어 엄마가 아직도 발을 동동 구르는 것으로 추측컨대 실제로는 여전히 진행 중인 듯싶다. 매일 늦게까지 일하시고 더 바빠진 부모님을 보며 어느 순간 조금이라도 도와야지 싶은 마음이 절로 고개를 들었다. 늘 소문난 가게나 괜찮은 아이템을 보고 툭하면 사업성을 논하는 남편에게도 이미 곱창은 핫한 관심 품목이어서 내게 2호점 타령과 가게를 물려받으라는 수차례의 제안을 한 터였지만 이를 모두 단칼에 거절한 뒤라 나의 이런 변화는 좀 뜬금없는 일이긴 했다.    

  

‘싫어 안 해. 식당일이 얼마나 힘든데. 편하게 살다 죽을 거야!’     

 

그러다 이번 곱창 파동을 겪으며 부모님 가게에 몇 번 알바를 다니게 됐고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신선한 경험을 맛보게 됐다. 정년이 보장된 회사에서 결코 나올 생각이 없었기에 그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는데 최근 '9 to 6'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나름 벗어날 궁리를 다각도로 시도해 봐서인지 급 관심이 갔다. 가끔 지인들과 곱창을 먹기 위해 가게로 향하며 느끼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광경에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요 며칠 억지로 읽어낸 몇 권의 책들 탓에 (내가 골라 놓고도)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살짝 주저함이 없진 않았지만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바로 의심이 사라졌다. 아! 간만에 머릿속 환기 좀 시키며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집중을 일으키는 책을 좀처럼 만나기가 힘든 요즘이다.)      


이 책은 자영업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 존재가치를 표명하고 있다. 게다가 왜 그렇게 쉽게 망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필요함을 말한다.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도 사실 부모님 가게를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은 많은 손님으로 바빠서 고생스럽기보다는, 또 장사가 잘되어 확장을 하기보다는 그저 노년에 소일거리로 역할을 하길 바랐었다. (잘되서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손님 행렬에 장사하는 재미를 느끼며 신나 하는 부모님 모습과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에 나는 왜 벌써부터 안주하려고만 하는가, 주어진 몫에만 만족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과 마주했다.      


p21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 거기에 현혹되어 열광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다 이 책의 시작과 함께하며 내 속마음과 마주했다. 돈을 벌고 싶구나. 하지만 나는 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겁이 나기도 했고 이왕 할 거면 진짜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망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 주저하고 앉아서 망할 일 없는 머릿속 계산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자영업의 속살과 그 이면, 돌아가는 방식 등에 대해 낱낱이 살펴주는 이 책과의 만남은 그 타이밍이 절묘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작가가 예를 드는 책이나 이슈도 최신 자료이고 흥미롭게 읽은 책 <행운에 속지 마라>의 언급도 반가웠다. 특히나 오래 버티다가 성공하기도 한다는 의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갑자기 바빠진 가게를 두고 섣불리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연일 매진 행진을 보면서 정말 버티다 잘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대부분 오래 영업하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라는 말이 진짜 사실이기 때문이다. 준비가 부족한 탓도 있고, 경제상황이 극변 하거나 아이템이 유행을 타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큰 벽은 바로 그 자리에 임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부터가 진짜 관건이다. 나조차도 가게가 잘되면 가게를 비워달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생각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p93 사업을 5년 안에 안착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브랜드 가치까지 생기려면 늦어도 3년 안에는 소비자의 관심과 반응을 크게 얻어야 한다. 그런데 훌륭한 아이템을 잡고 운영을 제대로 해도, 3년 안에 매출이 제법 나오는 가게로 키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영등포에서 15년 동안 하던 가게를 접고 아이를 봐주겠다던 엄마는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하다 괜찮은 가게 자리가 났다는 말에 미련 없이 집을 나섰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고, 그 사이 아이는 여섯 살이 되었다. 매출이 주춤하거나 장사가 힘들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귀를 닫았다. 가끔 가게에 갈 일이 생기면 무슨 곱창을 그렇게 가득 주냐, 양은 재고 주는 것이냐 타박을 일삼고, 직접 담근 김치를 그렇게 다 퍼주고 김장하느라 몸이 축나면 엄마만 손해라는 둥 되도 않는 참견에, 여기는 이렇게 했어야지,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퍼줘서 망하진 않는다며 뜻 모를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고 힘들 땐 위로조차 없던 딸의 뜬금없는 타박도 견뎌냈다.      

그렇게 친절한 이모님으로 자리 잡은 엄마는 늘 소녀 같고 한결 같이 열심이었다. 실제로는 손님이 올렸지만 몇몇은 딸이 대신 써준 줄 아는 블로그를 보고 찾아온 젊은 층의 손님들을 마냥 신기해하고, 주변 은행의 회식자리도 혼자 다 받아내며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켰다. 근처에 200명 규모의 회사가 새로 옮겨와 회식이 잦아지며 또 한 번 자리를 잡고, 막 입주가 시작된 대단지 아파트의 외식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해 새로운 기회와 맞딱뜨렸다. 그래서 이번 미디어를 통해 분위기가 탈 때 어느 정도는 분위기 덕도 있었겠지만 이는 100프로 편승이 아닌 제대로 때가 맞았다며 나름 긍정적인 자평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부모님은 믿고 의지할 누군가가,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딸 정도 나잇대의 누군가가 곁에서 함께 있어줬음 하셨다. 그 구체적인 누군가가 나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은 나만  알고 있었지만 당분간은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결정으로 많은 변화를 수반할 것이 뻔한 일을 쉽게 결정하고 올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야금야금 생각을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두 발 모두는 아니더라도 한 발 정도는 담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가게를 도와드리며 앞으로 추이를 살펴보고 자연스럽게 기우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업이라는 것에 대해, 자영업이라는 것에 대해 나 나름대로의 접근을 시도했다.  


사업에 대해 고려할 때 책을 먼저 찾는 내 모습과 현장에서 몸소 터득한 실전으로 사업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무엇이 옳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많던 연어 무한리필 점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부제를 통해 유행을 타는 아이템은 리스크를 안고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공감하는 동안 아빠는 현재 이 시점에서 ‘곱창집 가맹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안타까워했다. ‘지금 저러면 안 되는데.’ 지금처럼 물량 수급이 어렵고 기존 대비 단가가 최대치로 끌어올려진 상황에서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될지 뻔 한 상황을 아빠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해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잠시 쉬는 동안 생활비 좀 벌게요!'      


살짝 끼적이며 발을 담그는 딸이 명함을 다시 만들고, 새로운 술을 시도해보자는 등 아무리 새로운 방안을 구상해도 건 그냥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한 발 물러서 가게 돌아가는 형국을 보자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가게 전반을 아우르는 ‘대세’라는 것이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가게 주인과 손님들이 만들어 낸 흐름이 있어 이를 쉽게 평가하고 재단하여 이론화할 수 없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아직 멀었구나, 과연 무얼 할 수 있을지 이 책을 읽는 동안 사업에 대한 이런 나의 접근이 공상이 되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주춤하던 매출이 여전히 유지를 해주고 있다.(계속해서 나를 유인한다.) 심지어 아이와 떨어져 지낸 지난 시간에 면죄부라도 얻으려는 듯 난 무턱대고 육아휴직을 냈다. 당분간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이 허락되는 한 부모님 가게에서 부모님을 도울 생각이다.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을수록 보상은 커진다는 말이 조금은 희망적으로 들린다. 현재 가게에 느끼고 있는 매력에 무한정 매료될지, 아니면 긴 시간 동안 숙고했던 방향을 놓지 않을지 아직은 쉽게 단언할 수 없지만 무엇에든 영향을 잘 받는 내가 나중에 이 책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무엇보다, 화사씨 먹방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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