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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r 24. 2020

이게 다 남편, 남편, 남편 탓이야

헛똑똑이의 이해불가 고생기

유치원은 졸업했지만 입학을 하지 못해 어느 기관에도 속하지 못한 무소속 아들을 보기 위해 기찻길에 올랐다. 돌봄이 필요하지만 회사에 묶여있는 워킹맘의 아들이기에 잠시 시골로 귀경을 한 터였다. 나름 청정지역, 다시 구례였다. 아이가 2년 간 자란 제2의 고향 같은 곳, 나의 방문을 두고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지만 현재 나는 외지인이고 단체생활을 하는 지라 혹여나 누가 될까 오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고 싶은 만큼 자주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족상봉을 계속해서 미룰 수만은 없었고 이번엔 남편까지 합류하기로 했으니 다시 한번 조심, 무조건 조심이었다. 출발지인 광명역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자차를 끌고 가 주차장에 세워두고 최대한 인적이 드문 시간대를 이용해 이동했다. 다행히 역사는 하루 2회 이상 소독되고 있었고 좌석 간격은 일정 거리를 두고 배정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가져 간 알코올 솜으로 팔걸이며 신체가 닿을 만한 곳을 닦아댔다. 따로 출발한 남편에게는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제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동하는 내내 수시로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


그간 아이를 돌봐주신 고마움에 보답하고 우리를 위해 저녁식사를 차리시는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고자 하는 마음에 읍에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남편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하니, 애처롭게도 집밥이 그립다하, 어쩔 수 없이 장을 봐와 이것저것 준비를 하게 되었고 나는 살짝 들떴다. 그런데 식사자리가 완성될 무렵 예상치 못한 객식구의 출연으로 우리 가족은 ‘단란한 한 때’란 걸 함께 하지 못하고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평소 이해심이라면, 남편을 끔찍이 사랑하는 쪽이 내 쪽이라고 오해를 살만큼 그게 대소사이든 사태의 경중을 떠나 되도록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그게 실수건, 의도했던 일이 아니었던 간에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일지라도 딱 한 번 퍼부으면 그 뒤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우리의 싸움에 과거사 그때 그 사건들이 고구마 넝쿨처럼 얽혀 올라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내 머리로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화가 진정되지 않아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손님 대접이라면 저러다 영혼까지 팔겠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내어 놓는 내가 평상시와 다른 모습으로 나오자 남편도 조금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은 채 한껏 심통을 부리고 좋지 않은 얼굴로 헤어지고 말았다.


문제의 시작은 남편 비행기 시간에 맞춰 역에 나오느라 평상시보다 이른 시간에 역에 나오게 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 복잡함과 심란함에 도취되어 심통이 하늘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남편을 미워할 구실을 찾고 또 찾았다. 조심히 잘 가라는 문자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과 너 남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공격의 글을 장문으로 쓰고, 아이 봐주시는 분이 일찍 나가 배고프지는 않은지, 지루하지는 않은지 염려되고 걱정되는 마음에 계속 보내시는 문자에도 퉁명함으로 일관했다.


모든 것이 귀찮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한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보다, 경제방송을 듣다, 맘 카페를 기웃거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역사 밖으로 나왔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고작 10M 내외를 배회하며 나를 감싸는 햇살과 바람, 봄이 오는지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망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올려다본 하늘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맑고 어이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와 별개로 내 마음만 지옥이었다.

도저히 가지 않을 것 같던 두 시간이 흘렀다. 뭐에 홀린 듯 정신 차려 시계를 보니 기차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설마 아닐 거야. 캐리어를 들고뛰었다. 42분 차니까 여유 있지.. 그렇지? 여유 있을 거야. 5번 플랫폼에 다다랐을 때 눈앞을 지나가고 있는 기차는 무궁화호가 아닌 내가 타야 할 KTX였다. 지금 저게 왜 가고 있지? 코레일 앱을 열어보니 내 기차표는 34분 차, 시간은 36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차, 싶은 생각도 잠시 캐리어를 그대로 세워두고 역무실로 달렸다. 차가 방금 떠났는데, 지금 출발한 차가 제가 타야 할 차인데.. 지금 생각해도 질문이 좀 생뚱맞았던 것 같다.


‘저 어떡해야 하죠?’


여섯 시 반차 타셔야 돼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당연한 대답이었고 자연스러운 응대였다. 다음 차가 세 시간 뒤인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구례라는 곳을 몇십 번 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이렇게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사실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이 나는 한숨을 쉬었다.


‘표는 다시 끊어야 되죠?’


역무원은 출발 즉시, 15분 내에는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아, 다행이다. 그건 반대로 일부 환불이 가능하단 뜻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사실이 감사해 그때는 울지 않을 수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서 순간 내려오는 차 시간대와 착각을 했고, 혹여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차는 어차피 탈 수 없었을 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기차는 떠났고 나는 한 발 늦었다.


그래도 경험 많은 역무원은 그 짧은 시간에 기지를 발휘에 4분 뒤 바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곡성으로 넘어가면 한 시간 당겨 KTX를 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발권을 해드릴지 앱으로 직접 하실지 묻는 말에 나는 발권을 요청했다. 어린애처럼 심적으로나 행동으로나 뭐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수료는 포인트로 차감해주는 친절함에 감복하며 오랜만에 보는 실물로 된 표를 들고 다시 계단을 내리고 올라 아무렇게나 방치해두었던 캐리어를 들고 바로 기차에 올라탔다.

그때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게 다 남편 니 탓이야. 너 때문에 기차역에 일찍 왔고, 너 때문에 시간 때우다 내가 정신을 놨고, 너 때문에 기차를 놓쳤고, 너 때문에 내가 놀랐고, 너 때문에 돈도 더 들고, 너 때문에 집에도 늦게 가. 엉엉~! 눈물 콧물이 뒤섞여 하염없이 눈물이 났지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티도 못 냈다.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기차 안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편하게 코를 풀 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정거장을 거쳐 그렇게 곡성에 도착하는 사이 눈물은 멈췄다. 화장도 안 한 얼굴에 눈물이 말라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모냥 제대로 빠지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렇게 플랫폼에 앉아 세상 비참한 얼굴로 넷플릭스나 볼 요량으로 내 폰을 충전해줄 콘센트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역을 지나는 기차 시간을 다 꾀고 있는 역무원은 내가 꼬라지를 부리고 앉아있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첨엔 나를 부르는지 정말 몰랐고 그다음엔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앉아 있자 확성기로 하던 말을 이제 역무실 방송을 통해 쩌렁쩌렁- 하고 또 했다.


'거기 역 밖으로 나오세요'


아 진짜, 비련의 여주인공인 마냥 실의에 빠져 우울함의 동굴로 들어갈 틈을 주지도 않는구나!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내 모습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불쌍해하며 남편을 죽어라 원망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틈도 주지 않는구나. (역무원님 우리 남편 편이세요?) 몸을 움직여 역사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오니 어쩐지 쾌적함마저 든다. 그렇게 잠시 앉아있다 보니 슬슬 출출함도 밀려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짐을 두고 역 밖으로 나갔다. 해는 여전히 너무 좋아 날은 밝고 오래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딱 지루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느껴졌다.

인적 없는 그 길가에 독특한 풍채의 간이휴게소가 하나 있었다. 쭈뼛거리며 올라가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먹고 갈 거냐는 간단한 확인을 한 매점 아주머니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계산도 하지 않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 주셨다. 자리를 잡고 앉아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데 뭔가 이 상황이 되게 오묘하고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아무도 신고를 안 하나 싶을 정도로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울리는 혜은이의 「진짜 진짜 좋아해」는 이 타이밍에 왜 이렇게 좋고 심금을 울리고 난리인 건지, 완전히 푹 익지도 않은 왕뚜껑은 왜 이리 맛있는 건지 도대체가 형용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정말이지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잠시 나는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실 지난 3년간 구례를 오가며 나는 택시, 기차, 비행기 등 다양한 이동수단을 수도 없이 이용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실수 없이 모든 탑승을 제시간에 클리어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 탓을 하기엔 이미 나는 전적이 너무나도 화려했던 것이다.  


갑작스레 몸져 드러누워 예매취소를 잊고 표 값을 통째로 날린 적도 있고,

광명에서 내리지 못해 용산까지 간 적도 있었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 벨을 늦게 눌러 캐리어를 끌고 길고 긴 한 정거장을 걷기도 했으며,

막히는 퇴근길에 택시를 타고 광명으로 향하다 막차를 1분 전에 겨우 탑승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남편이 미웠다. 남편을 칭찬하고 나면 꼭 미워지고 마는 변치 않는 내 징크스가 또 발동된 데 화가 났고, 그걸 알면서도 어쩌자고 마음을 놓은 것인지 입방정을 떤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그런데 소리 죽여 울고 난 뒤여서였을까. 뜨끈한 국물을 먹고 몸이 풀어져서였을까. 더 이상 씩씩 거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이 기차마저 놓치면 정말 전의를 상실할 것 같아 기차 시간을 보고 또 보고 미리 나가 준비하고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내 좌석에 안착하고 나서야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남편에게 중계하지 못하고, 원망의 뜻을 그대로 날리지 못하는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꾹 눌러 담고 다음을 기약했다. 나의 이 고생기를 듣고 너의 가슴이 무너지리라 근거 없는 자신감과 승리감에 잠시 도취되어 큰 숨을 한 번 내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잠시 쉼의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기차 안에서의 시간은 낮에 만큼 지겹거나 괴롭지 않았다. 역에 도착해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평상시와 변함없는 루틴으로 캐리어 안의 옷을 다 꺼내어 빨고 집을 청소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일찍 잠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자 어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오래된 일처럼 여겨졌다. 생각해보니 지인들에게 수다로 풀만큼의 수준도 못 되는 그저 그런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심지어 나의 공격 대상, 남편은 연락도 없었다. 이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나름대로 무척이나 현명한 처사로 생각되고 있었겠지. 이제 나를 너무도 잘 아는 남편은 내 화를 풀어주겠단 식으로 어설피 접근하지 않고 하루 동안 잘 숨어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을 시도했다. 얼핏 보니 보내온 내용이 안부도 아니고 사과는 더더욱 아니었다. 얼척 또한 없는 그 메시지는 다름 아닌 꽃 사진이었다.


제주에 봄이 왔다며 가타부타 더 이상 긴말도 없었다. 커다란 공원과 근접한 회사 주변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찍은 사진일 터였다. 나도 모르게 어제 닥쳤던 일들을 속사포로 풀어내고 너를 보러 제주에 가지 않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말이지, 햇살이 그렇게 눈부시지만 않았어도, 혜은이의 노래가 그렇게 좋지만 않았어도, 왕뚜껑이 그렇게 맛있지만 않았어도 남편 너는 진짜 내가 대꾸도 안 해주는 건데, 까딱하면 인천 집에 오는 것도 금지일 뻔했는데 그 매점에 고마운 줄이나 알아라! 꽃에 마음을 뺏겨 제주 비행기표를 예매하고픈 살랑이는 마음도 잠시, 그저 꽃 사진 다시 한번 더 보는 걸로 만족하고 폰을 내려놓는다. 나는 우리 아들 초등학교 입학시켜야 하니까, 거리두기에 동참해야하니까, 양심상 아들있는 구례까진 몰라도 남편보러 제주는 못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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