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mmy Hear 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Jan 28. 2021

아이에게 이유 없는 행동이란 없다

엄마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요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관 생활을 해도 아침에 일어나 양치만 겨우 하던 아이가 달라졌다. 전날 샤워를 하며 머리까지 감고 자면 다음 날 아침 머리가 조금 뻗치고 까치집이 지는 건 바쁜 아침에 늘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초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외모에 관심이 생긴 걸까, 머리에 물을 묻히고 계속해서 머리를 쓸어내리는 아이의 행동이 갑작스레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눈에 띈 그 행동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아 보이던 어느 날 아침 등교를 도와주던 친정엄마가 머리를 쓸어 올리자 아이가 찌를 듯 한 비명을 내질렀다. 엄마도 놀라도 나도 놀라고 무엇보다 화를 낸 아이 자신도 놀랬다. 소리를 질러놓고 놀랐다는 건 작정하고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나온 행동이라 무슨 연유 일지 궁금했다. 우선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할머니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을 해주었다. 담담한 나와는 다르게 내 말을 듣는 와중에도 연신 머리를 쓸어내리는 아이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했다.


“엄마 나도 머리 빠져?”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머리를 쿵-하고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개월 전 남편과의 대화, 잊고 있던 바로 그 대화가 화근이었다. 우선 이유도 모르고 아이의 짜증 받이가 된 엄마한테는 나중에 설명하겠노라 말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저 짧은 한 마디에 그간 받았을 아이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일이 있기 몇 개월 전 남편은 육아휴직을 내고 집에 있으면서 그동안 바빠서 돌보지 못한 자신의 탈모에 대해 정식으로 고민을 털어놓았고 주말부부라 평상시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그 얘기를 이어나갔다. 상담받을까? 그래 상담받아봐라, 시술도 대중화되었다는데? 그래 시술도 하고 싶으면 해라, 남편의 말이 끝날 때마다 대꾸를 해주다 정작 우리의 대화는 아무런 결과도 없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대화는 아이 가슴에 남아 늘 아빠를 닮았단 말에 듣고 살던 아이에게 상상으로 부풀리고 키워져 공포로 남고 말았다.


‘아빠를 닮았네.’


외모적으로 아이가 참으로 많이 듣는 말이었다. 아빠의 외모가 자랑스러운 편은 아니어도 어쨌든 물려받기를 다리도 길고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균형 있는 이목구미가 엄마 눈엔 참 예쁜데, 이와는 별개로 아이는 ‘나는 아빠를 닮았으니 아빠처럼 머리가 없어지겠구나, 싫어! 그렇게 되기 싫어!’ 이런 흐름으로 이어진 듯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시작된 남편의 머리숱에 대한 고민이 이해되는 만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로 시작된 아이의 공포심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니 어쩌면 더 크게 반응해줘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다만 신랑이 선택한 약물 치료로 그 문제는 나아지고 있어 우리 부부에겐 정리된 문제였는데 그게 아이에게만 공유되지 못한 사실이 안타까웠다.


특히 아이는 보는 눈이 예민한 아이였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미술에 관심이 많고 재능을 보이던 터였다. 그러니 균형이 잡히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남다른 시선이 생기고 외부로 쏠렸던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로 투영되면서 머릿속에 담긴 부모의 대화와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이 하나의 교차점을 이루며 두려움으로 변질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을 알려주고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아이들은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 아빠도 더 이상 머리가 빠지지 않고 있다, 치료가 되는 일이고 그렇게 하고 있다, 너는 동그란 이마가 제일로 예쁘다, 그걸 드러내면 너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을 해도 계속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할머니의 행동에 다른 의도는 없었으며 너를 돌봐주는 손길이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발을 해야 할 때면 미용사분들께 최소한의 머리 손질만 요청하고 아이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알려드리며 적극적으로 아이의 의향을 전했다. 아이는 머리를 아예 자르지 않고 그냥 지내고 싶어 했지만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의 머리를 장발로 둘 수도, 앞머리가 눈을 찌르는 모습을 두고 볼 수만도 없었으니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의사를 대변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엄마는 자신의 걱정에 관심이 있고 그 걱정을 공감하며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리가 예상보다 조금 더 짧게 잘려도 더 이상 실망한 내색을 보이거나 볼멘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음은 부지불식간에 날벼락을 맞은 엄마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신랑한테 상황을 설명하고 엄마께는 양해를, 신랑한테는 조심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 한 명만 이해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당분간 자극 없이 아이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선택이 지나친 배려다 싶을 수도 있고 어른에 대한 태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으로 비출 수도 있겠지만 아이 또한 자신의 취향과 선택에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고 몰라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설명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변함은 없다. 이해를 받아봐야 이해할 수 있는 아이로 크지 않을까? 마음에 화를 잠재워봐야 화를 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게 내가 아이를 기다려주는 이유였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확인하고 깨달을 뿐 아이는 어른들의 모든 대화를 다 듣고 있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는 동시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남편의 길고 길었던 걱정과 푸념이 아주 잠시 원망스러운 맘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섞어 조금 잘못 왜곡한다 해도 언제까지나 우리끼리 쉬쉬하며 소곤거릴 수 도 없는 일이니 정말 알지 않아도 되는 일, 알지 않길 바라는 얘기들은 최대한 조심해야겠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최대한 공유하고 알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앞으로도 우리 대화에 구성원으로서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마음을 읽어주는 것, 모르고 궁금해하고 두려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끊임없이 설명해주는 것이야말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에 하나씩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처럼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부여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아이에게 쌓이고 소화되어 결국엔 자신의 눈앞에 스스로 돌덩이를 내려놓을 위치를 잡아가는 능력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자신의 속도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잠들기 전 아이의 귀에 대고 엄마를 조금 더 믿어도 될 것 같다고, 이 말을 속삭여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교육, 그 달콤함에 빠지지 않을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