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Dec 12. 2023

저는 당근형 인재입니다

어디까지 가게 될까요?

12월 1일부로 또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흔히 중고물품 거래사이트로 알고 있는 '당근'앱을 통해서고 이번이 벌써 4번째다. 퇴직 후 뭐하고 지내냐는 전 직장 동료의 질문에 당근에 물건들을 올리며 지낸다는 말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앱을 통해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소일거리처럼 물건을 정리하고 동시에 내 마음도 정리하며 비움의 시간을 갖는 것. 나는 딱 그 정도의 상황에 만족했다.


하지만 마음가짐처럼 실제는 그리 가볍지 않은 기세였다. 사무실에서 쓰던 전기방석 하나를 넘기더라도 외출이 어려워 움직일 수 없다는 공단 직원에게 직접 배달을 해주고 저렴한 값에 물건을 넘기며 최선의 호의로 돌려받는 칭찬취해 이 상황에 너무나 매몰되었던 것이다. 이런 성격을 아는 신랑은 당근에 올릴 물건을 정리 중이라는 말만으로도 그러다 병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모든 것에 너무나 진심이었고 어쩌면 그때가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진심을 통해 이 시장에서 생태계 교란종된 것이! 


첫 알바는 정말 우연이었다. 30분짜리 알바. 라이딩을 요청하는 글이었다. 아이의 하교 픽업을 요청하는 그 글의 의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변함없이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일, 바로 내가 그 당시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있던 하교 라이딩이었다. 역시나 아이 엄마는 앞에 사람이 3번 만에 도망을 갔다며 걱정을 했다. 나는 우리 동네에 사는 그 사립학교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곧장 우리 아이에게로 넘어가는 동선을 꼬박 일 년 내내 묵묵히 수행해 내며 길 위에서 또 한 번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돈을 좀 벌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동시에 찾은 알바가 책시터였다. '돌봄 서비스'라는 해본 적이 없는 분야에 지원하며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담담히 적었고 지원자 8명 중 마지막 지원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너무나 감사한 인연이라 생각하는 가정과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이 되었다. 그때 당시 그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중심을 잡았고 이를 계기로 나는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어디서든 통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물론 아이를 돌보며 그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기쁨이 큰 일이었지만 이렇게 짧게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근무시간과 저녁시간이 겹쳐 정작 운동을 하는 우리 아이를 돌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당근앱을 뒤적거렸다. 아이를 돌보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 매력을 느낀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후에만 일할 수 있는 일로 범위를 정했고 그렇게 학원일이 눈에 들어왔다.


전국단위 체인인 어학원에 바로 채용이 되었다. 예쁘니까 뽑겠다며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던 그 원장은 3개월 만에 그 학원을 팔아치우고 소위 먹튀를 했다. 그래서 새로 학원을 인수한 원장과 데스크실장은 전적으로 나에게 의지해 학원을 운영했고 그 학원에 발을 들인 지 3개월 만에 전임이 되었다. 책임이 부담스럽지만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이 경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수업도 조율해 주고 출퇴근 시간도 탄력적으로 활용토록 배려받았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해프닝 하나로 나는 그 학원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이제 막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던 차에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그래도 이제 어지간히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겠다 확신을 얻은 상태였기에 12월 한 달은 쉬면서 오전에 하고 있는 학교 수업에 전념하거나 아예 풀타임 근무를 알아보려던 참에 나는 바로 구미가 당기는 일을 발견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아버님을 이어 사업장을 운영하던 젊은 대표님은 앞선 면접자들을 제쳐두고 나를 우선 채용했다. 학원일이 끝나기도 전인 11월 중순의 일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안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하겠다고 선택한 일이었기에 2주를 기다려준 대표를 위해 누구보다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그렇게 '30년 기름집'의 첫 직원이 되었다.

당근에는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그렇다고 페이가 완전 최악도 아닌 꽤나 괜찮은 일들이 올라온다. 다만 다들 급하게 구인을 하고 근무시간을 길게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나한테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내가 또 일거리를 찾았다고 하니 누군가는 내게 생활력 만렙이라 하고 누군가는 내게 나중에 뭐가 되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냐고 하지만 일 종류에 편견이 없고 적응이 빠르며 오후만 일하고 싶은 나에게는 이만한 잡시장이 없다.


첫 알바에 새시장에 발을 들이는 기회를 얻었고 두 번째 알바에서 내 안의 틀을 깨뜨리는 경험을 했다. 세 번째 알바에서 선택받을 수 있다는 확신의 기쁨을 느꼈다면 지금은 소통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나는 그래서 나를 당근형 인재라고 칭하고 싶다. 앞으로 딱 10개의 직업을 더 가져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고루한 말은 넣어두고 싶다. 이런 일을 안 하게 생겼다는 편견과도 싸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이 말들의 의미를 뒤집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어디서 이런 사람이 굴러들어 왔을까? 나를 믿어준 내 고용인들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랄까. 나는 계속해서 깜짝 놀랄 일들을 해볼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구부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