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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Feb 10. 2023

야구부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야구를 시키려는 이유

지난달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전학절차를 진행하고 스포츠지원포털에 야구선수 등록을 마쳤다. 올해 4학년이 되는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단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사실 가볍게 응했지만 그 안에는 다 형언할 수 없는 진부한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학교 입학부터 김성근 감독님까지... 남들이 보기에 조금은 무모하다고 느낄만한 일들을 선택하고 처리하며 역시나 진부하지만 언젠가는 이 시작을 꼭 기억하고 싶기에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3년 전 아들은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엄마가 일을 하니 돌봄 대안으로 한 선택이었는데 이젠 불필요해져 학교를 빼고 싶은데 명분이 없었다. 애초에 보내기로 한 3년은 채웠고 남은 3년은 선택이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이미 친구들과 친분이 쌓일 대로 쌓인 아들은 학교를 옮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엄마만 혼자 '전학 가야 하는 4가지 이유'라는 것을 나열해 보며 답도 없는 저울질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아들의 바람대로 기존 학교에서 졸업을 하기로 잠정 결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수업을 나갔던 학교가 야구부를 운영하고 꽤나 혹할 만큼 유순한 분위기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주변의 조언을 참고함과 동시에 아들에게 살짝 정보를 흘렸다. 큰 기대 없이 순수한 관심을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방학 시작하는 첫주에 야구부 감독님 면담을 진행했다. 아들은 전학을 하겠다고 했다. 그게 2학기에서 새 학기가 되더니, 겨울방학 개학일로 정해지는데 만 이틀이 걸렸다. 우려했던 저항같은 건 없었다. 졸업을 하고 싶었던 학교였으니 아쉬운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는데 지켜보는 엄마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들은 순식간에 적응했다. 이유는 오로지 야구 하나였다.

 

아들은 야구가 정말 좋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아들 맘 속에 불을 지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돌이켜보면 시작은 지인이 운영하는 야구레슨장이었을 것이다. 1년을 넘게 다니면서 놀이처럼 야구를 접하고 쉬는 시간엔 동생들과 게임하고 운동 끝나면 엄마와 외식하는 맛으로 다녔다. 지금은 야구예능 '최강야구'에 푹 빠져 어지간한 룰은 공략 중이지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다닐 때는 정말 '안타'라는 용어조차 몰랐다. 그런데 안 가겠단 말이 없었고 운동 하나는 시키긴 해야겠기에 그냥 보낸 것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부모는 안다. 아들의 운동신경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란 것을...


그런데도 야구를 시키기로 결정한 데는 아들의 선택도 있었지만 사실 부부가 야구팬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입사초기 못쓰게 된 야구표를 아쉬워하던 어느 날 그 티켓을 쓰러 본인이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인연으로 사내 커플이 된 부부는 회사에 야구 동호회도 만들어 몇 년간 같이 활동도 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취미활동일 뿐이었고 아들 야구시키고 싶다는 말은 야구 좋아하는 아빠들이 그냥 하는 흐뭇한 농담 정도로만 여겨졌기에 아들이 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운동선수로의 전향은 특별한 기회나 계기가 없다면 실현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디 운동이 쉬운가?

게다가 나는 야구팬이라기 보단 정확히 '김성근 감독'의 팬이었기에 감독님이 한화에서 경질되신 후 더 이상 야구를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김감독이 아들의 최애프로인 '최강야구'를 통해 돌아오시며 분위기가 급 반전되었다.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감독의 한마디한마디에 다시 집중했다. 원포인트 레슨에 가슴이 뛴다며 아들보다 더 소리를 질러대는 엄마는 아들 기억엔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조용히 하라던 엄마는 어디 간 거지? 아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 야구에 진심이구나?"


전학도 부모의 취미도 중요했지만 사실 야구를 시키는 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학원 라이딩을 그만두고 싶어서이다. 11시 넘어 자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지만 1~2시면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다. 학원을 많이 다니면 숙제 때문에 시간이 없어 헉헉대지만 예체능 외 학습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들은 오후시간이 남아돌았다.(고민고민해서 선택한 영어학원도 두 달 만에 그만두었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고 싶진 않은데 시간을 활용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오후일과 내내 운동과 훈련을 시켜준다는 야구를 한다면 아이 인생의 한 시기를 충분히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인재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고 공부와 운동 골고루 다 잘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공부하는 동안 운동을 시켜주지 않으니

운동을 전문적으로 시키면서 공부는 엄마가 엄마표로 지도해 주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아예 손을 놓았던 건 아니었다. 학원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시켜보기는 했다. 그런데 오래 보내고 싶고 믿고 맡길만한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반대로 기웃거릴수록 다 필요한듯해서 미련을 끊지 못하고 계속 실어 나르느라 죽도 밥도 안됐다. 야구를 하면 주 6일, 저녁까지 운동해야 하는 스케줄이라 고민이랄 것 없이 강제적으로 모든 게 정리가 됐다. 어떤 사교육을 시켜야 할지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 아들은 소파를 뒹굴며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인 2010년도에 구입한 '야구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고 있다. 책장을 뒤적거리다 스스로 찾아낸 책이다. 알고 싶은 분야를 탐구하고 정보로 인식해서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있는 것, 이게 다 공부의 길이 아닐까?

아들이 야구를 좋아하는지 여부는  알았으니 이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일만 남았다. 실제로 경험해보지도 않고 아이가 이 길로 진학을 할 수 있는지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같아선 끝까지 안 해도 그만이란 생각이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대학생도 수두룩하고 어른조차 중간에 포기하는데 이제 막 11살 난 아이에게 한번 선택했으니 너의 진로를 책임지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저 3년간 팀활동을 통해 잘하는 부분은 인정받고 못하는 것들로 겸손해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모르는 길이라는 이유로 조금은 두렵다. 그래도 40여 년을 살아보니 새로운 길에 들어서 마주한 두려움이 인생을 변화시키고 다채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 가는 길이어서 설레기도 한다는 정도이지 싶다. 김성근 감독과 미떼광고 소년 일화를 접했다. 누군가의 관심과 따뜻한 한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그렇게 아이의 순수한 열정을 알아봐 준 그 첫 번째 어른으로 남고 싶다. (돌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김성근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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