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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is Apr 17. 2018

비어파파를 만나다

야나카긴자 펍 이시이에서..

숙소인 하나레 근처는 몇년 새, 도쿄 젊은이들에게도 인기있는 핫플레이스가 된 듯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시장과 골목 뒤 맛집들도 즐비했지만 최근들어 생긴 힙한 바, 레스토랑들도 있었다.


슈짱이 잠시 하나레 주변을 안내해줬다.

그리고는 이따 8시쯤 만나 저녁을 먹자고 하고 나 홀로 산책에 돌입했다.

이미 저녁 6시를 넘기고, 해는 자취를 감춘 시간이었다. 바람은 그리 차지 않게 선선한 정도로 불었다.


꼭 맥주를 마셔보라며 추천해 준 곳도 바로 여기 '비어펍 이시이'.

이 펍은 자리가 그리 넓지 않은데 실내는 이미 만석이었다.

실외에 스탠딩 테이블이 3개 정도 있었는데 그 마저도 하나만 남아 있었다.

'이따 오면 아예 못마시겠는 걸'

괜히 조급한 마음에 주문을 했는데 수제맥주로 보이는 메뉴 몇 개는 하나같이 품절이었다.

6시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주말이라 그런지 이미 인기있는 맥주는 마실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도대체 여기 맥주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맥주 한 잔과 버섯 안주를 주문했다.

난 사실 술 맛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한 모금 마시니 입안 가득 향긋한 과일 향과 부드러운 거품은 이곳의 인기를 대변해줬다.


사실 이 날, 슈짱이 아키하바라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대접할 거라고 해서 배를 좀 비워놨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다른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두 번째 잔을 마시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혼자 먹고 마시다 보면 딱히 할 게 없어서 사람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여행까지 왔는데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건 왠지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생긴 버릇이다.


실내에도 좌석이 몇 개 있긴 했지만 2-3명의 무리들이 테이블 주위에 서서 기분좋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주말의 여유 덕분인지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풍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홀로 온 어떤 남자분이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홀로 온 게 아니었다. 아기와 함께였다.

눈대중으로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된 아기로 보였다.

아기띠인지 힙시트인지를 한 채...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이게 진정한 1석 3조가 아닌가?

아니 1석 N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이후에 따를 만족감... 그리고 조용히 평안해 보이는 얼굴로 자고 있는 아기..


저 아기 아빠는 주말이라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준 걸까?

순둥이 아기와 산책 나왔다가 한 잔 하고 싶었던 걸까?

어째서 이시간에 아기와 함께 나와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지..

그 사연이 궁금하긴 했지만 방해하지 않고 혼자 상상만 했다.


집 근처에 펍 이시이 같은 곳이 있다면 아이도 잘 보고 맥주도 부담없이 마실텐데.. 현실은...


스웨덴의 육아 환경이 최고 수준이란 얘기를 방송이나 뉴스를 통해서 많이 접했다.

그리고 아기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며 유모차를 미는 스웨덴 아빠들을 '라떼 파파'라고 부른다고 했다.


주변 일본인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것을 보면 일본의 육아환경도 한국과 큰 차이는 없다고 느꼈는데...

'비어 파파'를 목격하게 된 건 대단히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그 비어파파의 아내 분도 어쩌면 나처럼 아기와 남편을 두고 혼자 자유 여행중일 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함께..

그 날 저녁 내내 편안하면서도 행복한 바람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비어펍 이시이에 관한 정보

홈페이지: https://beerpub-ishii.tumblr.com/

위치: 3 Chome-45-8 Sendagi, Bunkyō-ku, Tōkyō-to

주의사항: 실내금연, 신용카드 사용 불가, 예약 불가

비정기적 휴무가 간혹 있으므로  SNS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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