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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Oct 17. 2016

송승헌? 송승헌!

잘생긴 남자 만나기 #1

스치듯 지나갔던 몇 번의 연애 중에 유독 기억이 남는 사람이 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한동안 나는 긴 연애를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처음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헤어지고 말았다. 나를 조금만 무시하는 듯해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연애를 할 때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라,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은 남자들은 대개 어이없어했고, 나는 질릴 만큼 정확한 이유를 대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기의 연애는 말 그대로 연애일 뿐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제로 하거나, 보고 싶어 미치거나 하는 뜨거움이 전혀 없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딱 설렐 정도로만 관계를 이어가다가 수가 틀어지면 쉽게 쫑을 냈다. 말이 연애지 요즘 말로 썸보다도 못한 그저 연애질일 뿐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방황을 하던 차에,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여고를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늘 붙어 다니던 친구, 소심하기 짝이 없어 가끔 끝 간 데 없이 과감해지는 나를 격하게 아껴주던 친구였다. 하지만 내 등신 같은 첫사랑에 처음으로 쓴소리를 했고, 미쳤어를 연발했었지. 첫사랑이 거지같이 끝났을 때 쌍수를 들어 환영한 건 뭐 당연한 일이었다.


"주영아 소개팅 하나 하자!"

"뭔 소개팅이야. 귀찮아."


"맞선 보듯이 그런 거 말고 자연스럽게 넷이 밥 먹으면서 한 번 봐봐."

"넷?"


"응, 우리 오빠 친구야."

"네가 오빠가 있었냐?"


"아니 남자 친구의 친구라고."

"아~ 그래? 알았어. 그럼."


"뭐 안 물어?"

"뭐하러 물어 물어봐서 만날 거 안 만날 것도 아니고, 가서 보면 되지."


그랬다. 난 사람을 만날 때 누군가 소개시켜주면 이름이나 사는 곳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로 묻지 않았다. 만나면 외모는 보게 될 것이고, 소소한 정보는 말을 섞다 보면 알게 될 것이고, 성격이야 겪어봐야 하는 거니까. 주선자 주관의 설명 따위 기실 별로 맞는 적도 없었으니까.


"참 대단하다. 그래도 이 말 들으면 혹 할 걸~ 송승헌 닮았어."

"뭐? 송승헌?"


"응 진짜라니까."

"그렇게 잘 생긴 애가 여자 친구가 없어? 성격 변태 아니야?"


"절대 노노, 내가 몇 번 만나봤는데 사람 괜찮아. 진짜! 그러니까 소개시켜줄라고 하는 거지."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여자 친구가 없다? 고자아냐?"


"야야! 못살아. 그건 내가 모르겠고, 일단 만나보라니까."

"알았다고요."


그렇게 성사된 소개팅 같지 않은 소개팅 자리은 노량진 어디 즈음의 삼겹살집. 성격상 칼질하는 거 보다는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이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기도 했고, 설렘설렘, 로맨로맨 손 발 오그라드는 카페나, 레스토랑도 불편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와 그의 친구, 나 결국 넷은 소탈하게 삼겹살 집에서 마주 앉았다.

어머 그런데 정말 송승헌을 닮았네? 연예인 되기 전의 송승헌 정도라고는 할 수 있겠다. 친구의 남자 친구도 빠지는 외모는 아니어서 눈 앞에 나름 훈훈한 광경이 연출됐다.


"서로 인사해, 이쪽은 내 고등학교 동창 주영, 이쪽은 오빠 친구 이희수"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웃는 게 별로다. 남자답고 호탕한 웃음을 좋아하는데 그 잘생긴 얼굴로 내시같이 웃는다. 술을 마시기도 전에 술이 깰 것 같은 웃음이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밥을 먹고 술잔이 오갔다. 첫인상이 별로면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게 되는 편이라 내시 웃음 한 방에 마음을 접은 나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주선자 격인 친구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서로 자신의 친구를 추켜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빠 얘가 엄청 똑똑해요. 말도 잘하고요. 책도 엄청 읽어서 모르는 게 없다니까요."


아이고... 이년아. 그게 지금 칭찬이냐? 말 잘하고 똑똑한 여자 부담스러워할 텐데. 도와주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뭔가 삔뜨가 어긋났다. 혼자 속으로 피식 웃었다.


"참, 친구한테 말했어? 희수 응원단장인 거? 얘 00대학 응원단장이잖아. 얘 응원하면 여자애들 쓰러진다."


아 여자 꽤나 꼬이겠네. 주변에 어중이떠중이 여자 꼬이는 남자 딱 질색인데. 점점 멀어지나 봐~ 노래가 나올 지경이었다.


"오빠! 주영이 고등학교 때 응원단이었잖아요. 2학년 체육대회 때 장난 아니었어요."

"아 진짜? 인연이네."


인연은 개뿔 체육대회 때 잠깐 연습해서 학예회 수준으로 한 거랑, 대학교 응원단에서 몇 년간 연습한 실력이랑 같을 수가 없지. 갖다 붙여도 참.


"아유 무슨요. 체육대회 때 잠깐 연습해서 학예회 정도 수준으로 한 걸 가지고요. 대학교 응원단이랑 비교가 안돼죠."

"하긴 지난번에 오빠네 학교 축제해서 구경 갔었는데 진짜 멋지더라."


사실 잘 생긴 얼굴에 배알이 꼴려버려 뭐든 삐딱했다. 나도 모르게 차갑고 도도한 여자 코스프레 중이었달까. 그러면서 쿨한 척! 같이 즐겁게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다음에 또 넷이 보자며 헤어졌다. 그리고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야 어때 어때?"

"뭐가 어때."


"마음에 들어?"

"들지도 않고 안들지도 않고, 난 너무 잘생긴 애들 싫어."


"그래서 그분 만나셨냐? 아이고~~ 그냥 좀 만나봐. 오빠는 너 마음에 쏙 든대."

"내가 좀 눈이 발바닥에 달렸다고 전해라. 근데 왜 마음에 쏙~~ 드신다니?"


"자기한테 초면에 그렇게 편하게 대하는 여자 처음이래."

"뭐래니? 어디 하이틴 로맨스 같은 대사야. 야야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러지 말고 일단 한 번 더 둘이만 만나봐."

"하긴 넷이 볼 때랑 다르긴 하겠다. 알았어. 그래 보자."


못 이기는 척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웃음소리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뭐, 인간성이 받쳐주면 참아줄 수 있지. 게다가 송승헌 외모를 만나기 쉽나. 한 번 더 만나 손해 볼 건 없지라는 매우 당연한 자기 합리화를 했다. 누구든 그랬을 거라고 우겨본다. 


어딘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느 카페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여자니까 15분 늦고 그런 거 없는 성격. 제시간에 나가 먼저 도착해 앉아있었다. 한 5분쯤 지났으려나 그가 나타났다. 머쓱하게 웃으며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말이다. 


"미안, 늦었지. 많이 기다렸어?"

"아니요. 그닥, 한 오 분쯤?"


"어... 어떤 꽃을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장미로 샀어."


고맙게 받아 들었지만, 난 장미보다는 백합이나 난꽃을 좋아하고, 꺾은 꽃보다는 화분을 좋아하는 인간형이다. 사실 꽃 선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꽃다발이 아니라, 한 송이 었다는 것. 늘 꽃을 선물 받는다면 딱 한 송이, 그게 좋았다. 모르고 한 일인지 친구의 코치 인지 알 수 없으나 장미 한 송이에 마음이 흔들,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생긴 남자와 꽃 한 송이는 얼마나 은혜로운 조합인가!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혹은 식당에서 카페에서 사람들이 한 번쯤 쳐다볼 만한 남자와 다니는 건 묘한 승리감을 느끼게 했고, 때론 불쾌한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성격상 나 스스로가 인정받아야지, 타인으로 인해 내 존재가 인식되는 걸 참을 수 없는 성격이었달까? 구르고 굴러 동글해진 지금의 자아라면 봐라 요것들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만. 20대의 까칠한 김주영은 사람들 눈길을 끄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자존심만 드높아서 그런 이야기를 절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친구의 입으로 듣자 하니 학교에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몰고 다닌다던데 그것도 신경 쓰지 않는 척, 쿨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먼저 학교 이야기를 묻지 않는다거나, 주변 여자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으며, 전화를 받을 때 누구야라고 묻지도 않았다. 종내에는 그가 넌 왜 안 물어보냐며 의아해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나의 대답은?


"내가 알아야 할 일이면 말해주겠지. 둘 이야기만 하기도 짧은 시간 왜 다른 사람 이야기로 허비해. 난 그런 거 딱 질색!"


속마음은 '드럽게 궁금하다. 알고 싶다. 아~ 짜증 난다.'였다는 건 지금까지 나만 아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그가 학교로 불렀다. 자신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침 학교 행사에서 응원 시범이 있으니 학교 구경도 하고 자신의 응원도 보러 오라 초대한 것. 고등학교 동창과 손 꼭 잡고 경기도에 있는 그의 학교를 찾아갔다. 일사 분란하게 응원을 리드하는 그의 동작은 생각보다 훨씬 멋졌다. 더불어 직접 목도한 그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찔렀다. 특히 1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의 눈마다 맺힌 하트가 내 눈으로 쏙쏙 날아들었다. 저런 남자가 나의 연인이라는 걸 감사해야 하는 건지, 저 수많은 하트하트 눈빛에 화가 나야하는 건지 애매한 감정이 돼버렸다. 물론 긍정적으로 뿌듯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응원 시범이 끝난 후, 그와 함께 동아리 방으로 갔다. 함께 동아리 방에 들어서자 나에게 쏟아지던 의아한 눈빛들, 마치 "넌 누구... 세요?"하는 것만 같았다. 


"들어와, 괜찮아. 얘들아 뭐하니 인사드려라, 선배 여자 친구"


다들 눈이 휘둥그레 쟁반만 해졌다. 뭘 또 그렇게까지 놀라나 티나게스리. 얼핏 한 둘은 대실망한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금 기억으로는 몇 명이나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 대단히 불편하고, 어색한 몇십 초가 흘렀던 것만은 기억이 생생하다. 인기 있는 남자를 만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알게 됐다. 속내를 감추지 않는 누군가의 따가운 눈총쯤 감당해야 하는 것? 깔끔하게 무시하거나 그 눈빛을 부러움으로 치환해 입력하면 자신감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묘한 논리까지.


정작 잘생긴 송승헌 도플갱어와 - 기럭지는 좀 부족하다만 -  헤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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