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편과 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편의시설이 가깝고 정확히 서로의 직장 가운데에 위치해 있지만 너무 번화가다보니 주말 밤만 되면 시끄럽다. 오피스텔이라 환기가 안 되어서인지 답답한 느낌도 든다. 조금 더 외곽으로 가더라도 아파트의 통창과 넓은 공간을 누릴지, 조금 좁지만 편리한 지금의 삶을 즐길지 몇 달째 이야기 중이다. 이사 자체가 쉬운 결정이 아닌데다 서울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면 나중엔 영영 서울 진입이 힘들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미래의 내 집을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인테리어 시뮬레이션을 몇 번 돌리고 나니 아무래도 조만간 이사를 결정할 것 같다. 지금의 투룸에서는 침대와 옷에 자리를 모두 내어주고 각자의 시간을 보낼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남편은 벌써부터 자신만의 ‘맨케이브’ 공간을 꾸밀 생각에 싱글벙글이다. 벽 한 쪽을 컴퓨터 책상으로 두고 옆면은 스크린을 설치한단다. 그 앞엔 소파와 테이블을 놓고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게 그의 로망이라면 로망이다.
이미 구체적인 설계도 끝난 듯하다. 얼마 전에 산 저렴한 패브릭 소파를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들어갈 계획이다. “우리가 새로 이사갈 집에는 새로운 예쁜 가죽 소파가 필요하잖아~!” 생글거리며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그의 계획에 추가해 버리긴 아깝고 두자니 마음에 들지 않는 TV선반과 장식장도 그의 방에 내어줄까 생각 중이다. 그가 좋아하는 원피스 피규어와 하나둘 사모은 미니카를 놓으면 꽤 그럴 듯한 공간이 완성될 듯하다.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생각에 그는 일찌감치 신이 나 있다. 본인의 취향을 한껏 드러내고 싶어했고, 나도 흔쾌히 그러라 한 상태다.
그의 ‘동굴’이 그의 취미로 그득그득 채워진다면 내 방은 그저 깔끔한 화이트톤의 원형 테이블 하나와 색색의 의자, 러그, 예쁜 조명 정도면 된다. 심플한 게 최고의 인테리어라고 믿는 나에게 장식품이나 불필요한 가구는 청소거리만 늘어나게 하는 것들이다. 선인장도 죽게 만드는 ‘똥손’에게 초록초록한 식물은 사치다.
새로 이사할 곳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드레스룸이 있는 공간이라면 침실은 작은방에 마련하고 안방은 기꺼이 남편에게 내어줄 생각이다. 침실은 침대만 놓고 ‘잠’이라는 목적에만 충실하면 된다. 드레스룸이 없는 구축이라면 옷과 이불을 넣을 공간이 필요하지만.
새로 이사할 집의 구상은 일찌감치 끝났다. 인테리어를 준비하는 과정이 생각만으로도 귀찮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는 설렘이 있다. 자, 그럼 집을 살 돈만 준비하면 된다! 남편은 이번주 ‘1등 로또’를 산 것 같다고 일찌감치 호언장담이다.
자기야, 우리 올해는 이사 갈 수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