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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걸 Apr 23. 2018

택배노조에 쓴 글

노예해방운동이 일어났을 때 반대가 극렬했던 그룹이 의외로 같은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왜 잘 살고 있는데 이런 짓을 하느냐”
“그래 맞아, 나는 주인님도 잘해주시고 지금이 만족스러워”
“잘 먹고 살만해지니까 배가 불러서 저러지”

노예생활에 익숙해지면 노예들은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쇠사슬이 더 빛나는가를 자랑합니다

최윤경님 글을 읽고 몹시 씁쓸해졌습니다
사실 오프라인이 아니더라도 이 밴드 내에서도 분란은 늘 일어나고 있지요

당장 오늘내일 사이에 변화가 생기진 않기에 빨리 지칠수도 있고 회의감과 무력감이 우릴 짓밟을지도 모릅니다

일제시대 대부분은 부당해도 일본의 만행에도 순응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소수의 독립투사들은 끝까지 웅거하였습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를 이룩하기까지의 시간동안 어디선가 누군가는 계속 싸워왔습니다

주5일 근무가 처음 이야기 나왔을 때 <관공서나 그리 쉬지 일반 업체들은 불가능하다> 코웃음 쳤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사회 전반에 시행되고 있습니다

택배 동료 여러분

지금은 첫 걸음이라 풀어야할 문제도 많고 큰 틀을 먼저 짜야 하기에 지지부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노동의 기본권이 무시되는 곳이 택배업이기에 기본부터 풀고 디테일한 것들을 후에 차분히 풀어가야 합니다

얼마전 택배업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하나씩 개선이 되어가고 있고 업계 전반에 걸쳐 좋아지는 부분이 생기면 우린 아무것도 하지않고 팔짱만 끼고 있었을 뿐인데 혜택은 우리 모두 볼 것입니다

함께 싸워주지는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함께 싸워주면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차라리, 차라리 비겁한 침묵을 해야 합니다

최윤경님처럼 누군가 앞에서 이야기해주고 우릴 대신해 주었기에 우리의 역사는 진보했습니다

저는 늘 부끄럽습니다. 저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제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전국의 택배를 같이 하고있는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이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같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동료끼리 송곳니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날이 무척 춥습니다

오늘 일하면서 쪼그려앉아 잠시 담배를 피우다 언 땅을 만지며 생각했습니다

왜 인간의 몸은 이렇게 식어도 끊임없이 입김이 나는가

나는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혈인가

계절도 시대도 추운 때에 함께 손 잡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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