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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 Aug 13. 2022

밑줄 그은 책처럼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예전에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H는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그 애만큼은 아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만나면 서로 대화를 하는 것보다 각자 책을 읽던 때가 조금 더 많았다. 나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있는 그 고상한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H랑 나는 책 취향이 완전히 달라 서로의 취향을 신기해하면서도 그게 대체 왜 재미있어? 하며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리의 취향이 영원히 같아지지 않기를 내심 바랬었다. 오히려 달랐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가 더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그게 그 애와 나의 사이 같단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같은 지점은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좋아해. 그리고 내 다름과 너의 다름의 끝까지 우리 둘의 세계야.’라는 의미부여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우스운 바람 때문이었을까. 슬프게도 H와는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그 이유 또한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H와 나는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에 좋아하는 분야는 완전히 달랐던 것처럼 책을 대하는 방식 또한 정반대의 사람들이었는데, H는 책을 엄청 깨끗하게 읽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책이 접히는 부분에 주름이 생기는 것도 싫어해 책을 꼭 아기 다루듯 아주 조심히 살살 펴서 읽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땠나. H의 시선에서 서술하자면 아마 나는 굉장히 지저분하고 요란스럽게 읽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근데 굳이 걔를 비교하지 않아도 좀 지저분하게 읽기는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생기면 연필로 꼭 밑줄을 그어야 했고, 연필이 없으면 모서리라도 접어 표시를 해야 속이 후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밑줄을 긋고, 모서리를 접고 하는 등의 행동들이 내 딴에는 책을 굉장히 진솔하게 대하는 태도였는데.. 아무래도 H의 입장에선 책을 아무렇게나 막 대하는 거라고 느꼈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H는 “솔아.. 제발..” 이라며 종종 앓는 소리를 내곤 했는데, 서점에 가거나 둘이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내가 책을 마구잡이로 집어 확확 피고, 꾹꾹 눌러 접어 읽었기 때문이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걔를 보고 있자니, 내 입장에선 그게 참 재밌는 볼거리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 표정이나 말투가 너무 귀여워서 일부러 더 오버했던 적도 있다. 내가 자기를 귀여워하는지 어쩌는지 알 턱이 없었을 H는 그런 행동을 하는 나를 조금 싫어했는데(물론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책을 못살게 구는 행동을 싫어했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H가 책을 조심히 대하는 그 행동이 썩 맘에 드는 부분은 아니어서, 나도 나지만 쟤도 참 유난이다. 유난스러운 게 닮았네 하고 능청맞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H는 어떤 날을 계기로 더 이상 나의 이런 유난스러운 독서 행위에 그 어떤 불평, 불만도 하지 않게 되는데, 그날이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니었고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서점에 신간 구경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한 나는 근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 읽었던 책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아마 김연수 작가님 책 중 하나겠지..) 그때 읽고 있던 부분이 너무 좋아 정신없이 연필로 그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렇게 감동의 밑줄 긋기를 하던 중, 순간 누군가 내 정수리를 긁는 섬찟한 기분이 들었고, 뭐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H가 서 있었다. 어? 왔어?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H의 얼굴을 본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왜냐면 걔 표정이 (정말) 심각하게 띠꺼웠기 때문이다. 잔뜩 굳어진 H의 표정에 왜 그러냐며 꽤나 민망했을 법도 했지만 걔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단번에 이해가 된 나는 그저 웃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은 서운함이 동시에 섞여 잇는 웃음이기도 했다.




걔는 자기 표정을 알아챘던 걸까? H가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더니 ‘책이 너무 상하겠다’라고 점잖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참나, 방금까지는 그렇게 띠꺼운 얼굴로 소리 없이 욕하더니.. 말투는 고분 한 게 어이가 없어 ‘아니, 이렇게 해야 속이 후련한 걸 어떡해?’라며 되려 큰 소리를 쳤다. ‘이렇게 하면 마음에 더 오래 남아서 그러는 거야, 작가가 애지중지 쓴 글이 누군가 마음에 남으면 그게 얼마나 보람되겠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근데 사실 저 마지막의 그럴싸한 말은 진심이라기보단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지어낸 말에 더 가까웠다. 나는 순간 억울했던 것이다. 나는 너의 유난스러운 부분도 이해하는데, 넌 왜 나를 못마땅해하는 거야?라는 마음. 하지만 저 그럴싸한 말 자체가 설득력이 있던 것일까? 아니면 웃고는 있지만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내 얼굴 때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저 날 이후로 H는 내가 책을 접던, 밑줄을 긋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찢었으면 뭐라 욕했을지도)




그리고 시간이 훨씬 지나 H와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졌을 때, 내 삶에 H보다 중요한 게 더 많아졌을 즘 말도 안 되는 순간에 H에게 카톡이 왔다. 엥? 얘가 왜? 의아했다. 왜냐면 H는 ‘자니?’와 같은 미련스러운 말로 남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얘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사람인가.. 하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열어본 카톡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걔가 보낸 카톡이 상상도 못 할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책 문장에 하늘색 형광팬이 진하게 칠해져 있는 사진. 그것도 논어 책에... (그렇다. H는 그런 책을 좋아했다...)


[소라야, 나도 이제 책 읽을 때 좋으면 밑줄 치게 되더라]


와. 주름 접히는 것도 기겁을 떨던 인간이 연필도 아니고 지우지도 못하는 형광펜이라니. 그것도 귀하신 공자 말씀에... 나는 밑줄이 그어진 사진을 보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야, 너 나보다 심하네’ 라며 우스갯소리를 몇 번 주고받다가 카톡은 종료되었으나 왠지 모를 승리감이 느껴진 건 왜 때문일까.




어쩌면 나는 나를 스친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어떤 하나의 문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무슨 책, 어느 문장에 밑줄을 쳤는지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그래도 책을 펼치면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나란 사람 또한 누군가에게 결국 흐릿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지난 시간을 펼쳤을 때 다시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만 돌이켜보면 내 삶 또한 빼곡하게 무수히 밑 줄을 그어 논 책 같다. 힘들고 아팠던 그날을 접어놓고, 치욕스러웠던 그때에 빨간 줄을 쳐 놓고, 언제 만난 누구, 그때 나한테 상처 줬던 사람. 잊고 살면 훨씬 도움 될 것들을 까먹지도 않고 진하게 칠하고 기억해둔다. 아픈 건 기억하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일 텐데. 그래도 나는 나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슬픈 일을 저장하고 다녀 인생에 슬플 것도 많지만 좋은 일을 저장하는 능력도 좋아서 즐거운 일 또한 아주 많이 품고 살기 때문이다. 나는 기쁘고 재밌던 그날을 접어 놓을 줄 알고, 행복했던 그때에 별표를 칠 줄도 알고, 언제 만난 누구, 그때 나한테 한 없이 따뜻했던 사람, 잊으면 절대 안 되는 모든 것들을 진하게 또 찐하게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인 거니까.




문득 H가 보내준 그때의 사진을 떠올리며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H에게 어떤 문장으로 기억되는 사람일까? 물어볼 마음은 없지만 그냥 궁금해진다. 동시에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단어로 기억되어 있을까? 더 나아가 나는 내 삶에 어떤 문장을 남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는 (내일 되면 까먹을) 명랑하면서도 부질없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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