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렁치렁 걸린 옷도, 무거운 옷장도 없다
경주에서 꽤 큰 지진이 난 이후 지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대피처, 대피방법 등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와중에 나는 다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지진 때 사람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물품이 의외로 옷장이라는 점이다.
옷장은 생각보다 무겁다. 혼수품으로 하는 큰 옷장 같은 경우엔 이불도 들어가기 때문에 정말 크다. 그런 옷장을 따로 두는 드레스룸을 마련하는 것도 요즘엔 비교적 흔한 풍경이다. 빌트인 옷장의 경우도 꽤나 크다. 거의 한 벽면을 다 차지할 정도다.
이케아 옷장에 어린이들이 깔려 사망하는 일이 다수 발생했다고 한다. 한국서 리콜을 하네마네 난리였다. 물론 이 제품은 벽에 걸어 사용해야 하는데 대부분 소비자들이 그렇게 쓰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것이긴 했다. 그치만 누가 세들어 사는 집에 마음대로 망치질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옷장이라는 물건이 재난 때 강력한 둔기 혹은 관(?)처럼 변할 수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집에 옷장을 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흠.
일단 나는 소시민 자취생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행거를 사용했다. 진짜 단순한 이케아 행거 같은 하얀 행거다. 조립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할만큼 단순한 구조를 가진 행거. 겉옷을 걸어두는 용도로 쓰려고 했었다. 결국 잡다한 모든 옷을 걸게되면서 뭔가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렁치렁 매달린 옷들을 보며 매번 생각했다. 이걸 눈에서 치울 순 없을까?
비키니옷장이라는 게 있었다. 기존 행거에 부직포 같은 천을 덮은 모양이었다. 새로 사야하나? 고민만하다 말았다. 또 큰 물건을 집에 들이는 게 싫었다.
행거를 없앨까?
우선 겉옷을 정말 입고 싶은 것만 남기고 버리기로 했다. 사실 그 몇 달 전 옷정리를 한 덕에 겨울용 점퍼, 코트 한개씩만 남고 아무것도 없었다. 가을용 아우터 몇개가 남았는데 여름에도 에어컨 때문에 자주 애용했기 때문에 버릴 생각은 없었다.
바구니를 두고, 입은 옷은 따로 넣기로 했다. 세탁하기 전에 또 입을 만한 옷이다. 하루정도 옷걸이에 걸어 못에 걸어논 다음 접어서 바구니에 넣었다. 겨울이 되면 점퍼나 코트는 집구석에 이미 박혀있던 못에 걸 생각이다. 딸랑 2개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집은 더 깔끔해졌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행거 없이 사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