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약
어제는 길고 긴 1년 동안의 공부에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데드라인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서두르고 제본하기, 메일 보내기 등을 하며 서울 학교에서 이리 걷고 저리 걸으며 일주일치 운동을 한 듯 돌아다니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와 세수를 하는데 흘러내리는 물로 얼굴을 적시니 절로 감사했다. 그리고 노란 차렵이불을 덮고 누우니 포근하고 편해서 또 감사했다.
고통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미움이 있기에 사랑도 있는, 우리는 이원성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정말 힘든 하루였기에 이 작은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상 위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포스트잇에 적혀 있지만, 이것들을 이루어도 희로애락은 그대로 이어지겠지, 이 소원들이 이루어진다고 짠! 하고 백 프로의 행복이 나타나지는 않겠지. 이제는 알고 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순간이라는 것을.
그 순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나의 꽃들- 어제, 오늘 작약이 더더욱 피어나고 있다. 겨울이 되니 잎은 시들어 버리고 구근 상태로 월동을 한 뒤 봄이 되자 싹이 빼꼼 올라오더니 두 달 만에 이렇게 자라서 황홀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겹꽃, 은은한 향기를 보여주고 있다.
안젤라 장미는 사계장미로 미니 사이즈의 꽃이 핀다. 나리꽃은 몇 주 전에 양수리에서 사 와 심었는데 이렇게 빨리 꽃을 보여주었다. 붉은색에게 빨려 들어갈 듯하다.
역시 몇 주 전이었다. 바람이 많이 분 날, 막대기가 해바라기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줄기가 꺾여 죽을 것 같아 뽑으려다가 그냥 두었는데 지나가며 보니 잎이 시들지를 않는 거다. '뭐지? 왜 안 시들지?' 했는데 오늘 보니 잎이 아주 싱싱하다. 그리고 땅에 누워있던 줄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정말 자연의 생명력은 경이롭구나. 나는 포기했는데 너는 너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어떻게든 살아남는, 그래서 네 본연의 찬란한 모습으로 세상을 밝히는 너의 그 강인함을 보며 왜 나는 이렇게 숙연해지는지.
또 하나, 나 먹을 것도 넉넉하게 내주는 자연이니 벌레가 먹어도 그냥 두는 편인데, 케일 잎이 그렇게나 맛있나 보다. 케일 특유의 맛이 있어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건만, 초록 애벌레가 포식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 먹고 조금 멀쩡한 건 내가 먹는다. 이렇게 수확해도 다 못 먹을 정도니 욕심 내지 않는다.
이렇게 힘듦 속에도 행복이 있다.
행복을 느낄 마음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