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인사
대박의 꿈을 갖고 있었다. 한 5년 전인가, 사주 풀이를 좋아하는 후배의 추천으로 멀고 먼 수유리까지 가서 길고 긴 대기를 뚫고 드디어 만난 중년의 아저씨가 나에게 이랬던 것이다. "매일 매일 조금씩 글을 써라.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난해서 미술용품도 제대로 살 수 없었던 한 화가를 언급하며 그가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는 그 그림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처럼 전시를 했다며,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급기야는 조앤 롤링과 조정래까지 운운했던 것이다.
사실 나를 낯 모르는 이들에게 드러내는 일은 에베레스트 같은 큰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죽음에 비견할 엄청난 공포를 극복해야 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에게 머리를 토닥여주어야 했다. 작년에 뒤늦게까지 마치지 못한 공부를 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인내심을 쥐어짤 때 브런치 집필은 바닷속에 갇힌 조난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숨구멍이 자주 필요했기에 나는 브런치에 자주 글을 썼다. 마치 내 일상에는 전원에서의 로망만 있는 듯, 아름다운 자연만 있는 듯, 여유로운 삶을 사는 듯 보였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아직 나의 부끄러운 부분까지, 시끄러운 부분까지, 복잡하고 다단한 삶의 한 단면까지 드러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대박의 꿈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아는 시인, 교수 등 내로라하는 분들이 내 글을 읽었다고 하실 때마다 "그냥 일기처럼 편하게 쓴 글이에요."라고 절절매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이 글들을 모아 (브런치) 공모를 하면 그 중년의 아저씨가 내뱉은 '예언'처럼 뚝딱하고 뽑힐 거라고(제발 뽑혀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미끄럼틀을 두 번이나 남모르게 타고나니, 뭔가 쑥스럽고 민망하고 회의적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작년 여름 공부를 마치면서 육지로 돌아온 나는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숨도 잘 쉬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에 게으름을 피운 장황한 이유이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도 중간중간 구독자가 생겼다고 알람이 들어왔다. 주인 없는 가게에 손님이 왔다가 쓱 보고는 "이 가게 뭐야~"하고 나가버리거나 시들해질까봐, 주인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는 숨구멍이 될 수 있을까. 그 무엇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다시 써보고 싶다. 부지런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대박의 꿈은 이제 없다. 중박의 꿈도 아니다. '소박'한 나의 글을 더 진솔하게 쓸 수 있는 용기라면 족하다. 기교보다 아름다운 것은 진정성이고, 진정성 있는 글은 더 오래 남는다. 내 제자들의 글에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이런 힘을 느꼈다.
그동안 전원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벌써 여러 꽃이 지고, 여러 꽃이 피고 있다. 새로운 꽃도 늘어났다.
차차 주인이 소식을 날릴 테니 그대 손님들은 와서 구경 좀 해주련가?
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