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을 떠나다
매주 월요일 연재를 약속하고 두 번째 글을 올려요.
조금 일찍 주일 밤에 올려봅니다.
여행이 처음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건데요,
새로운 것에 도전했던 때의 저의 예전 모습이 새록새록 기억나네요.
그럼 동화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처음 떠나는 여행은 설렘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여행 준비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신발도 두 켤레는 더 있어야 할지도 몰라. 너무 많이 걸으면 신발이 망가질 수도 있잖아. 옷도 좀 더 넣고, 휴지도 챙기고, 먹을 것도 좀 챙기자.'
짐을 싸다 보니 들고 다니기엔 너무 많은 양이 되었다. 때마침 이야기꾼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 짐을 보더니 이렇게 챙겨가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이렇게 큰 짐을 들곤 멀리 떠나지 못해."
나름 고심해서 짐을 챙긴 나는 반박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필요한 것들이에요."
이야기꾼은 꾸려져 있는 짐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여행을 하다 보면 부족한 채로 떠나도 채워지는 게 많단다."
그러면서 이야기꾼은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 둘씩 빼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치자 가방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두발과 어깨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되었다.
내가 마을을 떠난다는 결심을 주변 사람들 – 가족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에게 알렸을 때 나의 결심을 지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만류하는 이유는 알지못하는 세상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애야, 너는 지금 아주 중요한 시점에 있단다. 지금네 나이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는 것이 네 미래를 불안정하게 만들진 않을지 걱정이 되는구나.”
“좋은 직업을 가지지 못할까 봐 그러세요?”
나는 마음 한 구석에 걱정으로 삼고 있던 문제를 선생님이 말로 꺼내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렴.”
나는 이야기꾼을 떠올렸다.
“여행가도 직업이 될까요?”
선생님은 당황하더니 잠시 할 말을 찾는 듯 눈을 굴린 후 대답했다.
“여행가도 직업이긴 하지. 하지만 아주 불안정한 직업이란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계속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거처가 분명하지 않지.”
“제가 아는 이야기꾼은 여행가에요. 그는 광장에 불규칙적으로 나타나요. 선생님의 말대로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선생님도, 저도 그것이 정말 불안정한 직업인지는 알지 못해요. 우린 여행가였던 적이 없으니까요.”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나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났다.
마을을 등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헤어짐에 대한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호기심 많고 어리고 철없고 열정적인 그 발걸음이 나 자신을 어떻게 성장시킬지도 모른 채 그렇게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마을을 나오자마자 나를 놀라게 할만한 풍경이 바로 나를 맞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 멀리까지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지평선이 내 마음의 걱정을 증폭시켰다.
‘큰 소리 치고 마을을 떠났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길만 걷다 오면 어떡하지? 저 멀리까지 지평선인데 얼마나 더 가야 이야기꾼이 말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걱정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한 한편, 나는 사실 감탄하고 있기도 했다. 건물로 꽉 찬 나의 – 큰 도시라고 해도 무방한 – 마을에서는 지평선을 마음껏 감상할 장소도, 그것을 감상하러 마을 변두리까지 찾아갈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360도 펼쳐진 지평선을 마주한 나는 차마 말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경이로울 정도로 광활한 대지에 위축돼 있었다. 세상은 아주 크고 나 자신은 그것에 비해 너무 작은 존재라는 것. 그것을 철저하게 느끼고 있었다.
며칠을 걸은 끝에 눈 앞에 오르막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산으로 향하는 길이리라. 한참을 걸으니 경사가 점점 가팔라졌다. 주변은 나무로 울창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산을 오르는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산 위로 올라가면 산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을 거야. 그 곳에서 이야기꾼이 말한 색깔이 많은 마을이나 공평한 나라가 있는지 찾아보는 게 좋겠어.’
나는 키 큰 나무들로 인해 그늘이 드리워진 어두운 산길을 한 발, 한 발 조심이 올랐다.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저 멀리 길의 끝으로부터 빛이 환히 밝혀져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끝에 다다랐을 무렵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온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뾰족하고 우뚝 솟은 산꼭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정상은 뾰족하긴 커녕 다 돌려면 반나절은 걸릴 것 같은 넓은 지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다 산은 너무 커서 산 아래로는 또 다른 산만 보일 뿐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나의 넋을 빼앗고 나의 말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내 눈 앞에는 이야기꾼의 말한 일곱 가지 색깔로 빛나는호수가 있었다. 내가 땅이라고 생각한 넓은 지면은 흙이 아니라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색으로 가득한 그 곳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그저 넋을 놓고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한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호수에서 눈을 때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수만이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걸어온, 나무의 그늘로 인해 어둡기만 했던 그 길도 햇빛 아래로나오니 수만 가지의 연두색으로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내고 있었다.
아름다우면 그저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나는 곧 이 광경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이 호수와 숲의 존재를 모르니 아쉬울 것이 없겠지. 오직 나만이 이 빛깔을 보아버려서 아쉬워하게 되었구나. 아름다운 것을 혼자 바라본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이 곳은 아주 넓으니까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쳐보았다.
“아무도 없어요?”
“……”
돌아오는 것은 정적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더 큰 소리로 외쳐보았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
다시 정적만이 돌아왔다.
“정말 나 혼자인 거야?”
“……”
나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새삼 피부로 사무치게 느껴졌다.
주변에는 나에게 익숙한, 나에게 속한 것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도, 나를 기억하는 것도, 아무것도 주변에 없었다. 나는 진정한 혼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곳, 태어나 보니 당연하게 주어져 있던 환경, 나를 나아주신 부모님,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친구들과 선생님. 세상에 나와보니 그저 당연하게 주어졌던 것들이었는데, 모두 사라져버리니 참 이상한 느낌이구나. 마치 나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 같은…… 지금의내 성격조차 이 곳에선 아무도 내가 이런 성격인지 모르니까 의미를 잃어버렸어…… 나는 이 순간 정말철저히 혼자구나. 혼자라는 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야. 나는분명 여기 있는데……’
나는 내 자신이 ‘지금이 곳에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라고 느꼈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앞으로 보게 될 것들은 모두 새로운 것들이고,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야. 그들은 나의 부모님도, 나의 친구도, 나의 예전 모습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 이 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새로이 행세해도 그 모습이 앞으로의 진짜 나 자신이 되어버릴 수도 있어. 정말 다시 시작한다는 게 이런 걸까? 여행이란 다시 태어난다는 걸까.’
나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나 자신의 존재, 나는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나는 혼자였고 외로웠다. 그것은 고요한 주변을 더 고요하게 만드는 그런 외로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