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 Jul 11. 2016

04 현자의 마을

공평한 나라의 비밀을 듣다

주인공은 계속 여행중이에요~

아직까지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는중 ㅎㅎ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된 현자의 마을은 제 마음 속에 있는 몇 가지 문구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등장시킨 마을이에요. 팻말에 문구들을 막 집어넣었어요^^;;;

그럼 다음주 월요일에 다음 이야기로 또 찾아뵐게요~ :D



산에서 내려오자 또 다른 숲이 나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평지에 있는 숲이었다. 나는 숲 속으로 걸어갔다.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어 들어갔을 즈음에 나는 몇몇 나무에 무언가 걸려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팻말이었는데 팻말마다 무언가 적혀있었다. 그 중 내 눈에 띈 첫 번째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비둘기 같은 성품과

뱀과 같은 지혜로.


‘무슨 팻말이지? 누가 이런 것을 여기에 걸어놓았을까?’

나는 호기심에 더 깊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나, 나는 그 곳에서 또 다른 팻말을 발견했다.


어른이 되면서 뱀과 같은 지혜를 얻으려다

뱀과 같은 성품을 얻지는 않았는지 주의하라.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팻말에 적힌 글귀를 곱씹었다. 

숲 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팻말의 개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모든 나무에 팻말이 걸려있게 되었을 즈음에 나는 한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 곳은 마치 현자의 마을과 같았다. 오래된 고목들 사이에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었고 그 주변에는 안경을 코에 반쯤 걸친 채로 책을 읽거나 또는 책을쓰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씨를 뿌리거나 어린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보였다. 


내가 보기에 이 곳에는 이미 나무가 충분히 많았다. 나는 그들이 왜 끊임없이 어린 나무를 키우는지 궁금했다.

이 곳엔 나무가 이렇게 많은데 왜 작은 나무를 계속 심는 거죠? 크고 울창한 나무가 이렇게많은데 말이에요.”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거라네.” 

어린 나무를 심고 있던 현자 중 한 사람이 대답했다. 


“잊지 않으려 한다고요? 무엇을요?”


“우리의 어린 시절을. 우리의 작았던 지난 날들을.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잊기 쉬운 것이거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말이야.그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교만의 늪에 빠지게 된다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하지. 우리 모두는 한 때 한낱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래서우리는 어린 나무를 계속 심는 거라네.” 


“그리고 나무가 자라면 팻말을 걸어놓는 건가요?”

마을을 중심으로 걸려있는 팻말들이 인상 깊게 남았던 나는팻말에 대해 물었다. 팻말에 적혀있는 것들은 지혜의 말들이었다. 


“팻말을 걸어놓기도 하지. 한 사람이 지혜의 말을 어딘가에 걸어놓으면 누군가가 그로 인해 얻은 또 다른 지혜의 말을 그 옆에 걸어두고. 우리는 지혜를 공유한다네.”


현자의 마을에서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이제 막 심어진 어린 나무와 다 큰 장성한 나무가 공존하는 것을 보며 자란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인자한 미소가 공존한다. 아이들의 활기 발랄한 움직임과 어른들의 기품 있는 행동이 조화를 이룬다. 현자의 마을은 따뜻하고 온화한 공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 마을은 지혜의 보고였다. 지식의 보고이기도 했다. 나는 이 곳에서 공평한 나라가 지닌 등급의 비밀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등급에 대해 아시나요?”

내가 물었다.


“사람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것이지.”

현자가 대답했다. 나는그가 등급에 대해 아는 것을 듣고 내심 기뻐했다.


“이 곳엔 등급이 존재하나요? 저는 공평한 나라를 찾고 있어요.”


“자네는 산 너머에서 왔군. 이 마을을 포함해서 산 이쪽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 공평한 나라에속한다네.”


“이 곳에는 등급이 없는 건가요?”


“없지.”

현자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없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이 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곳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등급 없이 움직이는 세상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 하지만 자네의 마을이 속해 있는 나라 – 우리는 그 곳을 불공평한 나라라고 부른다네 – 에도 우리의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네. 내가 만난 바위가 그러했지.”




현자는 자신이 산꼭대기에서 만난 큰 바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산은 불공평한 나라에 있는 산이었는데 내가 오른 산과는 다른 모양의 산이었다. 그 산은 뾰족뾰족하고 산 정상에서는 온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이 산은 삭막하구나.” 

산꼭대기에 오른 현자가 바위에게 말했다.


“사람의 욕심이 산에 속한 모든 것들을 앗아갔기에.”

바위가 대답했다. 


현자가 보기에 바위는 외로워 보였다. 그에게서 근엄하고 고독한 분위기가 풍겼다.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현자가 물었다.


“경이롭지.”

바위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얘기했다. 현자도 바위가 내려다 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았다. 세상의 광활함이 보였다. 땅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이런 광경을 보면서 산다는 건 왠지 고독할 것만 같았다. 그것이 현자가 바위에게서 느끼는 느낌이리라.

현자는 며칠 동안 바위의 말상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자네 나라에서 이 정도 위치에 있다면 굉장히 높은 등급이겠군.”

현자는 농담하듯 바위에게 말을 건넸다.


나보다 높은 곳에 서있는 자는 없겠지.”

바위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곧 말을 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봤지 부질없는 짓이거늘. 결국에 나는 혼자이지 않은가.”


현자는 바위의 말에 동의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바위는 산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멀고 험한 길이 될 것이었다. 굴어가는 길에 그 웅장한 크기도 차츰 깎여 나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는 작아지는 편을 택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현자도 그의 말에 공감했다. 


바위는 바람의 힘을 빌려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자는 그 웅장함을 자랑하던 바위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현자가 이야기를 마쳤고,나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다들 높은 등급을 원하는데 바위는 정반대로군. 결국 누군가가 곁에 있길 바랐던 거야.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보면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게 사람이잖아. 그렇다고 혼자 올라가다 보면 결국 혼자 남게 될테고.’  

나는 등급이란 참 아이러니 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등급의 존재를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등급은 세상에 필요한 거예요.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기 때문이죠.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심이야말로 세상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니까요.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해요.”


“불공평한 나라에서라면 맞는 말이네만.”

현자가 대답했다.


“그러면 공평한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삶의 동력이 무엇이죠?” 


“그것은 마음이지.”


“마음이라고요?”


“그렇다네. 무언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라네. 그것은 욕심과는 다른 것이지. 그리고 그 마음은 세상의 작은 것들로부터 온다네.”


나는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세상의 작은 것들이라니. 아마 내가 아직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현자의 마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혼자 걷는 여행길은 외로웠지만 이 곳에 머무는 동안은 마음이 따뜻했다. 나는이 따뜻한 공기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온도가 마을의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나온다는것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거짓이 없고 진실했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일까. 나는어느새 마음에 있는 것들을 꾸밈없이 내뱉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 또한 그것에 포함됐다. 


하루는 현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즘 따라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현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고향을 떠나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 말이에요. 세상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 투성이지만 혼자여행을 한다는 건 외로운 일이에요. 익숙한 것은 전혀 없고 아무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느낌. 이런 느낌이 지속될수록 날 위해 눈물을 보였던 사람들이 생각나요. 나에게 속해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이별의 아픔으로 슬퍼해주었던 사람들이요. 함부로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현자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는 고요함 속에서 날 위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의 첫걸음에서 느꼈던 그 설렘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면 보여주고 싶은 글귀가 하나 있네만."


나는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꿈을 꾸고, 그에게서 받은 데이지 꽃을 간직하며, 짐을 챙기고 마을 밖으로 첫걸음을디뎠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기억하고 있어요. 잊기 힘든 순간인걸요."


"그럼 따라오게나."


현자는 나에게 고갯짓을 하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나를 이끌고 마을 변두리를 향해 걸어갔다. 마을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나무에 걸린 팻말의 수가 줄어들었다. 팻말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즈음,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팻말이 하나 놓여있었다. 나를 현자의 마을로 이끈 팻말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이번에 마주한 팻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한 때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으로 인해 우리는 괴로워하고,

한 때 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으로 인해 우리는 즐거워하나니.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나에게 기쁨과 설렘을 안겨주었던 여행길이지금처럼 나를 슬프게도 하고 외롭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자의 마을은 낯선 길의 연속에 서있는 나에게 포근함을 안겨준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계속 정착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 떠나기로 했다. 다시 외로워지겠지만 또 기쁨으로 가득한 순간이 찾아올 거란 걸 알기에.




내가 이 곳에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세상에 생각보다 여행가가 많다는 것이다. 나의 고향에서 여행가라고는 주말의 광장에 잊을만하면 한번씩 모습을 나타내는이야기꾼이 전부였다. 그 당시, 나의 세계에서 나의 머리로는 여행가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험을 감행하는 일.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나와 같은 여행가들은 흔히 볼 수 있었다. 현자의 마을에 있으면서 이 곳을 지나가는 다른 여행가들을 많이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저들의 여행길은 어떠할지 상상해 보았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지나가는 이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일도 종종 생겼다. 나의 다음 목적지를 알려준 여행가와도 그렇게 만났다.


“어디서 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오래된 마을이요.”

여행가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래된 마을이요? 그 마을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나는 현자의 마을에 자주 놀러 온답니다.”


“자주 놀러 온다고요? 그럼 여행이 익숙하겠군요.”

나는 그가 여행을 자주 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다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고 또 여행을 하다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지요. 내가 사는 마을에는 이 곳보다 훨씬 더 많은 여행객들이 있답니다. 우리는 그들을 투어리스트라고 부르지요.”


“투어리스트라… 저도 그 곳에 가면 투어리스트가 되는 건가요?”


“그럼요. 잠깐 스쳐가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모두 투어리스트라고 불린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니…… 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굉장히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당신의 세계에서는 흔한 일인가 보군요.”


“그건 여행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요. 짧은 여행이나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잠깐의 일탈이나 휴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긴 여행, 멀리 떠나는 여행,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기는 여행은 그 의미가 다르답니다. 말 그대로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지요. 미래를 살아가는 방향과 추구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어요. 이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여행이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후자에 속했다. 긴 여행. 무언가를 포기하고 떠난 여행. 그리고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여행. 


나는 다음 목적지를 오래된 마을로 정했다. 투어리스트들이 가득하다는 그 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그리고그 곳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마음 속에 꿈틀꿈틀 자리잡고 있었다.


현자의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팻말이 걸린 나무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나의 발걸음도 느려졌다. 지혜의 말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에.

느린 걸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나는 마지막 팻말을 마주하게되었다.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주위를 둘러보고 더 멀리에는 이제 팻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이나 그 앞에 서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산 중턱의 작은 마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