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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May 14. 2016

유학생활의 끝에서

그리고 삶의 전환점에서 만난 한 사람

사람마다 삶의 전환점이 있다. 나에게는 두 번 전환점이 찾아왔는데 16살 때와 25살 때이다. 16살 때는 캐나다에 유학을 떠나게 되어서이고, 25살 때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이다.


16살. 캐나다 오타와의 이모집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영어 한마디 못하던 그 시절. 한 번은 "Hi~"하고 인사했는데 친구가 못알아들어서 충격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캐나다에서의 삶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혼자 공항 수속을 밟았던 게 기억난다.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캐나다 마트에서 물건을 샀던 게 기억난다. "How much is it?"을 외국인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회라며 좋아했던 순간.

처음 오타와의 버스를 탔던 게 기억난다. 한국 버스를 2개 붙어놓은 길이의 버스. 나는 꼭 두 칸 사이의 동그랗게 돌아가는 부분의 의자에 앉곤 했다. 하차벨 스위치를 찾다가 이 곳은 스위치가 아닌 줄을 땡기는 시스템이란 걸 발견하고 놀라곤 했는데.


16살은 내 주변의 환경이 통채로 바뀐 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나이를 하나둘 더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16살에 멈춰있었던 것 같다.


9년이란 세월은 어떤 것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 캐나다는 나에게 제 2의 고향과 같아졌다. 캐나다에 있으면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으면 캐나다가 그립고. 그런 상태로 난 25살을 맞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해이기도 하다.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고민에 휩쌓였다. '어느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지'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크게 '어느 나라에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내 마음을 휩쓸었다. 캐나다는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캐나다에서 보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캐나다에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곳이 하나 더 있었다. 한국. 내가 속한 곳. 


많은 고민 끝에 나는 가족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베스트 프렌드와 조금의 마찰도 있었다. 섭섭한 마음에 나타난 표현들,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 


캐나다에 사는 한인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재밌는 지옥, 캐나다는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나는 캐나다에 있는 동안 참 많이도 툴툴댔다. 여긴 너무 심심하다고. 할 게 없다고.


근데 캐나다 Pearson 공항에서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며 보낸 마지막 밤, 나는 짐수속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부운 눈을 이상하게 처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창피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항에서 보이는 토론토의 밤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예전에도 보았던 풍경인데. 예전에는 이렇게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곳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떠나버리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곳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눈에 좀 더 담아둘껄.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반가운 얼굴, 엄마 아빠. 오랫만에 가족품으로 돌아오니 그 소중함이 더더욱 느껴졌다. 얼마만에 이렇게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 자리잡고 사는 거지? 집에 돌아오니 포근하고, 따뜻하고, 안심됐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이상한 이질감을 느끼며 살았다. 마치 꿈꾸다 돌아온 기분. 내가 유학을 갔다왔나? 멍했다. 멍한 기분이 한동안 지속됐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다른 대학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첫 회사. 다행히 내 또래의 사람들이 많았다. 위아래로 한두살밖에 차이가 안나는 사람들.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9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나는 한동안 말이 빠른 사람, 줄임말을 많이 쓰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데 힘겨워했다. 어째서? 나는 유학기간동안 한국애들과 계속 어울리며 살았고 분명 영어보다 한국말이 편한데. 왜 못알아듣지? 이 문제는 한 달 정도 지나니 자연히 해결됐다. 익숙해지니 말 빠른 사람의 말도 잘 들리게 되고, 이것저것 쉽게 줄여 말하는 것도 감을 잡게 되었다.


문제는 계속 존재했다. 나는 이들에게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뭔가 다른 세상에 속한 느낌. 한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서 모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질감.


대화를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겉으로만 오고가는 대화. 이 사람과 나의 관계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문제 또한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하지만 조금 더 오래 걸렸다. 1년 정도. 


그리고 이런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을 때 만난 한 사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이 있다.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 거침없이, 그리고 부드럽게 다가와준 용기있는 사람. 나는 이 사람과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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