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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초이 Aug 29. 2021

8월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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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여일삶 월간 회고모임 #8

8월, 언제나처럼 방송이 이어졌고, 재택생활은 익숙해졌으며, 여름의 절정에 다다른듯 무더워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것도 여느때와 같았지만, 이번달은 조금 달랐다. 심리적 번아웃일까- 일시적 체력저하인걸까- 이 글을 마치고, 내일은 계획에 없던 휴가를 써야겠다. 


1. 그래도 천직인 것 같아-

회사생활 밥벌기 하기에도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 다섯번이나 회사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환경, 새로운 업계, 새로운 직무를 경험했고, 시간이 날때마다 각종 운동, 사진, 영상, 요리, 여행, 가죽공예, 인테리어, 쇼핑 등등등등등 정말이지 수많은 취미들을 끄적끄적 기웃거리며 배우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삶을 어쩌다보니 10여년째 살아내고 있다. 그 모든 수고들이 시간낭비로 느껴져 스스로 한심하다 느껴질 때도 많았고, 나는 어째서 한가지 취미, 한가지 일에 지긋이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렇게 정처없이 떠도는걸까 속상한날도 많았던게 사실인데, 내 나이 서른 다섯에 이제서야 그 모든 자잘한 경험들이 모조리 야무지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은 것 같다. 한번도 해본적 없는 PD직군도 살펴보게 되면서 방송 하나, 영상 하나가 나오는 데에 단순히 크리에이티브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계산과 계획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영상 하나가 나오는데까지 얼마나 많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하며, 그들과 대화할 때 필요한 배경지식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배우고 또 배워도 배울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너무 재미있게 느껴진다. 천직이라 느껴지는 이 일을 한동안은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2. 8월엔 와인 

재택생활,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술은 정말 정말 멀리하고 지냈는데, 여름밤 쇼블은 참지 못해- 피크닉팝에서 몇 병을 주문해두고, 생각이 나는 밤마다 홀짝 홀짝 마시고, 또 친구가 놀러올 때마다 한껏 기본을 내어보았지. 오늘은 와인잔 하나를 깨먹은 기념으로 이때다 싶어 새 와인잔을 데려왔다. 은영언니 가라사대 새로운 와인잔에 새로운 행복과 사랑이 깃들기를-


3. 이달의 요리 

방송으로 접하게 되는 새로운 식재료들을 무턱대고 집으로 들이면서 집밥 메뉴도 점점 더더 다양해지는 중! 전복 장어 방송날 복날에 맞춰 주문한 장어로 덮밥, 구이, 파스타도 해먹고, 컬리에서 주문한 문어 한마리로 문어솥밥, 문어세비체, 포두부쌈도 도전! 무엇보다도 인스타에 그릭모모가 핫하디 핫했는데, 부위기를 타고 나도 덕분에 물복숭아를 실컷 먹었다. 이번달엔 모먹고 돌아다녔나 싶을 정도로 사진첩에 음식 사진이 별루 없는 와중에, 챙겨먹을 수 있는 끼니는 충분히 건강하게 챙겨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 



4. 등산인척 걷기대회 

약수에서 장충동으로, 장충동에서 남산으로, 남산에서 한남동으로, 경리단길, 이태원, 녹사평 골목골목을 지나 용산 집까지 만오천보를 걸었지만 겨우 6km밖에 되지 않았던 걷기대회날. 여름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방법. 이렇게 서울 시내를 구석구석 걸어 다니는 것도 뜻밖의 좋은 힐링이었다. 


5. 이달의 콘텐츠: 환승연애 

이틀사이에 벼락치기로 8화까지 몽땅 봐버린 환승연애. 안보겠다고 안보겠다고 이런걸 왜보냐고 했으면서 울고 웃고 같이 감정이입도 했다가, 욕도 했다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 너가 잘 못 지냈으면 좋겠어 어느 정도는.  


6. 할머니 안녕- 

수 년을 요양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언젠가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병원 면회가 금지되었고, 깊이 생각하고 마음 아파할 겨를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빠가 잠시 휴대폰을 두고 마트에 다녀온 사이 울린 전화 두 통사이에 할머니가 떠나셨다고 한다. 코로나를 핑계삼은 마지막 몇달처럼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외롭고 고요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화장터, 고모, 고모부, 삼촌, 사촌동생까지 족히 스물은 되는 식구들 사이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마지막을 슬퍼하는걸 보니까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 아님 징그럽게 이것들 때문에 내 소중한 청춘 다 떠나보냈구나 싶어 억울해?" 이 질문에 할머니는 뭐라고 답하셨을까. 언제나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그 작은 입술을 우물쭈물거리며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지 않고 삼켰겠지. 할머니, 고마웠고, 미안했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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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엔 어쩐지 모든게 그대로인 환경속에, 조금은 마음이 달라진 기분이랄까- 싱숭생숭한 마음이 어느샌가 걷히고, 9월엔 평소같은 나날이 돌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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