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낸다는 것
스여일삶 월간 회고모임 #11
'잘'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11월의 마지막 일요일밤. 잘자고, 잘먹고, 일도 잘하고, 회사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아끼는 사람들을 잘챙기는 연말을 보내고, 집안일도 정갈하게 잘 해내고, 가족과도, 연인과도 모두 좋은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 마음이 차고 넘쳐 흘러서 안타깝고, 애틋하다
메뚜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않아있던 이 하얀 의자에서 밀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또 갔다. 어쩌면 이 대화를 시작으로, 지금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툴툴대고 아침저녁으로 눈물바람이 가득하지만, 먼훗날 웃으면서 나 스스로를 찌질이라 추억할 많은 일들을 겪어낸 11월 한달. 성북동과 강화도와 선유도와 서울 곳곳을 오가며 알록달록 다채로운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개인적인' 바쁨속으로 홀린듯 빨려들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할머니가, 날이 추워지는 11월에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줄초상이 무슨일인가 경황이 없기도 잠시. 자식 손주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걸까. 두분 모두 이틀-삼일 내내 함께 지내며 외가/친가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 가까워질 계기와 시간을 만들어주고 떠나셨다. 슬픔을 뒤로 하고 가족들이 가까워지는 시간,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고 소개하는 시간.
4년은 너끈히 혼자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지금 집에 이사온지 이제 8개월. 계약서에는 분명 계약 연장 여부를 2-3개월 전에 알려주면 된다 했거늘, 왜때문에 집주인은 벌써부터 내가 계약을 연장하게될지 아닐지가 궁금했을까. 그리고 이런 와중에 어쩜 내 마음에 쏙 드는 위치와, 인테리어와, 예산의 집이 마법처럼 나타났을까. 앞뒤 생각하지 못하고 내 생에 첫 아파트 전세 계약을 질러버렸고, 심난한 마음에 일주일을 내내 밤잠을 설쳐댔다.
큰 일을 여러차레 벌이고 나니, 수습할 일이 산더미였다. 많은 일과 많은 사람들이 내 일상속을 오가게 되었고, 긴장이 이어지는 자리 속에서 준비한 체력이 차츰 소진되어가고 있다. 미처 준비할새가 없었던터라 회사 일도 욕심을 부렸던대로 쓰나미가 되어 몰려오고, 새로 오신 어르신의 마침표 한마디 한마디가 버거운 시기가 이어지고 있다. 운전 면허를 따겠다고 내두었던 휴가에 가차없이 시험은 취소하고, 밀린 잠을 보충하고 밀린 일을 정리했다. 그러고도 주말 내내 굵직한 스케줄을 하루에도 서너개씩 소화해내며 커피로, 약으로 채워 두었던 에너지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말끔하게 소진해내고, 넋이빠져 또 혼을 놓고 울어버렸다. 잊지말자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 와중에도 아침 저녁으로 밥상 참 열심히 차려댔다. 모든 일에 이렇게 열심히고 포기를 모르면서 체력이 달린다고 울어대는 나. 사실 나도 이런 내가 감당안되고 노답인거 인정 :(
수많은 밥상 사진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사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심난한 마음으로 집에와서 라면을 끓여먹고, 시끄러운 속을 소화제로 달랬던 밤. 계약서와 라면과 맥주라니 참으로 어른이지만 어른이구나 싶었던 밤.
12월, 1월까지 더 바쁜 날들이 이어질테지. 그리고 예측할 수 없던 수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지. 연말 송년회에 더불어 주말 내내 이어지는 가족행사, 아빠 환갑, 그 와중에 개인적인 숙제들까지 모두 잘 해낼 수 있다고, 현명하게 시간을 쪼개고, 슬기롭게 체력을 아껴서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조금 부족하고, 어디 하나 모자라보이더라도 부디 그간 열심히 지내온 시간들이 내 뒤를 잘 봐주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탄탄한 힘이 되기를 기도 또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