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 Jun 04. 2024

적극적으로 직진하며, 똥은 피하겠단 마음으로

사람, 관계에 대한 관점


드라마가 끝날 때쯤 재빠르게, '다음화재생'을 클릭하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발견했다는 즐거움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며 나는 '다음화연속재생범'이 되었다. 첫 화부터 인상적이었다. 남자 주인공 선재의 죽음을 겪고, 그가 살아있는 과거로 간 여자주인공 임솔은 그야말로 직진녀다. 선재를 향한 그녀의 모든 행동이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재거나 간을 볼 시간이 없다. 상대가 겁먹지 않도록 선을 지키며 그녀는 선재에게 늘 달려간다.

지인의 안부를 물을지 고민하거나 상대가 나에게 먼저 연락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죽음은 늘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닐지. 죽음을 가까이 느낀 사람들의 사전에는 '소극적'이란 말은 없는 듯 하기에 말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는 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자주 고백했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은 애정관계로 발전하기도 했고 시큰둥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은 친한 친구가 되거나 좋은 선배 또는 은사님이 되었다. 몇 년 전 대학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할 때, 나는 한 여자교수님의 빅 팬이었다. 그 교수님으로 말하면 명석할 것은 두 말할 나위 없고 몹시 웃겼다. 그녀가 업무상 내가 일 하는 곳을 방문할 땐, 나는 그녀에게 달달한 것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팬심을 표현했다. 심포지엄에 연사로 참여한 그녀가 발표를 끝내고 내려오면, 사진을 같이 찍는데 열을 내기도 했다.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나처럼 그녀의 팬이 되었을 때 우리의 직장생활은 더 신이 났다.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마음을 표현하는 일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전임의 생활이 끝나고 나는 운 좋게도 그녀와 같은 센터의 진료교수로 승진했다. 육아로 퇴사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호사를 누렸다. 송별회 자리에서 아쉬움을 담아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했다. 다음에 만날 땐 와인 한잔 하자. 그녀가 말했다. 동갑이었던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 딥 다이브 한 사람 중에는 지금의 남편도 있다. 그에게 청혼을 하던 순간은 내 삶에 더없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청혼을 하기 전 나는 일기장에 많은 것들을 끄적여보았다. 주 내용은 그와 관련하여 내가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2년여를 만났지만 그에 대해 안다할 수 없었고 더구나 미래의 그는 더 알 수 없었기에, '나'에 대해 적었다. 한 페이지 넘게 이것저것을 쓰다보니 그의 직업 빼고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그는 당시 경제력이 불안정했는데, 미래에 그가 백수로 생활하는 것은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했고 현재까지 결혼 7년차가 된 우리사이는 꽤 괜찮다. 결혼을 계기로 나는 점점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기'와 '딥다이브'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내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다. 일과 육아로 다른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할 시간이 전혀 맞지 않을 땐, 새벽 6시에 모임을 열었다. 마음 챙김 명상을 하다 선명상이 궁금해졌을 땐 절로 스님들을 찾아갔다. 책을 읽다 궁금하거나 깊이 감동을 받았을 땐 저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가 원하는 나가 되기 위해 ‘그렇게 된 사람’을 찾거나,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 그것은 내 주위를 그 사람들을 닮은 빛으로 채우는 시작점이었다.


사진: Unsplash의Lidya Nada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하다는 환희로 가득 찼을 무렵, 그를 다시 만났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그는, '내 주위에도 똥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원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던 때를 잊거나, 그렇지 못해 힘든 사람들을 자주 잊어버린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는 지나가는 버스 광고판에서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었다. 나를 더없이 함부로 대했던 사람.

‘아 저 @#@#%^!@ 개원했나 보네.’

버스가 지나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육두문자가 스쳤고, 인턴생활이 끝난지 10년이 지났건만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데는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증오심이 만든 기억회로는 무섭게도 빨리 연결되었다.


인턴시절. 내가 근무했던 병원은 1개월 주기로 수련과를 거쳤다. 정형외과 턴을 시작한 지 1주일이 되었을 무렵, 나는 새벽 세시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형외과 레지던트였던 그였다.


달하선생, 왜 김 00 환자 입원기록지를 안 썼어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내일 가서 바로 작성하겠습니다.      

지금 와서 쓰세요.


두려움은 나를 병원으로 달려가게 했다. 새벽 세시라는 시간이 무색했다. 입원기록지는 본래 그가 작성해야 했던 문서였음에도 나는 그것을 빨리 작성하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입원기록지 작성을 인턴이 해야 할 일로 누군가가 정했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할지만을 고민하며 '인계'하기에 바빴다. 결국 나는 임무 수행을 성실히 하지 못해 새벽이 전화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그의 전화를 받고 벌떡 일어나 전화기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병원으로 달려가던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응급실에 방문한 정형외과 환자를 먼저 살피고 그에게 노티를 했다. '보고하는 법'을 배우는 인턴교육의 일환이었다. 그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내 인사를 안 받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내가 간호사들과 너무 친하다 것을 트집 잡기도 했다. 그에게 나는 이유 없이 하대해도 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랬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사진: Unsplash의Zhivko Minkov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요즘에도 '그가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는데 그때의 내 태도도 한 몫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땐 씁쓸하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이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말은 다행이며 희망적이다. 그것이 사건처럼 벌어진 일이어도, 내 탓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면을 살피는 작업은 결국 필요하기에 말이다.


그 시간을 거친 지금의 나는 10년전과 비교하여 한가지가 달라졌다. 촉수가 올라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나타나는지 안테나를 세워 감지한다. 일단 그들을 우아하게 피할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 내가 끌어당긴 것이든, 사건처럼 벌어진 일이든 일단은 튀고 난 다음에 살피기로 했다.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 탓인가'라고 생각하기 쉽고, 계속 당하면서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폭풍의 눈에서는 얼른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이런 생각은 유명 대학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힘든 인간관계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아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숨진 여성이 자살예방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했던 말을 들었을 때 더욱 굳혀졌다. 그녀는 말했다.

 '아이들은 나를 다치게 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피할 생각을, 학교를 벗어나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그 똥 같은 레지던트가 근무하는 동안, 내가 근무한 다음 해에 인턴으로 들어간 후배는 그과를 돌다 일을 그만두었다. 그의 괴롭힘 때문이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 소문을 들었을 무렵 레지던트 1년차였던 나는, '그냥 참고 일하지 인턴생활을 다시 해야 되잖아.'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깟 1년, 그깟 몇 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그 후배가 더없이 멋지다. 그 후배와 달리 그때의 나는 그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려 들지 않았었나보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기분에 좀 더 솔직해져야 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구하려 이 문장을 반복해서 읊어본다.

좋은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다이브,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피하기.

이것이야말로 내가 나를 아끼며 주위를 좋은 사람들로 채우는 방법이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내가 견딜 수 없는 사람일수 있다. 내가 알아서 피해주지 못할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이 나를 적극적으로 피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각자가 자기에게 더없이 솔직해지는 방법으로 서로에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가면 좋겠다. 자신을 아끼며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듯 살다보면 주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가득찰지도.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든 견디기 힘든 사람이든, 모두 너의 성장을 위해서는 필요한 존재다’라는 말은, 재미없다. 주위가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길 바라면 좀 어때.



대문사진 : UnsplashCarlos Alberto Gómez Iñiguez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