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좋아함에 관한 깊이 있는 고찰
나는 카레를 좋아합니다. 물론 커리도 맛있지만 카레를 훨씬 좋아합니다. 커리는 외국 음식이죠. 카레는 어렸을 적 엄마가 해줬던 기억 때문인지 보글보글한 집밥의 따듯함이 있어요. 노란 카레의 기억은 다들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맛있죠. 카레는 정말 맛있어요. 하지만 내가 카레를 좋아하는 좀 더 깊은 이유는 만드는 과정에 있습니다. 카레는 완성할 때까지 손 놓을 틈이 없어요. 쉴 틈 없이 볶고 끓이고 저어서 졸이는 과정이죠. 그렇다고 또 바쁘진 않아요. 느릿하게 진행됩니다. 양파를 갈색으로 캐러멜 라이즈 할 때에는 심혈을 기울이지만 나머지는 스윽-슥 휘저으면 돼요. 머리는 적당히 멍해져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다니고 몸은 약간의 긴장감이 유지된 상태. 카레는 단순 노동의 미학이지요.
나의 월화수목금은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아주 공사다망하고 시끌벅적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다 맞이하는 주말은 급류에 휩쓸리다 겨우 붙잡은 바위 같아요. 곧 다시 쓸려내려가야 하지만 잠깐이나마 숨을 가다듬는 거죠. 그래서 시간의 대부분을 나를 위해 사용합니다. 특별한 건 없어요.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는 거죠. 쉬는 거예요. 사는 게 그렇잖아요. 머리가 물속에 잠겼다 떴다 해도 갈림길이 나오면 방향을 획 틀어야 하고 장애물이 나오면 훌쩍 뛰어넘어야 하죠. 시간이란 급류 속에서도 나의 방향을 잃어선 안됩니다. 그러려면 쉬어야 돼요. 그래서 무엇보다 잘 먹입니다. 나를요. 몸도 마음도 풍족해질 수 있도록 말예요. 카레는 그러기에 아주 제격인 음식입니다. 이쯤에서 제가 카레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할게요.
고형 카레 매운맛
(S&B의 토로케로 카레 매운맛을 좋아해요)
소고기 양지 그리고 육수를 낼 야채들 아무거나
양파 한 개
느타리버섯 두팩
토마토홀 한 캔
1) 소고기 양지와 야채를 한 시간쯤 푹 끓입니다.
육수는 채에 거르고 고기는 잘게 찢어 주세요.
2) 양파를 얇게 채 썰어서 올리브유를 두르고 약한 불에서 갈색이 날 때까지 볶아요. 한 20분?
3) 불을 줄이고 느타리버섯을 대충 찢어 넣고 함께 볶습니다.
4) 토마토홀을 넣고 주걱으로 대충 다져요.
5) 육수, 고기, 고형 카레 투입
6) 전체 양에서 2/3 정도만 남아 걸쭉해질 때까지 약한 불에서 주걱으로 저어가며 졸여요 한 30분?
7) 모두 맛있게 드세요.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어요.
네 그럼요 주말은 카레인 겁니다. 밥은 귀리밥이예요. 맛이 구수하고 톡톡 터지는 게 식감이 정말 좋아요. 씹는 게 재미있을 정도예요. 두껍게 썰어서 칼집 낸 가지를 소금 후추 솔솔 뿌려서 올리브유에 굽다가 불을 줄이고 발사믹 식초를 뿌려서 졸였어요. 맛있어요. 발사믹이 졸여지면 매력적인 단맛이 나잖아요. 이렇게 공들여서 준비한 식사는 입은 물론 마음으로도 먹게 되죠. 식사 시간 전체가 나를 위한 의식이 되는 겁니다. 이걸 마인드풀 이팅 Mindfull Eating 이라고 하더군요. 난 그냥 "우리 혜인이 잘 먹이기" 라고 합니다. (혜인이는 접니다.) 먹고 있으면 아...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어내다니 하고 뿌듯해져요. 저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거든요. 득도가 별거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맛있고 뿌듯해서 막 신나는데 오물거리는 입과 마음은 느리고 차분해요. 제목 그대로예요 평화를 위한 카레. 카레는 내게 그런 음식입니다. 너무 멀리 갔나요? 뭐 어때요. 내 맘이 그렇다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주말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식사 시간엔 어떤 생각 하세요?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마음의 여유가 있나요?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음식이 있나요? 제게도 나눠주세요.
삶은 영화 처럼은 일상의 한 순간에 집중합니다.
순간을 깊게 파고 들어 여러개의 레이어로 분리해 한편의 이야기로 만듭니다.